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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백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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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복

조선왕조시대 백관복에는 조복(朝服), 제복(祭服), 공복(公服), 상복(常服) 이외에 문무백관에게는 시복(時服)이라는 것이 있었고, 유사시 몸을 가볍고 재빠르게 움직이기 위한 융복(戎服)이 있었으며, 또한 무관에는 따로 구군복(具軍服)의 제도가 있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조복

조복은 경축일, 원단, 동지 및 조칙을 반포할 때나 진표할 때에 착용하였다.
이는 금관조복(金冠朝服)으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태종 16년(1416) 정월에 관복색을 설치하여 그 해 3월에 명의 홍무예제에 의하여 조복과 제복의 제도가 만들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양관(梁冠;금관)

관의 앞이마에서부터 관의 정수리로 마루져 올라가는 부분에 세로선이 있는 것을 양(梁)이라고 한다. 이 양의 수에 따라 품위의 상하를 구별하였는데, 1품은 오량금관, 2품은 사량금관, 3품은 삼량금관, 4품 내지 6품은 이랑금관, 7품 이하 일량금관이었다.
양관은 둘레의 당초모양문의 부분을 도금하였다. 그 외는 검은 색이었는데, 여기에는 목잠이라고 하여 관을 가로지르는 비녀가 있어 금박가루로 칠을 했다. 여기에서 금관조복의 명칭이 나왔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복(服)

『경국대전』「예전 의장조」에 의한 조복의 제도를 보면,
?적초의(赤?衣) : 깃,도련,소매 끝에는 검은 색 선을 둘렀으며, 1품에서 9품까지 동일하였다.
?적초상(赤?裳) : 모양은 앞은 3폭, 뒤 4폭의 상(裳)이며 여기에도 검은 색 선을 둘렀으며, 각 품이 동일하였다.
?백초중단 : 흰색 초로 만든 중단으로 깃, 도련, 소매 끝에는 검은 색 선을 둘렀으며, 각 품이 동일하였다. 조선 말기에 청색으로 바뀌었다.
?폐슬(蔽膝) : 상색과 같은 붉은색 초(?)를 사용하였고 같은 색으로 선을 둘렀으며, 각 품이 동일하였다.
?대대(大帶) : 겉은 흰색 안은 붉은 색의 비단을 겹으로 하여 만든 큰 띠이며, 각 품이 동일하였다.
?혁대(革帶) : 장식이 품계에 따라 다르다. 1품은 누런 빛의 물소뿔(犀帶), 정2품은 조각한 금색장식물[삽금(鈒金)], 종2품은 무늬를 조각하니 않은 금판장식[소금(素金)], 정3품은 삽은(鈒銀), 종3품은 소은(素銀)였고, 4품은 소은(素銀), 5품에서 9품까지 검은 물소뿔로 만든 대를 사용하였다.
?패옥(佩玉) : 형태는 왕·왕세자복의 것과 같고 1품에서 3품까지 번청옥(燔靑玉)으로 하였고, 4품 이하 9품까지는 번백옥으로 하여 품계를 가렸다.
?수(綬) : 수놓은 무늬와 매달은 환(環)에 따라 품계를 가렸다.
?말(襪) : 백포(白布)를 사용하였으며, 각 품이 동일하였다.
?혜(鞋;신) : 각 품 모두 검은 가죽 신발이었다.
?홀(笏) : 1품에서 4품까지는 상아로 만든 홀이고 5품에서 9품까지 나무 홀이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제복(祭服)

문관의 제복은 왕이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낼 때 함께 참여하면서 착용하였다.
백관의 제복제도는 태종 16년(1416), 관복색을 설치하여, 조복과 제복에 대한 제도적 확립을 보았다. 명의 양관제도를 따라 다시 제정한 양관제도이다. 이후 성종대의 『경국대전』의 제복은 다음과 같다.
관의 앞이마에서부터 관의 정수리로 마루져 올라가는 부분에 세로선이 있는 것을 양(梁)이라고 한다. 이 양의 수에 따라 품위의 상하를 구별하였는데 1품은 오량금관, 2품은 사량금관, 3품은 삼량금관, 4품 내지 6품은 이랑금관, 7품 이하 일량금관이었다. 제복의 양수는 조복과 같으며 다만 조복은 제복보다 금도금 부분이 많다.
푸른색 초로 만든 포[靑?衣]를 입었고, 포와 흰색 초로 된 중단의 깃, 도련, 수구와 적초상의 단은 검은 색의 장식으로 되어 조복의 푸른 색 장식과 차이가 있다. 방심곡령(方心曲領)이 첨가되고, 폐슬? 대대? 수? 말? 혜? 홀 등은 조복제와 동일하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공복(公服)

임금 알현∙사은∙부임전 배사(陪祀) 때, 왕세자에게 정조와 동지 하례 시, 중궁과 왕세자에게 사은 시에 공복을 착용하였다. 세종 8년 공복과 상복을 구분 제정하였다.
관모는 복두, 의복은 홍.청.녹 3색의 단령포에 대∙ 홀∙화제 인데 포의 소매크기로 상복과 구분하였다. 성종대까지 품계에 따라 홍∙청∙녹색을 입었다가 영조대에는 1.2품은 엷은 분홍색의 포[담홍포], 3품은 당상관이 담홍포, 당하관,4, 5, 6, 6, 7, 8, 9품이 모두 붉은색 포[홍포]를 입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상복(常服)

문무관이 중대사 외에 평상 집무시에 착용하였다. 상복은 편복(便服), 관복(官服)이라고도 하였다.
단종 이후 명의 흉배제도를 따라 3품 이상 흉배를 달았으며, 성종대에 이르러 관모는 사모를 쓰고 품에 따라 포와 포의 소매크기, 품에 따른 대(帶)로 공복과 상복을 구분하였다.
영조대의 『속대전』에 따르면 관모는 검은 색 사(紗)로 만든 오사모(烏紗帽)에 문사각[(紋紗角:무늬있는 사(紗)로 만든 사모의 뿔)]이고 당하관 9품까지 단사각 사모를 착용하였다. 국상이 있을 때는 흰색 사모를 썼다.
의복은 1품과 2품, 3품 당상관은 남색 첩리, 3품 당하관 이하 7품 까지는 푸릍 빛이 도는 검은 색 첩리(교외 동가시에는 3품에서 9품까지 모두 붉은 색 첩리로 동일)를 입는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