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화성의궤의 재현활터

연관목차보기

활터

관설사장

활터를 국가가 도성 안에 설치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선종8년(1091) 호부(戶部), 남랑(南廊)에 사장을 설치하여 습사(習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 도성 동편에 교장(敎場)을 설치하여 훈련원이라 하였고, 태종이 사청(射廳)을 세워 군사들의 습사를 권장한 바도 있다. 인조 때에는 모화관(慕華館)을 설치하여서 훈련원을 일소(一所), 모화관을 이소(二所)라 하여 무과시험을 보고 평소에는 무사들이 활쏘기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궁중에는 창경궁 후원에 춘당대(春塘臺), 경복궁 후원에 경무대(景武臺)가 있어 춘당대에서는 왕이 친사(親射)하였다. 지방에는 부(府), 주(州), 목(牧)의 소재지에 각각 장대(將臺), 연무대(練武臺), 관덕정(觀德亭) 등 관설 사장이 있어 군사는 물론 민간인도 활쏘기 연습을 하였다.

민간사장

임진왜란 후 선조가 경복궁 동쪽에 오운정(五雲亭)을 설치 민간에 개방한 것이 민간사장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서울에 많은 사장이 개설되었는데, 그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 먼저 윗대[우촌(右村)]의 백호정(白虎亭), 아랫대[하촌(下村)]의 석호정(石虎亭), 새문[서대문(西大門)] 밖의 노지사정(盧知事亭), 강교(江郊)의 풍벽정(楓碧亭) 등 4정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남촌(南村)에 상선대(上仙臺), 삼문교에 세송정(細松亭), 왜장대(倭將臺), 청룡정(靑龍亭), 읍배당(揖拜堂) 등이 있었고, 북촌(北村)에는 일가정(一可亭), 취운정(翠雲亭), 흥무정(興武亭) 등이 있었다. 윗대에는 윗대 5터라 하여 다섯 활터가 있었고, 아랫대에는 아랫대 4터라 하여 네 활터가 있었다. 이 밖에도 동대문 밖의 젖나무터, 썩은 바위터, 남대문 밖의 청학정, 수구문 밖의 무학정 등이 있었다. 1895년 갑오경장 때 이들 활터는 일시에 모두 폐쇄되었으나 1899년 고종이 경희궁 안에 황학정(黃鶴亭)을 설치한 것을 계기로 아랫대에 황룡정, 남촌에 석호정 등 차례로 활터가 부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