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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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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왕복(王服)은 대례복(大禮服), 제복(祭服)에 속하는 것이 면류관, 곤복이고, 조복에 속하는 것이 원유관, 강사포이고, 상복에 속하는 것이 익선관, 곤룡포이다.
이 밖에 국난을 당했을 때 전립에 융복을 착용하였고, 평상시에는 편복을 입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면복

면복은 군왕의 표신으로 삼았던 것으로, 왕이 종묘사직에 제사지낼 때나 정조(正朝)? 동지? 조회? 수책(受冊)? 납비(納妃) 등에 입었던 제복 및 대례복이다.
면복은 머리에 면류관을 쓰고 곤복을 입는데, 곤복(袞服)은 곤의(袞衣), 상, 폐슬, 혁대, 대대, 패옥, 수, 말, 석, 규로 이루어진다. 구장복이었다가 고종이 황제가 된 후 십이장복을 착용한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면류관

면류관은 한민족(漢民族)의 전형적인 관모(冠帽)였는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서례「제복도설(祭服圖說)」에서 보면, 평천판(平天板 ,면류관의 윗 부분인 사각형의 판 )은 앞이 둥글고 뒤는 네모났으며 , 겉은 검붉은 색[玄色] 증(繒)으로 덮고, 안은 분홍 색[?色] 증으로 쌌다. 평천판과 관신(冠身)을 옥형으로 연결시키고 금잠도를 꽂았다.
관의 앞뒤에 황? 적? 청? 백? 흑? 홍? 녹의 7색깔의 옥으로 만든 12류(旒)가 있다. 옥비녀에 붉은색 끈이 있고, 자주색 끈은 턱밑에서 매고 남은 것은 드리운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곤복

중국 황제는 십이류면 십이장복, 우리 국왕은 중국의 친왕례에 따라 구류면 구장복(九章服)을 착용하다가 고종이 황제위에 오르면서 십이류면 십이장복을 착용하게 되었다.
곤복에는 장문(章紋)이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산(山), 용(龍), 화(火), 촤충(華蟲), 종이(宗彛), 조(藻), 분미(粉米), 보, 불의 구장에, 황제를 표시하는 일(日), 월(月), 성진(星辰)을 더하여 십이장이 된다.
곤복의 구성은 의(衣), 상(裳), 중단(中單;받침 옷), 폐슬(蔽膝), 혁대(革帶), 대대(大帶), 패옥(佩玉), 수(綏), 말(襪;버선), 석(신발), 규(圭)로 되어 있는데, 이를 『국조오례의』서례「제복도설」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衣)는 검붉은색으로 되어 있으며 오장문이 있는데, 용은 양 어깨, 산은 등 뒤, 화, 화충, 종이는 양 소매에 각각 3개씩을 배치하였다. 의(衣)의 길이가 상(裳)의 장문을 덮지 않게 한다. 상(裳)은 분홍색 증(繒)으로 만들고 앞 3폭, 뒤 4폭이었는데, 앞폭에는 조, 분미, 보, 불의 사장문을 수놓았다. 중단(中單)은 흰색 증으로 하였으며, 푸른 색 선으로 깃, 도련, 소매 끝을 둘렀으며, 깃에도 불문 11개를 짜 넣었다. 폐슬은 상(裳)색과 같은 분홍색 증으로 하였으며, 위와 아래에는 선이 있고, 양쪽에 조, 분미, 보, 불의 사장문을 수놓았다. 패옥은 위에 형(珩)이 있어 그 위에 금구(金鉤)가 달렸고, 가운데에는 거(거)와 우(瑀)가 있다. 아래에는 충아(衝牙)와 두 개의 황(璜), 두 개의 적(滴)을 드리워 걸을 때면 충아와 황과 적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낸다. 대대는 붉은 색과 흰색을 합쳐 꿰맨 것이며, 규는 길이 구촌인으로 청옥으로 만들어졌다. 말(襪)은 버선으로 겉을 붉은색 단(緞)으로 하고, 안을 붉은색 초 로 하였으며, 석은 겉을 붉은색 단(緞), 안을 흰색 증(繒)으로 하였는데 모양은 같은 것이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조복

왕의 조복은 삭망 신하의 조하를 받을 때, 외국 사신을 접견할 때, 중국에 문서를 보낼 때 착용하던 관복이다.
원유관(遠遊冠), 강사포 (絳紗袍)로 되어 있으며, 고종이 황제위에 오르면서 원유관은 중국천자가 착용하던 통천관(通天冠)으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원유관(遠遊冠)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서례「관복도설(冠服圖設)」에서 원유관(遠遊冠)을 보면, 검붉은 색 비단으로 만들고 9량(梁)이었는데, 각 량마다 오채옥으로 9옥씩 앞뒤 십팔옥을 장식하였다. 양쪽에 2줄의 붉은 색 끈이 있어 턱 밑에서 매고 나머지는 늘어뜨렸으며, 금비녀을 꽂았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강사포(絳紗袍)

포(袍), 상(裳), 중단(中單;받침 옷), 폐슬(蔽膝), 혁대(革帶), 대대(大帶), 패옥(佩玉), 수(綏), 말(襪;버선), 석(?;신발), 규(圭)로 되어 있다.
포(袍)와 상(裳)과 폐슬(蔽膝)은 진홍색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장문이 없고 모양은 구장복과 같다. 중단은 흰색 비단으로 만들었는데, 붉은색 깃에 불문11개를 그렸고, 도련? 소매 끝에 붉은색 선을 하였다. 말(버선)은 흰색, 석(신)은 검은 색이다. 흰색의 비단(羅)으로 만든 방심곡령을 달았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상복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는 왕의 상복이고 왕세자의 법복이다. 곤룡포는 왕이 평소 집무 때에 입던 옷으로 면복과 조복보다 많이 입었다. 익선관포, 황룡포, 홍룡포, 자적룡포, 자적단령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익선관

익선관은 복두에서 연유한 것으로, 사모와 같이 모체가 앞이 낮고 뒤가 높아 턱이 진다. 뒤에는 매미 날개 모양의 작은 뿔 2개가 위쪽을 향해 솟아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곤룡포

곤룡포는 대홍색의 단 [여름에는 사(紗)]으로 지었으며, 포의 앞뒤와 좌우 어깨에 왕을 상징하는 금색의 5조룡(五爪龍;다섯 개의 손톱이 달린 용)의 보(補)를 더하였다.
옥대를 하고, 신은 검은 사슴가죽신, 여름에는 검은 칠피를 신었다. 곤룡포 밑에는 답호와 철릭을 받쳐 입었는데, 이것은 융복도 된다. 답호는 철릭 위에 입던 것으로 소매, 무, 앞섶이 없으며, 뒷솔기가 허리 아래로 터져 있다.
철릭은 저고리와 치마가 붙은 형태로 허리에서 주름을 잡아 연결하였다.
소매는 두리소매인데, 한쪽에는 단추를 달아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었다.
국난시(國亂時)에는 전립에 철릭으로 된 융복(戎服)을 착용하였는데, 융복에는 보를 가식(加飾)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편복

편복은 사대부(士大夫)의 편복과 차이가 없이 우리 전통의 저고리, 바지 및 포(袍)로서 답호, 철릭 등을 착용하였다.

참고문헌 : http://www.genealog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