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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현륭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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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륭원 도착

1795년 음력 윤2월 12일 인정(寅正) 3각 (오전 4시 45분경) 3취에 현륭원으로 출발하다.

인시(寅時 : 오전 3시~5시경)에 정조임금께서 혜경궁을 모시고
현륭원(顯隆園)에 나아가기 위해 거동하셨다.

정조임금께서 화성행궁에 임어하시여 하교하시기를,

"좌승지는 향축(香祝)을 받들고 먼저 원소에 나아가
혜경궁의 소차(小次)를 간검(看儉)하고 가교가 도착할 때까지 대기 하도록 하라."
하셨다.

인시 정 삼각에 삼취하였다.
때에 이르자 정조임금께서 군복을 갖추어 말을 타시고 혜경궁은 가교에 올라 출발하셨다.

중앙문 · 좌익문 · 신풍루를 지나서 팔달문으로 나와 상류천(上柳川) 가게 앞 길[店前路]에 이르시어,
혜경궁의 어가를 잠시 쉬도록 하고 백미음을 진어하셨다.

약방 제조(藥房提調) 심환지를 앞으로 나오라 명하시여 하교하시기를,

"혜경궁의 기후가 도중에는 한결 같이 강녕하시어 경행(慶幸)이 더할 나위 없더니
조금 전 가마 앞에서 문후하였을 때는 옥음(玉音)이 조화롭지 못하시였다.
혜경궁께서 몸이 편치않으신 것을 깨달아 알 수 있으니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경은 먼저 현륭원에 가서 혜경궁께 드릴 삼령다(蔘笭茶) 한 첩을 즉시 달여놓고 기다리도록하라." 하셨다.

이어 출발하시여 하류천(下流川), 황교(皇僑 : 지금 수원비행장 영내), 옹봉(甕峰 : 비행장 영내),
대황교(大皇橋 : 돌다리, 비행장 영내), 유첨현(?瞻峴)을 지나 유근교(?覲橋 :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 원소 앞에 있다.)
앞길에 이르러 여러 신하 및 장관(將官) 이하에게 모두 말을 내리라고 명하셨다.
유근교에서 말에서 내리신 정조임금은 걸어서 만년제(萬年堤)를 지나 현륭원 동구[洞口]에 이르러 하교하시기를,

"시위하는 인마(人馬)들은 화소(火巢 : 산불을 막기 위해 능원의 해자 밖에 있는 풀과 나무를 태워 버린 곳)근처에
함부로 난입(欄入)하여 수목(樹木)을 손상시키지 말게 하라." 하셨다.

어가를 따라간 가후금군과 가전별초 등은 정조임금께서 원소로 들어가시자
문밖에서 좌우로 나누어 찰주(札駐)하고,
선구금군과 난후금군 등은 문 밖 넓은 곳에서 합병하여 진을 이루고 휴식하였다.

정조임금께서 먼저 재실(齋室)밖 막차에 나가시어 혜경궁의 어가를 공손히 맞이하시여,
모시고 재실로 들어가셨다.
정조임금께서 친히 삼령다(蔘?茶)를 받들어 혜경궁께 올리셨다.
정리사가 미음(米飮)을 올리니
정조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머님의 기후가 좋지않아 겨우 삼령다를 올렸다.
미음은 진어하기가 좀 어려우니 잠시 두어두라." 하셨다.

정조임금께서 막차(幕次)에서 참포(?袍 : 연한 청흑색 옷)와
오서대(烏犀帶 : 검은 물소가죽으로 만든 띠)를 갖추시고 나와 작은 가마를 타시고,
혜경궁께서는 유옥소여(有屋小與 : 유옥교, 지붕이 있는 작은 가마)에 올라 원(園) 위에 나아가셨다.

두 군주(君主)가 혜경궁을 따라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비통(悲痛)함을 절제하지 못하여 울음소리가 휘장 밖에 까지 들려 나왔다.

정조임금께서 정리소에 명하여 삼령다를 올렸는데
혜경궁께서 진복(進服)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정조임금께서 또한 몹시 조급하고 당황해 하는 빛이 역력하셨다.

정리사 등이 휘장 밖에서 아뢰기를,

"성상께서 슬픈 감회를 억제하기 어려울 것이오나,
혜경궁의 마음을 더욱 비통에 젖게하여 혜경궁께서 혹시라도 병환이라도 나시면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더구나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데 극진히 위로하셔서
어서 행궁으로 돌아가시도록 명 하소서." 하였다.

정조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출궁할 때는 어머니께서 십분(十分)너그러이 억제하겠다는 하교의 말씀이 계셨다.
여기 도착하니 비창(悲愴)한 감회가 저절로 마음 속에서 솟아나
내 자신이 이미 억제할 수가 없었으니 더구나 어머니의 마음이야 어떠하시겠는가?" 하시고,

이어 차종[茶種]을 친히 받들어 권해 올리셨다.
잠시 지나서 정조임금께서 혜경궁을 모시고 귀환길에 오르셨다.
혜경궁의 어가를 모시고 홍살문[紅箭門]밖에 이르시자,
가마를 멈추라고 명하여 원(園)위를 첨망(瞻望)하고,
조금 있다가 비로소 다시 돌아갈것을 명하셨다.

정조임금께서 막차에서 다시 군복으로 갈아 입으신 후 말을 타시고,
혜경궁은 가교에 올라 재실(齋室)앞에 이르셨다.

정조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종전(從前)의 원행 시에 백관들이 의례대로 삽우(揷羽 : 모자에 깃을 꼿는 것)하고,
화성행궁에서 원소에 갈때에만 이를 제거하였으나,
이번에는 따로 다례(茶禮)를 행궁에서 하였고,
재령(齋令 : 재를 지낸다는 명령)이 없는데 백관(白官)이 삽우(揷羽)를 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시니,

행 우승지 이익운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현륭원에 가실 때 참포(?袍)를 입으셨으므로 백관(白官)이 감히 삽우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정조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재(齋)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와 같이 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는 친제(親祭)가 아니면, 전례(前例)에 따라
삽우하라는 뜻을 예도감(禮都監)에 분부하라."하셨다.

대가(大駕)가 동구(洞口)를 나와 하류천(下柳川)에 이르자
혜경궁의 어가를 잠시 머물게 하여 미음(米飮)을 올리시고
각신(閣臣) · 승지(承旨) · 사관(史官)에게 식사를 제공하였다.

이어 출발하여 팔달문으로 들어가 신풍루(新風樓) · 좌익문(左翊門) · 중양문(中陽門)을 지나,
봉수당(奉壽堂)에 나아가 혜경궁을 모시고 장락당(長樂堂)으로 들어가셨다.
정조임금께서 이날 현륭원을 관리하는 관원들에게 벼슬을 올려 주기도 하고, 포목 혹은 쌀을 상으로 주었다.
또한 현륭원의 원찰인 용주사 승려들에게도 상을 내려 주셨다.




참고문헌 : 원행을묘정리의궤 중 "연설 편 1795년 윤2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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