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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난후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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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후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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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후금군

조선후기 용호영에 설치되었던 금군으로, 왕의 행차 시에 어가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국왕이 성밖을 나갈 때 번장의 인솔하에 표기 밖 후상군의 앞부분에 자리잡고 행렬을 만드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화성행차에 동원된 인원은 25명이고, 이들의 명단은

이영백, 정룡주, 서유행, 박흥엽, 송락겸, 이동항, 전경철, 임백준, 이정복, 이덕현, 박창신, 최홍원, 이홍수, 이형번, 윤동철, 박시풍, 안성린, 차성륜, 박용혁, 전창현, 최완득, 김완석, 김정현, 송윤계, 김인섭 등이다.

좌사전초군

좌사는 장용영내영에 소속되어 있던 군사조직으로,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장용영 내영에서 후방호위를 담당하였다.
좌사는 대부분 한강 이남의 수원을 중심으로 한 인근 읍의 8개 초로 구성되어 있다.
1초는 보통 약 100명 -125명 내외로 구성되었는데,
1795년 원행에 참가한 장용영의 초군은 중초군?전초군 모두 각각 109명씩 구성되어 수행하였다.

화성행차에 동원된 초군(哨軍)은 109명으로,

[기고수 최천태(催千太)등 2명], [기홍 김귀노미 등 3명],
[대장 김홍적 등 9명], [총수 장귀돌 등 90명],
[화병 박태복 등 9명],
[우구지기 김춘기 4명], [철롱지기 문이명 등 2명] 등 이다.

좌사중초군

좌사는 장용영내영에 소속되어 있던 군사조직으로,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장용영 내영에서 후방호위를 담당하였다.

좌사는 대부분 한강 이남의 수원을 중심으로 한 인근 읍의 8개 초로 구성되어 있다.
1초는 보통 약 100명 -125명 내외로 구성되었는데,
1795년 원행에 참가한 장용영의 초군은 중초군?전초군 모두 각각 109명씩 구성되어 수행하였다.

화성행차에 동원된 초군은109명으로,

[기고수 임흥진(임흥진) 등 2명], [기총 홍귀재(洪貴才)등 3명],[대장 류맹손(劉孟孫)등 9명], [총수 김동수(金東守)등 90명], [화병 오정대(吳正大)등 9명], [우구지기 정칠성(鄭七成)등 4명], [철롱지기 김중애(金中愛)등 2명] 등이다.

좌사파총

장용영 내영에 소속된 군사로서 종4품 무관직이다.
조선시대는 임진왜란 이후 군사편제가 속오법에 따라 영-부-사-초-기-대-오로 조직되었는데,
파총은 사의 지휘관이었다.
이들은 대개 당하관이나 선전관, 수령 등을 지낸 자로 임명하였으며 근무기간은 2년이었다.

화성행차에 좌사파총으로 따라간 사람은 이운창 등이다.

좌사후초군

좌사는 장용영내영에 소속되어 있던 군사조직으로,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장용영 내영에서 후방호위를 담당하였다.

좌사는 대부분 한강 이남의 수원을 중심으로 한 인근 읍의 8개 초로 구성되어 있다.
1초는 보통 약 100명-125명 내외로 구성되었다.

화성행차에 동원된 초군은 109명으로,

[기고수 안앙개(安仰介) 등 2명], [기총 배준흥(裵俊興) 등 3명], [대장 장윤철(張允哲) 등 9명], [총수 홍점동(洪占東) 등 90명],[화병 한국신(韓國臣) 등 9명], [우구지기 박용대(朴龍大) 등],[철롱지기 오대성(吳大成) 등 2명] 등 이다.

초관

조선시대 종9품의 무관직으로, 100명으로 편성된 초(哨)를 통솔하던 벼슬로, 훈련도감에 34명,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에 각 41명, 총융청(摠戎廳)에 6명, 총리영(總理營)에 25명, 수어청(守禦廳)에 26명, 관리영(管理營)에 32명, 진무영(鎭撫營)에 63명의 정원이 있었다.

화성행차 때에 초관으로 따라간 사람은 박종림, 최명건, 신대건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