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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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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저고리 위에 입는 겉옷으로, 예의와 방한의 목적으로 입었다. 우리나라 포의 기본형은 곧은 소매에 옷깃은 곧은 깃이며, 깃과 옷섶. 소매 끝. 밑단에 다른 색 천으로 선을 대고 길이는 무릎 아래까지 오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예를 중시하여, 외출시는 물론 평상시에도 관모를 쓰고 포를 입었다. 고려 시대부터 입어 온 직령과 철릭. 심의를 포함하여 여러 종류의 포가 있었는데 시대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여 고종23년과 32년(1895) 2차례에 걸친 의제개혁으로 두루마기 하나로 통일되었다.

참고문헌 : http://www.genealogy.co.kr

직령

옷깃이 곧게 생긴 것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 말기까지, 서민에서부터 왕까지 두루 착용하였다. 형태는 초기에는 좁은 소매에 목판 깃이고 무는 좁았다. 중기에는 넓은 소매에 옷깃은 칼깃이고, 넓어 진 무는 윗쪽을 뾰족하게 접어서 뒤로 젖혀 입었다. 후기에는 넓은 소매에 현대의 두루마기 깃과 같은 완만한 깃이고, 무는 완전히 뒤로 젖혀 뒷길(몸판)에 무의 윗쪽을 꿰매어 고정시켰다. 고종 32년 이후 두루마기 형태로 만들어졌다. 직령은 형태에 따라 목판깃. 당코깃. 칼깃으로 나뉜다.

참고문헌 : 한국복식사전(김영숙,1999,미술문화)

목판깃

깃의 형태가 나무판과 같이 사각의 직선형 깃으로, 남녀 의복 모두에 사용되던 것으로 조선 초기 포와 저고리에서 유행하였고 특히 저고리에서 발전하였다. 목판깃의 포와 저고리는 대개 직선적으로 구성된 특징을 지닌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당코깃

목판깃에서 깃 머리가 동그랗게 곡선화화한 것이다. 목판깃의 곡선화는 음양에서 음의 상징이 표현된 것으로 여자저고리 전용이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칼깃

깃 궁둥이의 형태가 반달이나 칼과 비슷한 깃으로 반달깃이라고도 한다. 칼깃은 직령, 철릭, 도포, 창의와 칼깃 저고리에 주로 쓰이는 깃으로 포 중심의 깃이다.

참고문헌 : http://www.genealogy.co.kr

창의류

창의는 옷의 어느 부분이 터져 있는 옷이다.
무의 있고 없음과 소매의 크기, 형태에 따라 대창의, 소창의, 중치막, 학창의로 나눈다.

참고문헌 : http://www.genealogy.co.kr

창의(莎衣)

창의는 대창의를 가리키며, 큰창옷이라고도 한다. 창의는 소매가 넓으며 무가 있고, 뒷솔기가 갈라졌으고 무 양옆이 트인 옷이다. 창옷은 벼슬아치의 평상복 및 공복의 받침옷이었다. 사대부가 외출할 때 실로 짠 가는 띠를 두르기도 했다.

참고문헌 : http://www.genealogy.co.kr

중치막(中致莫)

중치막은 옷깃이 곧은 깃이며, 소매는 넓고, 무는 없으며, 옆트임이 겨드랑이부터 있다. 관복의 밑받침옷으로 주로 사용되었고 일반인들은 외출복으로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학창의(鶴莎衣)

형태는 대창의와 같으나 색은 흰색이고, 옷깃, 소매 끝, 옷단에 검은 선을 둘러 심의와 비슷하게 보였으나 허리에 매는 띠가 달랐다.
학창의는 옛날부터 신선이 입는 옷이라고 하여 사대부의 평상복으로 쓰이고 덕망 높은 도사나 학자가 입었다.

소창의(小莎衣)

소창의는 창옷이라고 한다. 모양은 중치막과 같으나 소매는 좁다. 대창의나 도포의 받침옷으로도 사용되고, 평상시 바지 저고리 위에 입고 가는 띠를 띠기도 했다. 주로 하인이나 하급관리들이 입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단령(團領:둥근 깃)

