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화성의궤의 재현귀경에 오름

연관목차보기

귀경에 오름

1795년 음력 윤2월 15일 귀경길에 오르시다. (화성행궁을 떠나 시흥행궁으로 출발하시다.)

진시(辰時 : 오전 7시~9시)에 정조임금께서 혜경궁을 모시고 화성행궁으로부터 시흥행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둥하셨다.
이 때 정조임금께서 화성행궁에 임어하시여 하교하시기를,
"광주(廣州)· 시흥· 과천 등의 고을에 척후복병(斥候伏兵)을 여러 날 대기하고 있어서 걱정이 된다.
그들 각 지휘관들로 하여금 가마가 지나간 뒤에는 차례로 철수하여 해산시킬 것을 신전(信箭 : 통신화살)으로
수어청과 총융청 양사에게 전하라." 하셨다.

진시 정3각(正三刻 : 오전 8시 45분경) 삼취에 이르자,
정조임금께서 군복을 갖추어 입으시고 말을 타시고, 혜경궁은 가교를 타시고 복내당(福內當)으로부터 중양문(中陽門)을
나와 좌익문·신풍루를 자나서 장안문 밖에 이르렀다. 이 곳에는 문무과 별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꽃모자를 쓴 무동들을
데리고 줄을 서서 맞이했다. 가마가 진목정(眞木亭) 다리에 이르자 혜경궁의 가마를 잠시 머물게 하여 휴식을 가졌다.
정조임금께서 혜경궁께 미음 다반을 올리셨다.

외사 조심태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명하시어 정조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경은 군사를 거느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어가를 더 이상 따르는 것이 불가하다. 여기에서 영(營)으로 돌아가라." 하셨다.
장용영 외영의 군인들은 화성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어 행차는 미륵현(彌勒峴 : 지지대 고개)에 도착했다.

봄날은 지루한데 북대(北臺)에 오르니
이것은 바로 꽃구경 가는 것이 아니로다.
시로 시를 지어 관화곡(觀花曲)에 잇고
만세토록 빛나시기를 만수배(萬壽杯)로 비옵니다.


미륵현(彌勒峴)은 화성(華城)의 첫 경계가 된다. 정조임금께서는 해마다 능원(陵園)을 살피시고 돌아 가실때에 미륵현 고개 위에 이르러서 능원을 오래도록 보시고는 슬퍼하는 기색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이 고을 사람들이 그 곳에 돌을 둘러 쌓아서 대(臺)를 만들었다. 금년 행차에서 이것을 보시고 그 대를 부르기를 지지대(遲遲臺)라고 하셨는데, 시의 첫구에 언급되었다.

[시에 화답한 신하들로는 영의정(領議政) 홍락성(洪樂性)등 54인이다.]



참고문헌 : 원행을묘정리의궤 중 "연설 편 1795년 윤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