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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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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원래 햇볕이나 비와 바람을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쓰개였으나 재료, 형태, 제작법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하여 조선시대에 입제가 확립되었다.
입은 모자와 대우(관모의 몸체부분;모자집)의 양태(모자의 테두리 차양)이 뚜렷이 구별되는 패랭이형은 패랭이, 초립, 흑립의 단계로 발달되어졌고, 그 구별이 어려운 방갓형[방립형]으로 나눌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패랭이

패랭이는 차양자, 폐양립(蔽陽笠), 평양립(平凉笠)이라고도 하는데, 가늘게 쪼갠 댓개비(죽사:竹絲)로 갓모양을 엮은 관모이다.
패랭이는 갓으로 이행하는 중간기에 속한 것으로, 그 형태는 반듯하게 내려간 방립의 허리를 잘룩하게 꺾어서 대우와 양태의 구분이 분명하다.
흑칠을 한 흑립이 양반층의 관모가 된 것과는 달리 본래의 희색 그대로인 패랭이는 역졸, 보부상, 백정 등의 서민층의 쓰개가 되었다.

참고문헌 : http://www.genealogy.co.kr

초립(草笠)

패랭이와 비슷하지만 패랭이보다 대우와 양태의 구분이 더 명확하다. 흑립과 같이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모자집과 둥근 갓양태로 되어 있고 모자의 윗판도 평평해서 패랭이보다 한층 흑립에 가까운 형태를 이룬다. 다만 흑립의 양태가 약간 아래로 굽은 듯 한 데 비해서 초립은 위로 끝이 벌어져 올라간다.
조선 초기에는 일반 하서인이 구별 없이 착용하다가 흑립이 생기면서 패랭이와 함께 상인의 쓰개가 된다.
'초립동'이란 양반계급에서 새로 관례한 소년이 흑립을 쓰기 전까지 망건 위에 초립을 쓴 데서 나온 말이다.

참고문헌 : http://www.genealogy.co.kr

흑립(黑笠)

보통 검정 갓을 말하며 칠립(漆笠) 또는 평립이라고도 하고 주로 양반층이 사용하였다.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원통형의 대우에 양태를 단 것으로 양태는 테두리가 약간 곡선을 이루며 모자의 윗판은 평평하다.
제조방법은 머리카락만큼 가늘게 오린 댓개비로 양태와 대우를 짜고, 그 위에 베, 비단, 말총 등을 덮어 싼 다음 거기에 검은 옻칠을 한다.
대우와 양태를 싸는 재료에 따라 총대우(말총으로 만든 것), 저모립 (돼지털로 만든 것), 죽사립( 댓개비를 실같이 가늘게 해서 만든 것), 포립 (죽사립 위에 얇은 비단을 싼 것), 죽저모립(돼지털과 대를 섞은 것) ,음양립(대우는 말총으로 하고 양태는 포로 싼 것) 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백립(白笠)

흑립은 검은 색이 원래 색이지만 용도에 따라서 색을 달리하였다. 주립은 붉은 옻칠을 한 것으로 문신 당상관의 융복에 착용했고, 백립은 국상시 백성들이 썼고, 또 사인(士人)은 삼년상을 치루고 담제까지 패랭이 대신 썼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전립(戰笠.氈笠)

조선시대 무관과 군인들의 군복에 사용하던 모자이다. 전립은 포립에 비해 작고 뾰족했으나, 양태가 점점 넓어져 포립과 다름없게 되고 사계절을 모두 쓰게 됨으로써 무인의 융복만이 아니라 사대부나 일반에까지 널리 착용되었다. 신분이 높은 무관이 쓰는 전립을 '안올림 벙거지'라고 하여 품질좋은 검정색 모직물, 안은 남색 구름무늬 비단을 사용하고 장식으로 공작깃털, 상모(象毛; 또는 호랑이 수염), 정자를 달고 밀화 구슬로 끈을 달았다. 하급군인이나 관아의 하예의 전립은 '벙거지', '벙테'라고 하며 농악군이 쓰는 것은 '돌모'라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삿갓과 방갓(方笠型)

삿갓은 햇빛이나 비를 가리고 부녀자들의 외출용으로도 사용되던 것으로 농립(農笠), 우립(雨笠), 야립(野笠), 노립(蘆笠) 등으로 표기된다.
갈대를 쪼개서 만든 '삿'을 원료로 하여 뾰족하게 꼭지를 얽고 아래는 넓게 벌어지게 엮는다.
방립은 조선시대에는 상(喪)을 당한 사람들의 쓰개로 남아 상립(喪笠)이라고도 하였다 .삿갓과 달리 가장자리를 네 갈래로 마무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