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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창덕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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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떠나다

1795년 음력 윤2월 9일 묘시 창덕궁을 떠나다.

01 영춘문, 02 천오문, 03 만팔문, 04 보정문, 05 숭지문, 06 집례문, 07 경화문, 08 동룡문, 09 건양문, 10 숙장문, 11 진선문, 12 돈화문

우선, 액정서(掖庭署)에서는 돈화문 바깥도로 동쪽 부근에다 천막을 서향하여 설치하고,
천막 앞에는 정조임금을 공손하게 맞아 들이는 판위[祗迎版位]를 설치한다. [땅의 상태에 따라한다.]

묘시(卯時)에 정조임금께서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顯隆園)에 가기 위해 거동하셨다.
이 때
행 도승지 이조원(李祖源),
행 좌승지 이만수(李晩秀),
행 우승지 이익운(李益運),
우부승지 유한녕(愉漢寧),
동부승지 이조원(李祖源),
가주서 유원명(柳遠鳴) · 구득노(具得魯),
기주관 김양척(金良倜),
기사관 오태증(吳泰曾),
정리당상 심이지 · 서유방 · 이시수 · 서용보 · 윤행임,
검교 직각(檢校直閣) 남공철(南公徹),
검교 대교 서유구(徐有?)등이 차례로 대기하였다.

정조임금께서 영춘현에 오시어 말씀하시기를,
"궁을 떠나기 전에 마땅히 들어가 자전(慈殿, 할머니 : 정순후)을 뵈어야 하니,
시위(侍衛)는 먼저 합문(閤門)에 나아가 반차(班次) 정제(整齊)하여 기다리게 하라." 하셨다.

이어 말을 타고 수정전(壽靜殿)에 가서 할머니께 인사하시고
조금있다가 영춘헌에 환어(還御)하시여 윤행임에게 명 하시기를,
"지금 혜경궁의 어가를 모시고 화성에 가는 도정(道程)이 거의 100리 가깝고
갔다가 돌아오는 데에 8일이 넘을 것 같아 내 마음이 매우 걱정스러워서
감히 조금도 마음 놓을 수가 없다.
각 참의 수라[水剌] ·방돌 점화(房琬點火) · 진찬배설(進饌排設) 등의 일에 각각 분장이 있으니
혹시라도 방심하지 말도록 미리 영을 내려 신착하라." 하셨다.

출궁의식의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초엄(初嚴)을 치면 병조에서는 모든 호위관[諸衛]을 다스려 장비[杖衛]와 각종 노부(鹵簿)를 인정문(仁政門) 밖에 진열하게 하고,
서울에 머물 백관은 모두 조방(朝房)에 모이도록 하여 각기 평상시 처럼 융복(戎服)을 입되 검을 차게 한다.
[행차를 따라가는 백관들은 미리 강을 건너 각각 융복을 입고 검을 차고 깃을 꽂고, 강 건너편에 동서로 나누어 서서 대비한다.]

2엄(二嚴)을 치면 각 호위관은 자기 부대를 들어오게 해 평상시처럼 줄을 세운다.
사복시(司僕侍)에서는 돈화문에 말을 대기시키고 수레는 합문(閤門)밖에, 또 가교(駕轎)는 내합문 밖에 대기시킨다.
서울에 머물 백관들은 돈화문 밖으로 나아가고,
가까이 모시는 시종과 모든 호위관들은 각자 복식을 갖추고 합문밖에 나아가 사후(伺候)한다.
좌통례(左通禮)는 합문밖에 다가가 무릎을 꿇고 엄(嚴)중임을 아뢴다.

묘정(卯正) 3각(6시 45분경)에 3엄(三嚴)을 치고 북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려
안팎의 문을 열고 좌통례는 무릎을 꿇고 바깥사정을 아뢴다.
정조임금께서는 융복을 입고 깃을 꽂고[온행(溫幸) 때의 예에 따라 평융복이나 군복을 입는다.],
여(輿, 뚜껑 없는 가마)에 올라 출발하면 평상시의 의식처럼 산선(?扇)과 시위를 한다.
좌우통례가 앞을 인도하고 상서원(尙瑞院) 관원은 보(寶)를 받들고 앞서서 간다.
[말에 오르기를 기다려 보를 말에 싣는다.]

정조임금께서 돈화문 밖에 이르면 좌통례가 무릎을 꿇고 여에서 내릴 것을 청하여 아뢰면
정조임금께서는 여에서 내려 좌우통례가 인도하는 대로 천막에 들어간다.
상의(尙儀)가 무릎을 꿇고 내엄(內嚴)할 것을 찬청(贊請)하고,
조금 있다가 바깥의 준비상태를 말한다.
[출궁과 환궁때의 낮에 머무시는 곳과 주무시는 곳에서의 찬청 또한 이와 같다.]

혜경궁(慈宮)께서 가교를 타고 나오시면 평상시의 의식처럼 산선을 들고 호위한다.
백관들[궁궐안에서 입직하는 백관을 말한다.]은 몸을 굽히고[鞠躬],
행차가 지나가면 몸을 편 다음[平身],
시위대 뒤를 따라 돈화문 밖에 이른다.
[나중에 뒤떨어져서 각각 제 근무처를 지킨다.]

혜경궁 행차가 영춘문, 천오문, 만팔문, 보정문, 숭지문, 집례문, 경화문, 동룡문, 건양문, 숙장문, 진선문을 거쳐
돈화문 밖에 이르면 좌통례가 무릎을 꿇고 정조임금에게 천막에서 나오실 것을 아뢴다.
정조임금께서 나오시면 좌통례를 앞장세워 지영판위(祗迎版位)앞에 서향(西向)하고 선 다음,
좌통례가 무릎을 꿇고 국궁하기를 계청하면 정조임금이 국궁하고,
지나가면 평신하라는 계청에 따라 정조임금이 평신을 한다.
서울에 머물 모든 신하들도 똑같이 따라한다. 좌통례가 무릎을 꿇고 말에 오르기를 청하면,
정조임금께서 말에 오르고 시위하는 신하들도 말에 모두 오른다.
좌통례가 무릎을 꿇고 출발하시기를 청하면, 정조임금께서 말을 타고 혜경궁 홍씨의 가교와 함께 출발하고,
서울에 머물 백관들은 국궁하고 지나가면 평신한다.
서울에 머물 육조(六曺)의 당관(堂官)과 낭관(郎官) 각 1명씩 시위대의 뒤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