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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기타등용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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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등용제도

취재

조선시대 하급관리를 채용하기 위해 실시한 시험으로, 조선시대에는 관원은 물론 서리(胥吏)까지도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였다. 취재에는 하급 관리인 서리와 녹사(綠事) 등을 뽑는 이조취재(吏曺取才)와 기술관을 뽑는 예조취재(禮曹取才) 가 있었다.

이조취재

이조취재에는 수령(守令), 외교관(外敎官), 역승(驛丞), 도승(渡丞), 서제(書題), 음자제(蔭子弟), 녹사, 도류(道流), 서리(書吏) 등의 선발 시험이 있었다. 상급 서리는 녹사취재로, 하급 서리는 서리(書吏)취재로 각각 일원화되어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이조취재는 사서(四書: 論語, 孟子, 中庸, 大學)와 오경(五經:周易, 書經, 詩經, 春秋, 禮記) 중 일부나 『대명률(大明律)』,『경국대전』 중의 일부를 시험하는 강(講)을 비롯하여 제술(製述)및 서산(書算) 중에서 직임에 맞는 것을 시험하였다.
수령취재는 강으로는 사서와 일경 및 『대명률』, 『경국대전』을 제술로는 치민방략(治民方略)을 시험하였는데, 조선 후기에는 제술이 혁파되었다.
외교관은 지방 관사의 교관직으로 취재는 매년 정월에 40세 이상자에게 사서와 삼경으로 선발하였다.
음자제 취재는 매년 정월에 공신 및 2품 이상의 아들, 손자, 사위, 동생, 조카(원종공신인 경우 아들 손자만 해당됨)와 실직(實職) 정 3품관의 아들, 손자 및 이조, 병조, 도총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관원과 부장(部將), 선전관을 지낸 이의 아들로서 20세 이상된 자에게 응시자격을 주었다. 강으로 사서와 오경 중에서 각각 한 책씩 시험하였다.
역승, 도승, 서제의 취재는 강으로 『경국대전』을 제술로 계본(啓本: 왕에게 올리는 문서), 첩정(牒呈: 상관에게 올리는 문서), 관(關: 동등한 관청사이에 조회 등을 위하여 교환하던 문서) 중에서 행산(行算)을 시험하였다.
녹사취재는 강으로 사서와 오경 중에서 각각 한 책과 『대명률』,『경국대전』을 제술로는 계본, 첩정, 관 중에서 하나를 서산으로는 해서 언문(言文,한글), 행산을 시험하였다.
도류취재에는 강으로 사서오경 중에서 각각 한 책과 서산으로 해서를 시험하였다.
서리취재에는 서산으로 해서와 행산을 시험하였다. 3년마다 여러 읍(邑)의 교생가운데
나이가 많고 실력이 떨어지는 자를 도호부 이상에서는 2인, 군 이하에서는 1인씩 정하여 뽑되 교생이 없을 경우에는 역(役)이 없는 평민으로 대치할 수 있었다.

예조취재

예조취재는 각 기술학의 전공자인 제학생도(諸學生徒), 잡과합격자인 권지(權知) , 전직 기술관등을 대상으로 하여 주로 각각의 전공서적들을 시험하였다. 예조취재에 선발된 기술관은 해당 기술 아문의 녹관체아직(祿官遞亞職)이나 군직(軍職)체아직을 받았으며, 차점자는 외직에 임명되었다.

천거제

조선시대에 학문과 덕성이 뛰어난 인재 등을 추천을 통하여 관리로 등용하는 제도로, 전 · 현직관리의 승진이나 전보의 절차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나, 관직이 없는 선비가 처음 관직에 나아갈 수 기회를 주었다. 학덕이 탁월하면서도 재야에 묻혀 있는 선비를 천거하는 유일천거제(遺逸薦擧制)와 유교윤리의 실천에 모범을 보인 효자 등을 천거하는 효행천거제(孝行薦擧制) 등이 있었다. 관리등용에 있어서 천거제는 과거제 · 문음제와 함께 중요한 관리등용의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문음자제들이 등용되기 위해서는 우선 조(租) · 부(父) · 당백숙(堂伯叔)의 천거를 받도록 되어 있었음을 감안할 때 문음제도 천거제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천거제는 과거로는 등용할수 없는 인재를 등용하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서 과거제의 보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량과와 향천법

