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화성의궤의 재현건축

연관목차보기

건축

순조 1년(1800)에 간행된 화성성역의궤 권수(卷首), 도설(圖說)의 화성전도 및 행궁전도와 작자미상의 규장각 소장본 화성행궁도는 화성행궁의 건물 배치와 주변 경관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림에 따르면 행궁은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西將臺) 아래쪽으로 산기슭이 경사지로 이어지며 시가지가 열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팔달산 동편에 동향으로 앉은 행궁의 남쪽으로는 팔달산의 산줄기가 행궁을 감싸고 있고, 북쪽으로는 뒤편에서 흘러내려 전면에 이르는 시냇물이 행궁을 둘러싸고 있다.
화성축성공사와 더불어 증축된 화성행궁은 비장청(裨將廳) 왼쪽의 별주(別廚)와 행궁 뒤편산기슭의 미로한정(未老閒亭) 등을 포함하면 독립 건물만도 22채에 이르고, 전체 규모로는 620여 칸에 달하였는데, 이는 조선시대의 행궁 중 가장 큰 규모였다. 행궁 앞의 홍살문, 작은 내를 건너는 신풍교(新豊橋), 행궁 정문(正門)인 신풍루(新豊樓), 마당을 두고 이어지는 두 개의 중문(中門)과 가장 안쪽에 위치한 봉수당(奉壽堂)이 일직선상에 놓이면서 중심축을 형성하고, 행궁의 여러 건물들은 그 좌우로 정연하면서도 비대칭적인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행궁의 건물들은 그 역할과 성격에 따라 행궁(行宮), 관아(官衙), 군영(軍營), 객사(客舍)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일정한 영역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우선 행궁 영역은 각기 다른 위계를 지니는 연속된 마당들을 통해 신풍루에서 봉수당에 이르는 축을 중심으로 팔달산 바로 밑에서부터 'T'자형을 이루고 있다. 봉수당이 행궁의 정당(正堂)으로서 중앙 깊숙히 위치하였고, 행궁의 내당(內堂) 및 침전(寢殿)인 복내당(福內堂)과 장락당(長樂堂)이 그 남쪽에, 행궁의 별당(別堂)인 낙남헌(洛南軒)이 그 북쪽에 자리하였다. 화성유수부와 행궁의 실제적인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관청들은 신풍루와 좌익문(左翊門) 사이의 마당 좌우로 배치되었다. 북군영(北軍營) 뒤로는 집사청(執事廳), 남군영(南軍營) 뒤로는 서리청(書吏廳), 비장청, 외정리소(外整理所)가 있고, 외정리소 뒤쪽으로 내아(內衙)인 유여택(維與宅)이 있어 관아의 영역이 이어진다. 군영은 두 군데에서 영역을 이루는데, 남북군영은 행궁의 전면부에서 신풍루 좌우로 돌출되어 행궁을 호위하고, 군사훈련을 위한 강무당(講武堂)과 군기를 보관하는 무고(武庫) 등은 행궁 별당의 마당과 연계하여 행궁 북서쪽 기슭에 모여있다. 마지막으로 객사인 우화관(于華館)은 중심축의 북쪽으로 낙남헌 영역과 집사청 사이에 큰 마당을 두고 위치해 있다.
배치나 규모에서 보여지는 권위와 위풍에 비해 화성행궁의 건물들은 18세기의 일반적인 관청의 수준을 넘지 않는 소박한 것이었다. 특히 봉수당과 장락당은 왕이 머무는 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청을 칠하지 않았는데, 이는 지나치게 사치하거나 화려함을 꺼렸던 정조의 생활 철학과 건축관이 반영된 결과인 듯 하다.



참고문헌 : 화성성역의궤 부편1(경기문화재단,2001),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김동욱,2002,돌베게)

관련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