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화성의궤의 재현관직

연관목차보기

관직

관(官)은 직무(職務)의 일반적 종류의 칭호이고, 직(職)은 담임하는 직무의 구체적 범위를 표시하는 칭호로서, 과목(科目)에 따라 인재(人材)를 국가로부터 위임받던 제도이다. 조선시대 관계조직(官階組織)은 양반의 벼슬인 동반(東班)과 서반(西班)의 관계와, 양반이 아닌 사람의 벼슬인 잡직(雜織)과 토관(土官)의 관계가 따로 설정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관직에는 실직(實職)과 산직(散職)이 있고, 실직에는 녹관(祿官)과 무록관(無祿官)이 있으며, 녹관은 다시 정직(正職)과 체아직으로 나누어진다.

당상관(堂上官)

조선시대 관계(官階)의 분류 중 하나로, 조의(朝議)를 행할 때에 당상(堂上)에 있는 교의(交椅)에 앉을 수 있는 관원이다. 동반은 정 3품의 통정대부(通政大夫)이상, 서반은 절충장군(折衝將軍) 이상, 종친은 명선대부(明善大夫) 이상, 의빈(儀賓)은 봉순대부(奉順大夫)이상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다. 이러한 당상관은 대부분 양반이 독점하였고, 조선시대에는 그 폭을 정 3품 당상관까지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당상관은 조선시대 국정을 입안, 집행하는 최고급 관료집단이라 할 수있다. 그리하여 당상관은 경(京),외(外)의 양반 관료를 천거할 수 있는 인사권, 소속관료의 고과표(考課表)를 작성할 수 있는 포폄권(褒貶權) 군사를 지휘 할 수 있는 중요 권한을 독점하였다. 또한 실생활에서나 퇴직 후에도 다양한 여러 가지 특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특권을 당상관이 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문무 관직 중에서 오직 정 3품의 당하관직인 승문원정(承文院正), 봉상시정(봉상시정), 통례원좌우통례(通禮院左右通禮), 훈련원정(訓練院正)의 네 자리를 거친 자여야만 당상관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당상관의 수를 제한했으나, 세조 이후 당상관의 수는 계속 증가하였다.

당하관(堂下官)

조선시대 관계 분류의 하나로, 조의(朝議)를 행할 때 당상의 교의(交椅)에 앉을 수 없는 관원은 동반의 정 3품의 통훈대부 이하, 서반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이하, 종친은 창선대부(彰善大夫)이하, 의빈은 정순대부 이하의 품계를 지닌 사람이다. 당하관에는 양반은 물론 기술관, 양반서얼 등도 종사할 수 있다. 15세기 후반부터 양반들은 기술관을 제도적으로, 관념적으로 차별하여 기술직을 세전시키고 이들의 한품(限品)을 당하관에 한정시켰다. 이들은 당상관과는 달리 근무일수에 따라 승진하는 순자법(循資法)의 적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의복착용이나 가마의 이용에 있어 당상관과 구별되었으며, 상피제(相避制)의 적용을 받았다. 또한 포폄성적(褒貶成績)이 나쁘거나 범죄에 의하여 파직된 경우는 2년이 경과된 뒤라야 다시 서용할 수 있었다.

체아직(遞兒職)

조선시대 특별한 경우에 녹봉을 주기 위하여 만든 관직으로, 정하여진 녹봉이 없이 1년에 네 차레 근무 평정에 따라 교체되며, 복무기간 동안의 녹봉을 받는 관직이다. 체아는 고려 말에 생겼으리라 추측되나, 하나의 제도로서 규정화된 것은 조선시대 부터이다. 체아직에서는 직전(직전)은 주지 않았다. 체아의 훈(訓)은 '아나'로서, "아나 이것 받아라"라는 경우의 "아나" 이니, 나라의 관직과 녹봉이 "아나, 이것 받아라" 식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체아직은 조선 세종 때부터 성립된 제도로서 [경국대전]에 제도화되었다. 체아직(遞兒職)에는 동반 체아, 서반 체아, 잡직 체아 등이 있는데, 대부분의 체아직 직과(職 )는 서반체아직이다. 조선시대 관직은 한정되어 있는데 양반의 수는 차츰 증가됨에 따라, 그들에게 고루 관직을 나누어 주기 위하여 많은 직과(職 )를 보유하고 있는 서반체아직이 중기 이후부터 변질되기 시작하여 후기에는 거의 문관관료층의 벼슬자리로 변모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