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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오방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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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색

음양오행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문화권에서 우주인식과 사상체계의 중심이 되어온 원리로서 우주의 본원에는 음(陰), 양(陽)의 두 기(氣)가 있음으로 천지 만물은 이 두개의 기로 이루어졌다는 역학적인 이론이 천문학적 철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음양의 두 기운이 다섯 가지 원소를 생산하였는데,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의 오행이다. 오행이 운행(運行)함에 있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일과 서로 충돌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것이 상생상극(常生相剋)이다. 이 오행에 상응하는 오색은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이고,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가 따른다.
중앙과 사방을 기본으로 삼아 오방이 설정되며, 색상 또한 오방이 주된 골격을 이루고 있는 양색(陽色)으로써 오색을 기본색(正色)으로 배정하고 그 다섯 방위사이에 놓이는 사이색(間色)을 음색(陰色)이라고 한다.
음색은 녹색, 벽색(짙은 푸른색), 홍색, 유황색, 자색이다.
황(黃)은 오행 가운데 토(土)로 우주중심에 해당하고 오방색의 중심으로 가장 고귀한 색으로 인식되어 임금만이 황색 옷을 입을 수가 있었다.
청(靑)은 오행 가운데 목(木)으로써 동쪽에 해당하고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으로 창조, 생명, 신생을 상징하며,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사용되었다.
백(白)은 오행 가운데 금(金)으로 서쪽에 해당하고 결백과 진실, 삶, 순결 등을 뜻하며 우리민족이 흰 옷을 즐겨입는 원인이기도 하다.
적(赤)은 오행 가운데 화(火)에 상응하며 만물이 무성한 남쪽이며 태양, 불, 피 등과 같이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 적극성을 뜻하며 가장 강력한 벽사의 빛깔로 쓰여졌다.
흑(黑)은 오행 가운데 수(水)에 상응하며 북쪽이고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

계급의 상징복색

한국에서 복색 제한의 전통은 삼국시대의 관복제도를 통해 뚜렷이 나타난다. 삼국 중 고구려에서는 비교적 분화 정도가 미약하고 백제와 신라에서는 이보다 한층 세분화되었는데, 신라에서는 신분에 따른 차등이 복색뿐만 아니라 집이나 수레에까지 적용되었으며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었다. 신라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의 복색에는 여러 번의 변화가 있었고, 예외적인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자색, 황색, 적색의 3색이 왕의 복색으로 사용되었으며 일반인들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조선 태종 때까지는 고려사회의 여파로 신분에 따른 구별이 엄하지 않아 모든 관리에게 짙은 남색 옷이나 검붉은 옷을 입도록 장려했지만 세종조에 이르러서는 각 관청의 하급 관리와 지방의 관리 , 그리고 상공(商工)에 종사하는 사람, 노비 등 천민에게는 붉은 옷을 입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복색(服色)을 구분했다.
선조 때 전란(戰亂)중과 전후(戰後)에는 비상복(非常服)으로 위아래 검은 옷을 입도록 했으나 질서가 회복되면서부터 당상(堂上:正二品 이상)은 남색 옷을, 그 이하는 검은 옷을 입도록 했다.
성종(成宗) 때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면 공복(公服)있어 1품(一品), 2품(二品), 3품(三品)까지는 붉은 옷, 3품종(三品從)에서 4, 5, 6품까지는 푸른 옷, 7, 8, 9품은 초록빛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때 복색뿐만 아니라 관복의 띠에 사용되는 색도 제한했으며 장병(將兵)의 복색도 계급에 따른 제한이 있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정신문화연구원), 한국의 유교건축(김지민,2002,발언)

음양오행사상과 복색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흰옷의 전통이 오행사상(五行思想)에 어긋나기 때문에 흰옷을 입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금령이 내려지기도 했었다. 오행의 원리에 의하면 고려는 중국의 동방(東方)이요 동방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의 목방(木方)에 해당되고, 동(東)=목방의 색깔은 청(靑)색이므로 흰옷을 입는다는 것은 곧 금목상극(金木相剋)의 원칙에 따라 모순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흰색과 옥색 등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흰색계통의 옷의 착용은 계속되었다.
태종이 팔도의 각 군졸의 복색을 푸른 옷으로 정한 이유는 "우리 나라는 동방(東方)에 있고 따라서 동방색(東方色)인 청색(靑色)을 숭상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영조실록(英祖實錄) 권(卷)10에는 "모든 공경(公卿), 선비, 서민을 막론하고 길복(吉服)으로 푸른 옷을 입도록 하라고 명했다"라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황색(黃色)은 중앙을 상징하는 색이며 중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천자색(天子色) 이었다. 고려와 조선 초기의 황색 옷의 유행은 세종 때까지 계속 되었으며 마침내 세종 때에는 천자색(天子色)인 황색(黃色), 자색(紫色), 현색(玄色)에 대한 금령을 내리고 세종 자신도 붉은 옷으로 곤룡포를 지어 입었다고 한다.
또한 색동옷에는 음양오행의 색이 거의 모두 포함되어 만물의 조화라는 뜻과 액을 피하고 복을 받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검은 색은 죽음이나 북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교육문화(장재천,2000, 아세아 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