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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성곽의 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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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축조

성곽(城郭)의 기본은 적의 공략에 안전하며 어떠한 무기에도 함락되지 않는 최강의 철벽을 쌓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성을 쌓는 제도, 곧 성제(城制)도 방위 목적이나 규모, 지세 등에 따라 고안과 발전을 거듭하였다. 축성술의 과정을 보면, 우선 성벽은 고려시대 이전에 많이 축조 되었던 토성(土城)과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성곽에 축조되었던 석성(石城)이 일반적이고, 흔하지는 않으나 벽돌성(塼城)이 있다.
토성은 쌓는 데 힘이 덜 드는 대신 큰 비가 오면 무너져 내리기 쉽고 자주 손을 보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기존의 토성을 석성으로 다시 쌓는 일이 잦았다. 그 결과 현재 남아 있는 성곽의 대부분이 석성이다. 조선시대 석축 기법은 남아 있는 유적에서 확인된 바로는 조선 초기에서 중기까지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17세기 말 숙종때 와서 한 차례 크게 달라진다.
노동 방식이 변화하면서 큰 발전을 보였고, 그 변화는 서울의 성곽과 북한산성,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쉽게 확인된다. 벽돌성은 조선 초기에 의주나 함흥읍성에 쌓은 적이 있으며, 숙종(肅宗, 1661~1720)때 강화 외성과 정조(正祖, 1752~1800)때 화성의 일부 구간에서 축조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성벽의 축조 방식에는 협축(挾築)과 내탁(內托)이라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협축은 성벽의 안과 밖을 모두 돌로 쌓는 것이고 내탁은 바깥쪽에만 돌을 쌓고 안에는 성벽 높이까지 흙을 쌓아올리는 방식인데,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내탁 방식을 취했다.

화성성곽의 축조는 화성에 성곽을 쌓아야 한다는 건의가 수원 건설 1년 뒤부터 제기되자 정조의 화성을 위한 새로운 성제를 연구할 것을 지시함으로써 이에 당시 홍문관에 근무하고 있던 젊은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에 의해 기본 틀이 마련된다. 그는 기존 조선 성제의 장점과 단점을 검토하고 중국을 통한 서양 과학 기술 서적을 탐구하면서 화성 축성 방략에 대한 기본 지침서로서 '성설(城說)'을 정조에게 올렸다. 정조는 이를 그대로 '어제성화주략(御製城華籌略)'으로 삼았고, '화성성역의궤'에 실려있는 '어제성화주략'은 완벽하게 정약용의 '성설'과 일치한다. 여기에는 여덟 가지 기본 지침을 마련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푼수(성의 치수) : 성의 둘레는 3,600보(步)로 하고 성벽 높이는 2장(丈)5척(尺)으로 한다.

(2) 축성 재료 : 벽돌성이나 토성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벽돌 굽는데 익숙하지 않고 토성은 겉에 회를 바른다고 하지만 흙과 회는 서로 달라붙지 않아서 겨울에는 얼어터지고 비가 오면 물이 스며들어서 무너지기 쉽다. 따라서 돌로 성을 쌓아야 한다.

(3) 참호(성벽 아래 못) : 산에 의지해서 성을 쌓을 것과 땅을 파서 호를 만들고 그 흙으로 성을 쌓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호를 파는 데 대한 구체적 푼수와 도구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지침도 실제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북쪽의 자연 해자 형태의 도랑이 있었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았다.

(4) 기초 다지기 : 기초를 만드는 데는 1보마다 푯말 1개씩을 세우고 너비는 약 1장, 얼어붙지 않는 깊이 4척에 냇가의 흰 조약돌을 캐어 다져 만들 것을 제시하였다.

(5) 돌 뜨기 : 돌은 산에서 다듬어서 그 무게를 줄여 실어 나르는 데 편리하게 한다. 돌 등급을 메겨 깎고 자르는 데 규제가 있게 하며 큰 것은 한 덩이에 한 차, 그 다음은 두 덩이에 한 차, 작은 것은 세 덩이 혹은 네 덩이에 한 차로 날라서 성 1보를 쌓는 데 일정한 용량을 공급하도록 한다. 그리고 성을 쌓을 때는 큰 돌은 하층에 중간 돌은 중층에, 작은 돌은 상층에 놓아 대소를 가려 점차로 재료를 맞게 쓴다.

(6) 길 닦기 : 장차 수레가 다니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길을 닦아야 한다.

(7) 수레 만들기 : (기존의) 큰 수레는 바퀴가 너무 높고 투박하여 돌을 싣기 어렵고 바퀴 살이 약하여 망가지기 쉽고 비용이 많이 든다. 썰매는 몸체가 땅에 닿아 있어서 밀고 끄는 데 힘이 많이 소비된다. 이런 형편이므로 새로 유형거(遊衡車)라는 수레를 고안해서 쓰도록 한다.

(8) 성벽의 제도 : 성이 무너지는 것은 배가 부르기 때문이므로 한 가지 방법을 강구한다.

성의 높이와 두께를 3등분하여 성을 쌓을 때 아래 2/3까지는 점점 안으로 좁혀 매 층의 차를 1촌으로 하며 비례를 좁힌다. 위는 1/3부터 점점 밖으로 넓히는 듯이 하되 매 층의 차를 3푼쯤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홀(笏)과 같은 모양이 된다. 경성(鏡城)의 성을 이 방법으로 쌓았는데 몇 백 년이 지났어도 한 곳도 무너짐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반드시 본받을 만한 법이다. 물론 '성설'은 구체적인 설계도가 아닌 기본 지침서이지만 정약용은 성의 규모나 형태뿐 아니라 축성 재료나 시공 방법의 개선 등 화성 축성 모든 사항에 걸쳐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였고, 그의 계획안은 실제 축성 공사가 진행되면서 대부분 실현되었다.

참고문헌 : 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김동욱,2002,돌베게),2002 제 3회 정기학술발표회(사단법인 화성 연구회,2002),한국건축사(윤장섭,2002,동명사),韓國建築大界7 石造(장기인,1997,보성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