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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공사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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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인력

화성성역은 관청이 공사를 주관하여 직접 시공한 관영 토목공사였기에 자재를 구해오는 일에서부터 일꾼을 불러 모으고 공사 내용을 일일이 감독하는 등 모든 일을 관청이 스스로 담당해야 했다. 이런 경우 공사관련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임시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화성성역에서는 '성역소(城役所)'를 설치하여 공사업무 전반을 담당하게 했다. 공사업무에 관한 책임은 성역소를 구성하고 있는 관리들의 몫이었고 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감독관 조직이 필요했다. 성역소의 조직은 이전의 다른 국가적 공사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다만, 기본적으로 축성(築城)공사의 작업내용이 방대하고 수원이라는 지방도시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관계로 조직구성에 있어 다소 복잡하였다는 점과 서울의 고위관리가 성역공사에 참여하지 않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성역공사는 성역소 조직체계에 따라 진행되었기 때문에 조직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화성성역에 인력이 어떻게 동원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총리대신(總理大臣), 감동당상(監董堂上), 도청(都廳) 등 성역소 최고조직은 각각 한 명씩 임명되었고 감동당상 및 도청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던 책응도청(策應都廳) 역시 한 명이었다. 공사 현장에서 감독 및 공사업무를 담당했던 분야에는 감동(監董)은 28명, 패장(牌將) 179명, 장인(匠人) 1840명이 동원되었다. 품삯을 주고 모집한 미숙련 잡역부인 모군(募軍)은 동원된 인원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공사비 지출에 있어 장인과 비슷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성역공사가 강제적 성격을 가진 부역(賦役)노동에 의존하지 않고 모립제(募立制)를 바탕으로 한 임금(賃金)노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행정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공사관리분야에는 감관(監官) 12명, 서리(書吏) 54명, 서사(書寫), 고직(庫直) 등이 90여명 동원되었다.
동원된 공사인력에 대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성역소 조직을 정비하고 작업 및 감독을 철저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후에 따라 잠시 공사를 중단하거나 더위 먹은데 효능이 있는 척서단(滌暑丹), 추위를 견딜 수 있는 털모자와 무명을 내려보내기도 하였다. 을묘년(1795년) 혜경궁 회갑연 때에는 총리대신에게 호랑이 가죽 1벌, 감동당상에게 품계 한 등급 승진, 도청에게 갑옷 한 벌을 내렸고 장인에게도 공로에 따라 3등급으로 차등을 두어 상을 내렸다. 아울러 해가 바뀌어 공사를 새로 시작할 때, 여름에 무더울 때, 공사가 마무리 되어 갈 때 등 총 11차례 걸쳐 음식을 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고문헌 : 화성성역의궤 권수-권1(경기문화재단, 2001),18세기 건축사상과 실천 수원성(김동욱,1996),18세기말 화성지방의 번영과 상업진흥책(최홍규,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