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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병마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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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절도사

조선시대 각도(各道)의 군사지휘관으로, 병사(兵使)로 약칭되었으며, 주장(主將), 주수(主帥), 수신(帥臣)이라고도 불렀다. 고려 말에 전국의 군사조직을 도체제로 정비하면서 도순문사 대신 도절제사를 파견하기 시작하였는데, 조선 건국 후 태종 대에 전국적으로 북방 국경지역의 군 익도와 남쪽 지역의 영진군을 골격으로 하는 병마도절제사제도를 시행하였다. 1457년(세조 3) 지방군사제도를 진관체제로 정비하면서, 경기도에도 도관찰출척사가 겸하는 병마도절제사를 두었으며, 1466년 병마도절제사를 병마절도사로 개칭하였다. 1472년(성종 3)에는 모든 관찰사가 해당 도의 병마절도사를 겸하게 하고 전임 병마절도사 위에 자리하게 함으로써, 문신 우위의 지방군사제도를 마무리 지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충청도, 경상좌도, 경상우도, 전라도, 평안도, 영안남도, 영안북도에 전임 병마절도사 각 1명이 파견되었고,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에는 전임관이 파견되지 않았다. 전임관을 단병사(單兵使), 겸임관을 겸병사(兼兵使)라 하였는데, 정원은 겸병사 8명에 단병사 7명을 합쳐 총 15명이었다. 1593년(선조 26) 이후에는 황해도에도 단병사가 파견되었다. 병사는 각도의 주진(主鎭)에 병영을 설치하고, 병마우후, 군관, 아전, 노비, 공장 등을 거느리면서, 유방군(留防軍)을 지휘하였다. 종2품으로 임기는 2년이었고, 처음에는 경관(京官)의 겸직으로 임명되다가, 1477년부터 실직으로 파견되었다. 영안남도와 북도의 병사는 각각 일반 행정직인 북청부사와 경성부사를 겸하였다. 평상시에 무예훈련이나 군사훈련, 무기, 군사시설을 점검하였고 외적침입, 내란 등 유사시에는 군사를 거느리고 대처하는 한편 중앙정부에 보고하였다. 중앙군으로 비번인 자나 수군까지 모두 관할하였고, 군사적 범법행위에 대한 처벌도 담당하였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진관체제가 붕괴되고, 지방군의 지휘권도 병사로부터 비변사 쪽으로 옮겨갔다. 임진왜란 이후 진관체제 등 군사체계를 복구하기 위한 여러 조처가 행해졌으나, 군포대납의 폐단은 심해졌고 겸병사와 단병사간의 지휘계통도 문란하게 되었다. 유명무실하던 병마절도사는 1895년(고종 32) 도제(道制)가 폐지되면서 혁파되었고, 이듬해에 신식지방군대인 진위대(鎭衛隊)로 편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