둥근 깃모양으로 인하여 단령 또는 원령(圓領)으로 불렸다. 단령은 신라 진덕여왕 2년(648) 김춘추가 당에서 받아 온 이래 조선말기까지 왕의 의례복과 관복(官服)으로 사용되었으며, 옷의 색깔, 흉배, 대(帶)로서 신분을 구별하였다. 원래는 홑옷인 답호, 철릭, 직령심의 등을 속에 입고 그 위에 단령을 2벌로 겹쳐 입었으나 임진왜란을 전후로 직령과 단령을 한벌로 함께 바느질하여 겉감은 둥근 깃, 안감은 곧은 깃으로 구성된 겹옷으로 변하였다. 또 목파임이 깊어지고 사각형 무를 뒤로 넘겨 처리하는 법이 변화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철릭(天翼)

상의와 잔주름을 잡은 상(裳)이 연결되고, 소매가 넓으며 곧은 깃에 옷섶이 여며지는 포이다.
철릭은 첩리(貼理), 천익(天翼), 첩리(帖理), 천릭(天益), 첨리(帖理) 등 다양하게 기록되고 있으나 전기에는 첩리, 후기에는 천릭으로 표기된다.
원래 단령 밑에 입는 받침옷이었는데, 한 쪽 또는 양쪽 소매를 반소매로 만들고 따로 긴 소매를 만들어 매듭단추로 연결한 실용적인 옷이다.
임진왜란 당시 왕과 문무관의 공복으로 되었다가 전쟁 후 융복으로 제도화되었다. 『속대전』에 '당상관은 남색, 당하관은 검푸른색, 교외 동가시에는 '홍색첨리'라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 http://www.genealogy.co.kr

도포(道袍)

곧은 깃에 무가 달려 있고, 소매는 넓은 소매이다. 옷의 뒷길은 무와 연결되어 있는 허리부터 터져있고 그 위에 뒷자락이 하나 더 붙어 있어서 말을 탈 때나 앉을 때 편리하며 뒷모습이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도포 위에 실로 짠 허리띠를 띠었는데 신분에 따라 당상관은 분홍색이나 자주색, 당하관은 푸른 색이나 녹색을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심의(深衣)

주자학과 함께 송에서 전래된 것으로 유학자들의 관례복과 법복으로 착용되었다. 흰색이며 위와 아래의 치마가 연결된 옷이다.
위의 저고리는 4폭으로 만들어 4계절, 아래 치마는12폭으로 이어서 치마를 만들어 12달을 뜻한다고 한다. 깃모양은 마주 닿는 깃, 목판 깃, 곧은 깃 등 다양하고 옷깃, 소매 끝, 치마의 단에 검정선을 대고 허리에는 대대를 매고 대의 앞에는 오색실로 짠 끈을 묶어 늘어뜨린다. 머리에는 주로 복건을 쓴다. 사대부가 아니면 입지 못하고 현재도 집안에 따라 제복이나 수의로 사용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난삼(?(?)衫)

난삼은 조선시대 생원. 학생. 사인이 입었던 옷으로 옥색 명주로 만들어 넓은 소매에 검은 색 선을 둘렀다. 색깔이 앵무새 색과 닮았다고 하여 앵삼이라고도 한다. 과거 급제 후 임금님이 내려준 어사화를 달고 삼일 유가할 때 입었던 옷이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장의(長衣)

장의는 곧은 깃에 앞길은 좌우가 같은 모양이고 깃은 목판 깃이다. 겨드랑이 아래에 삼각형의 무가 달려 있고, 소매끝에는 흰색의 거들지를 넓게 댔다. 질좋은 고급 비단이나 무명 등을 사용하였고, 방한용으로 솜을 두거나 누빈 것이 많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남자 옷으로 사용된 듯하지만 조선 후기에 여자들이 내외용 쓰개로 사용하게 되어, 이름도 장옷으로 변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두루마기

이 옷은 깃이 곧은 깃이며 사방이 모두 막혀있다는 뜻에서 두루마기라고 하였다고 하며, 한자어로 주의(周衣) 또는 주차의(周遮衣)라고 한다. 우리 기본 포의 형태에서 통일 신라 시대쯤에 무도 생기고 목판 깃이 되고, 고려 말기에 섶의 여밈이 깊어 지고 옷고름이 생겼으며 현대의 두루마기 형태가 되었다. 두루마기는 상류층의 방한용으로 또는 겉옷의 받침용으로, 도포를 입지 못하는 상민 계급의 겉옷으로 착용되어 그 격이 낮았다. 그러나 고종23년(1883)과 고종32년(1895)을 통한 의제개혁으로 사복은 도포. 직령. 창의. 중의를 모두 폐지하고 남녀 귀천 없이 모두 검은 색 두루마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