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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양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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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연

양로연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우대하여 베푸는 연향이었다. 고려시대에 시작된 양로연은 조선시대에 실시된 기로 정책 중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서 세종 14년(1432)에 양로연 의주(儀註)를 만들어 한층 법률화. 제도화되었다.

양로연 개최

양로연은 왕과 왕비가 각각 주관하여 남녀 노인들에게 베푸는 경우, 왕과 왕비가 함께 주관하여 남녀 일반 노인들을 참석시켜 대규모로 개최되는 경우가 있었다. 지방에서는 왕이 지방을 순행하면서 연회를 베풀거나 중앙의 고관이 업무로 지방에 머물면서 개최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지방 수령의 주관하에 주. 부. 군현 단위로 소재 관청에서 베풀어졌다. 대전에서 개최된 양로연에 참가할 자격은 70세 이상이었으나, 때로는 80세 이상으로 한정하기도 하였다.
양로연에 참가한 인원수는 대전에서 개최하는 연회일 경우 보통 120~150여 명 정도였다. 다만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 참가하는 합동 연회일 경우에는 300여 명이 넘기도 하였다. 양로연에는 왕 또는 왕세자가 직접 참석하였고, 종친. 당상관. 기신(耆臣:연로한 고위 관리). 양민의 남녀. 노인. 천민 노인이 모두 참여하였다.
양로연에 소요되는 재정은 중앙의 경우 풍저창(豊儲倉)에서 국용의 경상비로 지급하였고, 지방의 경우는 전조 가운데 중앙에 상납하고 남은 저치미(儲置米)에서 충당하였다.
양로연은 중앙이나 지방에서 대대적으로 열릴 경우 3,4일씩 계속되었다. 양로연이 진행되는 중에는 사물(賜物). 공궤(供饋: 음식을 드림). 가자 등이 행해졌다. 사여의 경우는 지방별. 연령별. 신분별. 관직별로 차이가 있고, 그 밖에 노인직. 수직(壽職)등이 제수되었다. 한편 국가대사, 재해 , 흉년, 일기관계 등으로 양로연을 열지 못하는 경우는 사물,공궤로 대체하였다.

양로연 특징

회례연과 진연에서는 왕세자 이하 종친. 문무백관이 왕에게 네 번 절하는데, 양로연에서는 노인들을 고려하여 두 번 절하도록 하였다. 그것도 한 번 일어났다 앉은 채 그대로 머리만 두 번 땅에 닿도록 숙여, 간략하게 하도록 한다. 또한 양로연에서는 노인들이 전(殿)에 오르려 할 때, 왕이 자리에서 일어남으로써 노인에게 공경을 표한다. 회례연과 진연에서는 먼저 왕에게 헌수(獻壽)한 후 셋째 잔부터 임금과 신하가 같이 술을 마신다. 그러나 양로연에서는 왕에게 찬안(饌案)을 올리면서 바로 노인들의 찬탁(饌卓)을 진설하고, 왕에게 꽃. 선(膳:음식). 술을 올리면서 바로 노인들에게도 꽃.선.술을 드림으로써, 임금이 노인을 우대하고 대접하는 의미를 드러낸다. 또한 양로연에는 왕의 교지나 신하들이 올리는 왕에게 치사와 천세를 외치는 절차가 없다.

양로연 변천

양로연은 세종 중기 이후로 국상이나 흉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매년 가을에 한차례 행했다. 그러나 선조 이후 회례연 및 대부분의 연향과 마찬가지로 양로연은 정기적으로 개최하기 보다는 국가의 경사와 함께 행해져 아주 드물게 베풀어졌다. 연향이 특별한 경우에만 베풀어지게 되면서 조선후기의 진연 후에는 의례 서울과 지방의 노인들에게 신분에 상관없이 쌀과 음식을 내려주고 가자(加資)를 해주며, 전세(田稅)와 환곡을 줄여주는 등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