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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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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

융복

융복은 문무관이 몸을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기 위한 복장으로서 왕의 행차를 수행할 때,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될 때, 그리고 국난을 당하였을 때 착용한다. [속대전]에서는 품계를 색으로 구별하고 있어 당상관은 자주색 립[紫笠]에 패영을 하였고, 당하관은 검은 색 립[흑립]에 정영을 하였으며 ,철릭은 당상관이 남색 철릭, 당하관이 푸른 빛이 도는 검은 색 철릭(왕의 교외거동시에는 붉은 색 철릭)을 착용하였다. 조선 말기에 당상관은 칠사립으로 변하고, 당하관은 그대로 흑립이지만 각각 패영.정영이 폐지되었다.「국학도감」에 나오는 융복은 주립.청철릭.환도.통개.목화.입식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주립(朱笠)

붉은 칠을 한 갓으로 끈이 있고 호랑이 수염 모양의 장식(호수입식 : 虎鬚笠飾)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청철릭

저고리와 치마가 붙은 형태의 옷으로 폭이 넓고 술이 달린 끈을 띠고 대단을 길게 늘였으며, 병부가 든 주머니를 대 앞 왼쪽에 나란히 달고 있다.

참고문헌 : http://www.genealogy.co.kr

환도

어깨에 매듯이 왼쪽 등 뒤로부터 앞으로 차는 군도(軍刀)이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통개(筒개)

활과 화살을 넣는 것으로 천과 가죽으로 버선 모양과 같이 만든 것인데, 환도와 같은 쪽에 메고 있다.

참고문헌 : http://www.genealogy.co.kr

융복목화

목이 길고 넓은 신발로, 장화 모양을 내기 위하여 발목까지 나무를 대었다. 바닥은 나무이고, 목은 전(氈) · 가죽 · 융 · 금단(錦緞) 등으로 겉을 싸고 솔기에는 붉은빛의 선을 둘렀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입식(笠飾)

이에는 호랑이 수염(호수: 虎鬚)과 해오라기 모양이 있다. 입식으로 보리 이삭을 꽂다가 영조대에 호랑이 수염을 만들어 꽂게 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구군복(具軍服)

구군복은 융복에 있어서 철릭을 간소화하여 소매를 좁혀 까치동으로 하고 허리부분의 주름을 없애고 양쪽 겨드랑이 밑 등솔 아래를 터서 민첩하게 동작할 수 있도록 한 동시에 그 위에 다시 반비를 덧입어 위엄을 갖추게 한 것이다. 이 군복을 구군복이라고 하였는데, 전립, 이엄, 동달이, 전복, 목화로 구성되어 있고 전대를 띠고 병부를 차고 환도, 통개, 등책을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전립(戰笠)

신분이 높은 무관이 쓰는 전립을 '안올림 벙거지'라고 하였다. 전립은 모전(모전)이라고 하는 품질 좋은 검정색 모직물로 겉을 하고, 안은 구름무늬를 짠 비단(운문단)으로 만들어 부드럽고 두껍다. 장식으로 공작깃털, ?은 색 털로 된 상모(象毛), 정자 등을 달고 밀화 구슬로 끈을 달았다. 무관은 전립 밑에 준모(駿帽)를 썼는데 탕건의 역할을 하였다.
겨울에는 방한용 이엄을 쓰고 그 위에 전립을 썼는데, 무관의 이엄은 만선두리라고 하였다. 하예, 여정이 쓰는 전립은 벙거지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전복

붉은 안을 받친 전복에는 같은 색의 넓은 띠를 매고 전대를 앞에 늘어뜨렸으며, 또한 병부를 찼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동달이

전복 안에는 협수(狹袖;동달이)를 입었는데, 그 모양은 두루마기와 비슷하면서 뒤가 트이고 주홍색 길(몸판)에 붉은 색 좁은 소매가 달린 것이었으며, 소매 끝에 팔찌를 매고 있었는데 이것은 활을 쏘는 등의 활동을 할 때만 하였다. 또 동달이 안에는 경대를 두른 홀태바지와 위에 속등거리를 입었는데, 이 속등거리 왼쪽 겨드랑이 밑에는 칼을 차는 고리가 달려 있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구군복목화

목이 길고 넓은 신발로, 장화 모양을 내기 위하여 발목까지 나무를 대었다. 바닥은 나무이고, 목은 전(氈) · 가죽 · 융 · 금단(錦緞) 등으로 겉을 싸고 솔기에는 붉은빛의 선을 둘렀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