조선 초의 유일 천거제는 국왕의 교령에 의해 부정기적으로 시행되었으나, 빈번한 교령의 하달에도 불구하고 그 시행은 부진하였다. 중종 대에 조광조(趙光粗)를 비롯한 신진 사림파(士林派)는 현량과(賢良科)를 설치하여 그들의 세력을 강화키 위하여 천거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리하여 중종 10년(1515)부터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가 발생하기까지 31명이 입사하였다. 이 입사자들은 과반수 정도가 곧바로 참상직에 진출하였으며, 이들이 진출한 관서도 사헌부?사간원?홍문관 등의 청요직이 대부분이었다.
조선 후기에 천거제를 정비하여 3년 마다 일정한 인원을 정기적으로 천거토록 하는 향천법(鄕薦法)과 국왕의 교령에 의하여 부정기적으로 시행되는 별천법(別薦法)이 등장하게 되었다. 향천법에 의하면 각 도의 전직관리, 생원, 진사, 유학(幼學) 가운데 학행이 뛰어난 자를 식년(式年)의 연초마다 고을의 향인이 수령에게 천거하였다. 수령은 이를 관찰사에게 보고하며 관찰사는 이들을 추려서 다시 중앙으로 천거하도록 되어 있었다. 천거의 인원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가 각기 3명이내, 그 외의 도는 2명 이내였다. 또한 생원, 진사는 30세 이상, 유학은 40세 이상이라야 천거될 수 있도록 규정되었다. 또한 별천법의 규정은 천거인원과 자격에 명확한 규정을 두지 않았으나, 대체로 국왕의 교령에 의하여 수시로 실시되었다. 이러한 천거제를 통하여 재야의 산림(山林) 또는 유일(遺逸)이 대량으로 진출함으로써 천거제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졌다.

산림직

조선후기에는 천거를 통해 입사한 유일 또는 산림을 우대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그들만이 진출할 수 있는 산림직(山林職)을 신설 · 운영하였다. 산림직은 성균관의 제주(祭酒) · 사업(司業)과 세자시강원의 찬선(贊善) · 진선(進善) · 자의(諮議)를 말하는데, 여기에 진출한 자들은 대략 140명에 이르고 있다. 산림은 산림직 외에 사헌부에도 활발히 진출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천거를 통해 입사한 후 사헌부에 진출한 자를 남대(南臺)라고 불렀는데, 조선후기의 남대는 120명 정도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림은 이러한 청요직에 진출하여 국왕과 세자의 자문과 교육, 유생의 교육, 관리의 감찰, 중앙의 실무행정 등을 담당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조선후기에 이처럼 천거제가 활발히 시행된 이유는 과거의 문란과 잇따른 전란, 그리고 당쟁에 의한 혼탁한 정치상황 등으로 인하여 관도를 기피하고 은거하는 선비들이 많아졌고, 조정에서는 향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이들을 등용함으로써 정권의 안정을 기하려고 하였다.

보거제(保擧制)

천거제 외에 조선초기에는 천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거주(擧主)의 연좌(緣坐)를 전제로 하는 보거제, 즉 보증천거제(保證薦擧制)가 실시되었다. 거주는 음관(蔭官) 추천자로서 처음에는 문관 6품 이상, 무관 3품 이상만이 보거주가 될 수 있었으나 뒤에 문관은 모두 추천할 수 있었다. 이들은 매년 정월에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자를 3인씩 추천하였다. 추천된 자는 사서와 오경 중에서 각 1경씩 희망에 따라 시험을 보게 되어 관직에 선임하게 하였다. 이 때 추천된 자가 무능하거나 죄를 범하게 되면 추천한 보거주도 연좌 처벌되었다. 또 과거 출신자나 현직관원 중에서 수령, 만호(萬戶), 관찰사, 절도사를 추천하는 경우에도 의정부, 육조의 당상관 및 사헌부, 사간원이 보거주가 되었다.
보거제는 현직관리의 승진과 전직의 기능과 더불어 관리 등용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그러나 사사로운 이해나 청탁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아 불공정의 문제가 빈번하게 야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거주연좌제 역시 대부분의 거주들이 고관(高官)이었던 관계로 처벌을 면하게 되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사례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