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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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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

조선시대에 각 도(道)를 다스리던 지방장관으로, 보통 감사(監司)라 하고, 방백(方伯), 도백(道伯), 영문선생(營門先生) 등으로도 불렀다. 처음에는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라 하였는데, 1446년(세조 12) 관제개혁 이후 관찰사로 개칭되었다. 각 도에 한 명씩 파견되었으며, 품계는 종2품이었다. 1401년(태종 1)에 고려시대의 안렴사제도가 관찰사제도로 개편되었으며 1414년에는 양계지방이 영길도, 평안도로 바뀌어, 5도 양계의 이원적인 지방제도가 일원적인 8도체제로 바뀌었다. 1417년(태종 17)에는 전국에 모두 도관찰출척사가 파견되는 일률적인 관찰사제도가 확립되었다가 1446년의 관제개혁 때 관찰사로 개칭되었다. 관찰사는 도내의 모든 지방관을 통솔, 규찰하였으며 수령들의 업무 처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농사가 잘 되고 있는지, 풍속이 바른지, 세금은 제대로 걷히고 있는지, 형벌을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으며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를 겸임하여 군사지휘권도 가지고 있었으며, 만일 잘못을 발견했을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독단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중앙의 대사헌을 내헌(內憲), 관찰사를 외헌(外憲)이라 할 정도로, 지방관의 근무성적을 매기고, 잘못을 다스리는 역할이 중시되었다.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피제(相避制)를 적용하여 연고가 있는 지역에는 임명하지 않았고, 임기도 국경의 영안도, 평안도를 제외하고는 1년으로 제한하였다. 모두 중앙정부의 문관출신으로 임명하였고, 영안도, 평안도의 경우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할 수 없도록 하였다. 관찰사가 근무하는 관청은 감영, 영문, 순영 등으로 불렀다. 중앙에서 임명한 직속 보좌관으로 경력, 도사, 검률, 심약 등이 있었는데, 1446년에 경력은 없어졌으며, 일반 행정업무는 감영에 속한 육방(六房)이 맡도록 하였다. 1895년(고종 32)의 관제개혁으로 전국이 23부로 바뀌었는데, 각 부의 장관을 관찰사로 하고 내무대신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하였다. 이듬해인 1896년에 전국이 다시 13도로 개편되었는데 각 도의 장관은 여전히 관찰사였다. 1910년 일제의 강점으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