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화성의궤의 재현문무관료

연관목차보기

문무관료

top top
front front
side side
back back
perspective perspective
동반

조선시대의 사환계급(仕宦階級)인 양반(兩班) 중 비군사직관원으로, 군직의 무관(武官)에 대칭되는 말로서 문반(文班) ∙문관(文官) ∙문신(文臣)이라고도 한다.
궁중에서 조회(朝會)를 받을 때 문관은 동쪽에, 무관은 서쪽에 위치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조정의 백관을 동 ∙서 양반으로 나눈 것은 고려 전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조선도 이 제도를 그대로 계승하여 의정부와 육조(六曹), 그 밖의 여러 아문(衙門) 및 지방의 수령(守令) ∙방백(方伯) 등이 대개 동반에 속하였다.
조선은 문관우위정책(文官優位政策)에 따라 동반은 서반(西班), 즉 무반(武班)에 비하여 훨씬 우월한 지위에 있었다.

병조판서

조선시대 군사 관계 업무를 총괄하던 병조의 우두머리 관직이다.
병조판서 아래에는 종2품인 참판(參判) 1인, 정3품인 참의(參議)와 참지(參知) 1인 등
4명의 당상관을 두고, 그 아래에 무선사(武選司)·승여사(乘輿司)·무비사(武備司)의 3개 사를 두어 일을
분담시켰으며, 이 속사(屬司)에는 정5품의 정랑(正郞)과 좌랑(佐郞) 등을 4명씩 두어 일을
맡아보게 하였는데, 중대사에는 판서와 참판, 참의 등이 직접 간여하였다.

화성행차 때 병조판서로 따라간 사람은
심환지 沈煥之(1730~1802 ) 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벽파의 영수
본관 청송(靑松). 자 휘원(輝元). 호 만포(晩圃).
정시문과에 급제하고, 1787년(정조 11) 호서(湖西)의 암행어사, 대사성(大司成)을 지냈다.
1792년 형조참판인 평택 안핵어사 김희채(金熙采)의 탄핵으로 유배, 이듬해 이조참판을 지내고, 규장각제학, 이조판서, 1795년 우의정, 좌의정, l800년(순조 즉위) 영의정에 올랐다.
이 때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수렴청정으로 벽파가 득세하자 신유박해 때 시파(時派)인 가톨릭교도를 박해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데 앞장섰다.
1806년 관작이 사후 추탈되었다.



영정자료:디지털한국학

서반

무관(武官)의 반열(班列)로, 무반(武班), 호반(虎班)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궁중에서 조회(朝會)를 할 때 문관은 동쪽에 줄을 짓고, 무관은 서쪽에 줄을 짓는 데서 유래하여 동반(東班:文官)과 대비된다.
군사에 전문적인 군직(軍職)은 삼국시대에도 있었으나 이를 서반이라 부른 것은 고려 말부터였고 이를 법제화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