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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화성행궁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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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도착

1795년 음력 윤2월 10일 저녁 화성행궁에 도착하여 숙박을 하다.

소나무가 우거진 노송지대 거쳐 진목정을 지나는 행렬은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長安門)을 몇 리 남겨놓았다.
이 때 정조임금께서 병조판서 심환지에게 명을 내리셨다.
" 어가가 화성 성문(華城城門)에 도착하면 군문(軍門)에 들어가는 절차가 있어야 할 것이니,
경은 여러 장신(將臣)이 있는 영접소(迎接所)에 먼저 가 있으라." 하셨다.

이어 막차의 설치를 명하여 갑옷과 투구를 입고 출발하시여 장안문 안으로 들어가시니,
여러 장신 및 화성 유수 조심태가 장관(將官) 이하를 인솔하여 길 왼편에서 무릎을 꿇고 영접하였다.
대가(大駕)가 장안문(長安門)으로 들어가 남문인 팔달문을 향해서 가다가 오른편 종가(鍾街)로 방향을 틀어

좌·우 군영의 앞길을 거쳐,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樓) · 좌익문(左翼門)을 지나 중양문(中陽門)으로 들어서서 화성 행궁의 봉수당(奉壽堂)에 이르러 말에서 내리시어,
혜경궁의 어가를 따라 장락당(長樂堂 : 혜경궁의 휴식처)으로 들어가셔서 주다별반과를 올리시고, 저녁에는 석수라를 올리셨다.

정조임금께서 유여택(維與宅 : 정조임금의 처소)에 임어하시여 시신(侍臣)에게 하교하시기를,
"오늘 비에 젖음이 비록 미안하기는 하나, 나는 또한 스스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다고 여긴다.
대개 모든 일에 십분 원만한 것을 바라서는 안된다.
어제는 이미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했고, 내일은 또 경례(慶禮 : 경사스런 행사)가 많다.
수십리 사이에 잠깐 비가 왔다가 맑게 개이니 역시 다행이라 하겠다.
더구나 농삿일이 앞으로 시작되는데 밭두둑을 흠뻑 적셨으니 어찌 농부들의 경사가 아니겠는가?" 하시고,

암행어사 홍병신(洪秉臣)을 들어오게 한 후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각 영(營)과 각 아문에서 과연 모두 다 정례(定例)를 잘 지켜 혹시라도 위반함이 없는가,
액속(掖屬) · 군병(軍兵)의 무리들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지방관(地方官) 역시 백성을 노역시키는 일이 없는가?" 하시니,

홍병신이 대답하기를,
"이미 정례(定例)가 있을 뿐아니라, 전후로 칙교(飭敎)를 내려 극진히 거듭 반복하였으므로,
안으로는 각 관청과, 밖으로는 화성부가 감히 법을 어기고 넘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였다.

정조임금께서 명하시기를,
"금일 자궁(혜경궁 홍씨)의 어가를 편안히 모시고 화성행궁에 도착하였으나,
여러 날 피로가 심하실 것이라 송구하고 민망스럽다.
지금 약원도제거(藥院都提擧)가 역시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입시승선(入侍承宣)으로 하여금 대신(大臣)의 말을 제품(提稟)하여 알려 왔다.
과연 모레는 원소(圓所)에 나아가 행례해야 할 것임을 해방(該房)은 잘 알 것이다.
그러니 배정 일자를 대략 다시 조정한 후에 거행함이 옳을 것이다.
내일 먼저 성묘를 배알할 것인데, 이미 성묘를 배알하였으면 과거를 설행하여 사람을 뽑는 것은 역시 모레 해야 한다.
이것으로써 모두에게 분부하라." 하셨다.

명일 유생(儒生)들의 입장은 우화관(于華關)으로 하고, 무소(武所)의 설치 및 문무과의 방방(放榜)은 낙남헌(落南軒)으로 할 것을 정조임금께서 직접 하교하셨다.

화성행궁에 도착한 후 가후금군과 가전별초 등의 군사들은 화성부의 동구에서 휴식하고,
선구금군과 난후금군 등은 화성부의 동구 밖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합병하여 진을 치고 휴식하였다.
또한 한양의 성내 근무자들의 업무를 보고 받았다. 그 날의 보고내용은 다음과 같다.

* 보고내용 보기

1795년 음력 윤2월 10일 보고서인 장계의 내용이다.

유도대신(留都大臣)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김희(金喜),
수궁대장(守宮大將) 행사직(行司直) 조종현(趙宗鉉),
유도대신(留都大臣) 행사직(行司直) 김지묵(金持默),
유영(留營) 어영대장(御營大將) 이한풍(李漢豊),
유주 전 총융사(摠戎使) 신대현(申大顯)의 보고 내용이다.

" 신 희(喜)는 금일 문을 연 뒤 유도(留都) 당상(堂三) 3품 이상의 관리를 거느리고 왕대비전(王大妃殿 :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거처하는곳)과 중궁전(中宮殿 : 정조임금의 왕비인 효의왕후가 거처하는 곳)에 문안을 드리니 안녕하다고 하셨습니다. 어제 비변사(備邊司) 낭청(郎廳) 및 호위군관(扈衛軍官)을 분견(分遣)하는 일 외에 각 사(司) 외성문(外城門), 각 영(營) 유진(留陳), 궁장(宮墻) 밖의 각 군보(軍堡) 척후(斥候) 등의 곳을 일일이 살펴 보았는데 모두 탈이 없었습니다. 순라(巡邏), 야금(夜禁) 등의 일은 각별히 엄하게 타일러 근무케 하였습니다. "

" 신 종현(宗鉉)은 궁궐 안의 각 처를 돌아보았는데 신과 종사관(從事官) 정이수(鄭履綏), 병조낭청(兵曺郎廳) 최시순(崔時巡)은 순검(巡檢) 신칙(申飭)한 즉 모두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잡인이 난입하는 등의 일은 각 문(門) 수문장(守門將) 등에게 각별히 엄하게 타일러 단단히 경계근무에 임하라 하였습니다. "

" 신 지묵(持默)은 지난 밤 유도(留都)를 담당하였는데 군병(軍兵)은 무사하였습니다. 궁장 밖의 각 소(所) 입직(入直) 군병, 각 군보(軍堡) 요령(搖鈴) 장졸(將卒), 각 처(處) 유영(留營) 및 도성 9문 성내외(城內外) 도순라(都巡邏), 가항순찰(街局巡察), 궁장 밖의 별순라(別巡邏) 등은 모두 무사합니다. "

" 신 한풍(漢豊)은 지난 밤 유영(留營)을 담당하였는데 여러 장관(將官), 장교(將校), 군병(軍兵), 척후(斥候), 장졸(將卒)은 모두 아무 일이 없었으며, 궁장 바깥 및 각 처 또한 탈이 없습니다. "

" 신 대현(大顯)은 어제 임금의 수레가 궁을 나가신 뒤 각 문(門) 및 궁장 밖의 주간과 야간 순찰을 몸소 점검하고 신칙하였는데 모두 무사합니다. 유주(留駐) 군병(軍兵)의 일도 또한 탈이 없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아울러 보고합니다. "


원행을묘정리의궤 중 "장계 편(1795년 윤 2월 초10일자)"

화성참의 모든 일을 책임 맡은 당상으로는 장용내사인 서유대와, 규장각신으로 정리사인 윤행임, 그리고 장교 정도관이 맡았다.



참고문헌 : 원행을묘정리의궤 중 "연설 편 1795년 윤 2월 초10일자",
원행을묘정리의궤 중 "전교 편 1795년 윤 2월 초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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