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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사도세자(思悼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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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思悼世子)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 ~ 1762(영조11-영조38)]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선,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이다. 이복형 효령세자(孝章世子 : 眞宗으로 추존됨)가 요절하고 영조의 나이가 40세를 넘어선 때에 출생하여, 2살 때에 왕세자로 책봉되고 10세 때 경의왕후(혜경궁) 혼인하여 별궁에 거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 때부터 신임사화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노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고 1749년(영조25)에 부왕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게 되자, 노론들과 이에 동조하는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숙의 문씨 등이 영조에게 그를 비방, 무고하였다. 더욱이 1761년(영조37) 평안감사 정희량 등의 계교로 평양에 비밀리에 유람한 것과 1762년 나경언의 무고사건은 영조로 하여금 세자를 폐위시키게 하였다. 그 후 사도세자는 지속되는 주위의 무고와 부왕의 불신으로 격간도동(膈間挑動)이라는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고, 이로 인해 더욱 평판이 안 좋아진 세자는 부왕에게서 자결을 명받게 된다. 이를 거절한 세자는 서인으로 폐하여지고, 결국 1762년(영조38) 뒤주 속에 갇혀 8일 만에 아사(餓死)하고 만다. 후에 영조는 비명으로 죽은 세자에게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례 때에는 제주(題主)를 청하여 과오를 후회하였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사도세자의 묘는 처음 양주 남쪽 중량포 배봉산 기슭(현재 서울시립대 부근)에 수은묘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莊獻)으로 추존되고 구 수원읍 융릉으로 이장된다. 1899년에는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5),정조의 화성건설(최홍규,2001,일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