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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현륭원과 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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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륭원과 용주사

정조는 억울한 최후를 맞은 부친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위상을 높이고 부친에 대한 효를 다하기 위해 정조 13년(1789) 양주 배봉산(현, 서울시립대학교 뒷산)에 있던 영우원(永祐園)을 현 위치로 옮기고, 그 이름을 현륭원(顯隆園)으로 고친다. 현륭원이 기대어 있는 화산(花山) 일대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길지였기 때문에, 정조는 기존 마을을 옮기면서까지 현륭원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현륭원에 자리를 내어 주고 옮겨가야 했던 구 수원읍을 위해 계획된 것이 바로 화성성곽이다. 물론, 정조의 화성성곽 건설에는 원대한 정치적 계획이 깔려있지만, 그 시작은 현륭원 천봉(遷奉)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릉이 건설되면 왕릉을 지키면서 제사를 준비하는 원찰(願刹)을 지정하는 예에 따라, 정조는 현륭원을 조성하면서 정조 14년(1790)에 용주사(龍珠寺)를 건립하였다. 고려시대에 허물어진 갈양사(葛陽寺)를 다시 세운다는 이유였지만, 이것은 성리학이 정치이념이었던 당대의 분위기 속에서 사찰을 건립하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 현륭원의 원찰로 삼겠다는 것이 정조의 내심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용주사에는 정조의 효심에 관련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고 건축적으로도 여타 사찰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화성축성이 시작되기 전에 건립한 융릉과 용주사는 효(孝)의 도시로서의 화성을 빛내고 있다.



참고문헌 : 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김동욱,2002,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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