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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장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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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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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마

인은 도장으로 정사를 집행할 때 나무, 쇠붙이 돌 등에 문자를 새겨 종이에 찍어서 타인에게 믿음을 얻게 하기 때문에 인신이라 하였고, 관인을 싣고 가는 말을 인신마라고 하였다.

장용위

정조는 1785년(정조 9) 국왕의 호위를 위해 정예 금군으로 구성된 친위체제인 장용위를 창설하였다.
그 뒤 1793년 1월에 수원에 있던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의 호위를 위해 수원을 화성으로 개칭하고 장용영의 외영을 설치한 다음 수원 부사를 유수로 승격시켜 장용외사의 직을 겸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왕의 호위를 담당하고 있던 서울의 본영을 자연히 내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장용위는 내, 외영제를 갖춘 명실상부한 군영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정조연간에는 가장 정예한 친위부대였다.

화성행차에 동원된 인원은 96명으로, 이들의 명단은

박지만, 최석휘, 김상효, 육중수, 낭세룡, 한대순, 유효달, 배만근, 왕도길, 한유춘, 최성기, 김춘운, 조명재, 한창려, 조윤장, 임백춘, 송응창, 정중혁, 김경흥, 김종검, 박경기, 윤재징, 유태언, 차도욱, 이인묵, 김면우, 박도형, 임광윤, 이방구, 이동환, 김중묵, 이도욱, 전백희, 오문주, 황천일, 조원진, 변종흡, 고희철, 장언위, 윤홍정, 이한준, 이재익, 박동익, 전춘우, 왕도항, 문명륜, 김정구, 송문영, 최진옥, 이진국, 신덕취, 고용득, 이춘형, 이유풍, 낭세희, 김이우, 한상오, 오흥덕, 오흥량, 장안, 최계도, 김백련, 박창식, 김광복, 박지흥, 차도길, 차도철, 김호철, 손세융, 조명상, 김언즙, 김언식, 이의묵, 문명집, 이시형, 왕도춘, 유재원, 조명헌, 방우정, 낭처호, 고행간, 최종우, 안창적, 김효일, 임경려, 김득성, 김흥철, 임수복, 정재충, 김효원, 송광수, 조광국, 한경린, 표건첨, 김덕희, 김완철, 윤득성, 조윤문, 정덕수, 김수담, 최욱 등이다.

치중마

치중마는 군수품을 싣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