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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건릉과 화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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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과 화령전

팔달산 아래에 당대의 신도시를 키우고자 했던 정조는 그 계획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49세가 되던 1800년에 세상을 떴다. 효의 도시로 시작하여 정치, 경제, 군사, 교통의 요지로 키우고, 퇴위 후 거처로 삼으려는 등의 모든 계획은 그 자리에서 정지해 버리고, 정조의 뜻을 기리는 화령전과 건릉이 새로 들어서게 되었다.
건릉은 정조(正祖 : 1752~1800)와 혜경궁홍씨(경의왕후 : 1753~1821)가 함께 모셔진 합장릉으로 현재에는 융릉과 함께 사적 206호로 지정되어 있다. 1800년 정조 승하 후, 건릉은 정조의 유언을 따라 융릉 동쪽 언덕에 안장되었으나 입지가 지난날 무인들이 훈련하던 흉당임이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순조4년(1804)에는 봉분 위에 덮인 사초(莎草)가 비에 무너지는 변이 일어나는 등 당시 건릉에 대한 부정적 논의가 지속되었다. 결국 순조21년(1821)에는 정조의 비 혜경궁홍씨가 승하하자 현 위치, 융릉의 서쪽 언덕 옛 수원부 향교자리에 합장하였다. 건릉은 정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을 따라 융릉의 예를 넘지 않는 선에서 꾸며졌다. 합장릉이면서도 상석을 하나만 설치하고, 방향표시도 문자로 대신하였다. 다만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을 두른 것이 융릉과 대별되는 점이라 하겠다. 그 외에 사실적인 등신대를 가진 문인석, 무인석도 눈여겨 볼만 하다.
화령전(華寧殿)은 정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영전(影殿)으로 정조 뒤를 이어 등극한 순조가 순조1년(1801)에 정조임금을 추모하기 위해 화성행궁의 북편에 세운 전각이다. 정조24년(1800)에 정조가 사망하자, 정조대에 제작하여 규장각 주합루에 봉안했던 정조의 어진(大本)과 현륭원 재실에 있던 어진(小本)을 합하여 화성행궁의 유여택으로 옮겼다가 1801년 5월 순조가 화령전을 건축한 뒤에는 이를 화령전에 모셨다. 화령전의 제향은 정조의 탄신일과 납향일(臘享日) 뿐만 아니라, 후대 왕들이 융릉이나 건릉으로 원행을 할 때에도 거행되었으나, 1920년 정조의 어진이 창덕궁으로 옮겨지면서 화령전의 제향은 중지되었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영정(影幀)마저도 분실되었다.
화성행궁의 낙남헌에서 바라다 보이는 화령전은 외삼문, 내삼문, 운한각(雲漢閣)이 일직선상에 있으며, 운한각의 뒤로는 복도 형태의 이안각(移安閣)이 전사청과 연결되고, 우측 담장 밖에는 풍화당(風華堂)이 있다. 화령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그 전면에는 흑색의 방전이 깔려있는 월대가 있었다고 한다. 화령전 내부의 중앙에는 정조의 영정이 합자(閤子) 안에 모셔져있다. 선례에 따르면 합자가 아닌 당가(唐家)를 설치하여 영정을 모셔야 하지만, 여기서는 정조의 검소한 품행을 따르려는 의도와 화령전이 도성이 아닌 지방에 위치한 영전이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화령전의 뒤편에는 기단 한가운데에 큰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고, 그 좌우에는 굴뚝 역할을 하는 사각의 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화령전에 모셔진 정조의 어진을 살아있는 사람과 동일시하여 온돌이 설치하였기 때문이다.
처음 화령전의 운한각 편액은 순조의 친필로 되어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편액이 걸려 있다.
화성은 건릉과 화령전의 건립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세도정치 속에서 기존의 정치적 위상은 급격히 퇴락하였다. 순조 이후의 왕들도 화성(華城)으로 전배하였으나 백성에게 귀 기울이는 노력은 정조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줄어들었고, 순조2년(1802)에는 왕권의 상징이었던 장용외영마저 폐지되었다. 다만, 교통의 요지이면서 배후에 한양이라는 대규모 소비지역을 둔 상업도시의 역할은 지속되어 인구와 상업교역량은 크게 줄지 않아 명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는 정조가 계획한 신도시 화성의 잠재력이 발휘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김동욱,2002,돌베개),문화유산 왕릉-왕릉기행으로 엮은 조선왕조사(한국문원편집실,1995,한국문원),왕릉풍수와 조선의 역사(장영훈, 2000,대원미디어),화성(화성연구회,2002),정조의 화성건설(최홍규,2001,일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