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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활터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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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의 구조

궁방

활을 얹을 때 사용하도록 설치한 방으로, 이 곳에는 활을 얹기 위한 화로, 점화통, 활창애, 도지개, 화살꽂이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화로(火爐)

각궁(角弓)은 동물성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얹을 때 반드시 불을 쬐어 바로 잡아야 한다. 활의 힘줄이 늘어져 있는 상태이므로 제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불을 쬐면서 밟고, 펴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화로가 필요하다.

점화통

습기에 약한 각궁을 보관하기 위해 필요하다. 옛날에는 구들에 불을 피워 일정 온도를 유지하였는데 요즈음에는 합판으로 만든 상자에 열 전구를 켜서 사용한다.

활창애[궁창(弓窓)]

활을 올리거나 틀어진 활을 바로잡을 때 쓰는 기구이다.

도지개

활을 얹을 때 쓰는 기구로, 활과 반대 방향으로 뻐드러진 모양인데, 한편을 먼저 묶고 휘인 활을 반대편으로 당겨서 도지개의 홈에 댄 다음 끝에 달린 끈으로 묶어서 고정시키는 것이다.

화살꽂이

개인별로 화살을 꽂아둘 수 있도록 통을 잘라서 세워놓은 것이다.

기타
활걸이

활을 걸어 놓는 대이다.

살놓이, 실 고름판

살놓이는 무겁에서 주어 놓은 화살을 놓아두는 것으로, 화살을 얹어 놓을 수 있도록 사각형으로 짜며 위쪽은 화살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금 높게 세운다.
살고름판은 유엽전 사용시에 쓰던 것이다. 보통 돌을 네모 반듯하게 깍아서 만든다. 유엽전은 과녁에 박히기 때문에 과녁에서 뽑는 과정에서 살의 촉이 흔들릴 수 있으므로 이것을 두드려 박기 위해 돌 판에 대고 탁탁 친다.

주살대

활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궁체를 익히기 위해 쓰는 것이다. 장대를 세우고 줄을 여기에 묶어 이 줄 끝에 화살의 촉을 뚫고 매달아 이 화살로 쏘는 연습을 한다. 화살이 실로 묶여 있기 때문에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되돌아 와서 굳이 주우러 갈 필요 없이 얼마든지 연습할 수 있다.

살가림

무겁에서 화살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는 고전(告傳:화살의 명중여부를 알려 주는 사람)을 보호하고 눈비 올 때 잠시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화살이 잘못 날아드는 경우 그 뒤로 피할 수도 있다. 궁중에서 임금이 활을 쏠 때는 가죽을 세 폭 병풍으로 만들어 세워 놓았다.

정간(正間)

활터의 한 가운데를 가리키는 말로, 활터를 주관하는 어른들인 사두(射頭)나 고문(顧問)이 여기에 앉는다. 활을 쏘기 전 이 곳에 가서 어른께 먼저 인사의 예를 올리고 시작하게 된다. 1960년대 초 전주 천양정에서 이 자리에 '정간'이라고 나무에 새겨 걸어 놓으면서 정간이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이 정간은 활터에 관계되는 모든 일을 결정, 집행하고 사풍(射風)과 규율을 지키는 곳으로, 활터의 중심을 상징한다. 그리고 활터에서 지키는 예절로 정간례가 있다. 먼저 올라와 있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 활터를 이끌어 온 어른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 기념일에 활터를 오늘날까지 이끌어 온 활터의 조상들을 기억하고 제사 지내는 것, 활을 겸허한 마음으로 잘 배우겠다는 다짐 등이 있다.

설자리[사대(射臺)]

활을 쏠 때 서는 자리로, 설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든다.

무겁

활을 쏠 때 화살이 멀리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과녁 뒤 편에 흙을 쌓아 놓은 것이다. 과녁은 소포라고 하며 본래 흙을 쌓아 올린 후 헝겊을 대서 썼는데 가운데 부분은 화살이 많이 꽂혀 헤지기 쉬워 이 부분만 헝겊을 덧대거나 [정(正)], 가죽을 덧대어 [곡(鵠)]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소포의 크기는 사방 1장 8척 이며, 전체를 3등분해서 가운데 부분에 곡을 붙였는데 포의 색과 곡에 그리는 그림은 계층에 따라 달랐다. 왕은 붉은색 바탕에 곰의 머리를 흰 가죽에 그려 붙였고, 종친과 문무관원은 파란 바탕에 사슴의 머리를 그린 곡을 썼으며, 무과나 교습에는 돼지머리를 그린 것을 썼다.

살날이

화살을 나르기 편하도록 무겁과 사대 옆에 기둥을 세우고 도르레를 달아 줄을 매어 당기도록 한 장치로, 화살을 실어서 바퀴를 돌리면 화살을 담은 통이 줄을 따라 오도록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