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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성문(城門)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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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城門)의 구성

벽체을 두텁게 쌓아 올리고 석재도 특별히 반듯하게 다듬은 돌을 사용하는 등, 방어에 있어서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곳이 바로 성의 출입을 통제하는 출입문인 성문(城門)이다.
성문은 대부분의 성에서 동서남북 네 면에 만든다. 그러나 큰 성곽이 아닌 경우에는 북문이 없는 경우도 많다. 고대의 토성에서는 성문을 따로 만들지 않고 성벽을 엇갈려 터 놓는다든지 갖가지 모양으로 성벽을 교묘하게 꺾어서 접근을 어렵게 하는 구조로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아치로 육축(陸築)을 쌓고 판문을 달았으며 위에는 누각건물을 지어 성문을 규정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이때 성문은 불화살 등의 적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철판을 씌우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성문 중에서는 사대문 외에 적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평상시 백성들이 쉽게 출입할 수 있도록 보조 출입문을 만드는데 이를 암문(暗門)이라고 한다.
석축 한가운데에는 위가 둥근 아치형의 출입구인 홍예문(虹?門)을 내고 석축 위에는 누각을 세워서 한껏 문의 위용을 높이게 된다. 대개 규모가 크면 홍예문으로 하지만, 작으면 인방보를 건너지른 인방문으로 한다. 특히 암문 등에서는 벽돌을 써서 홍예문으로 할 때가 많다. 홍예구조는 건축물의 개구부에 이용될 뿐 아니라 각부 조적 구조체의 구성에도 사용되고 그 형식과 구조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 성곽의 홍예문은 내외 석벽부분에만 홍예를 틀고 그 내부에는 목조로 천장을 꾸몄으나 석재와 벽돌을 써서 내부까지 홍예로 축조한 것도 있다. 일반 성곽에서는 홍예를 한 칸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석조 홍예문으로는 서울의 광화문(光化門)을 비롯하여 남대문(南大門) 등 거의 모두가 성벽에 홍예를 틀어서 꾸몄고, 인방문으로는 경기 강화성(江華城)의 북문 또는 북한산성(北漢山城)의 암문 등을 들 수 있다.

성문 앞에는 성문을 은폐하고 성문에 접근한 적을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을 갖추었는데, 이를 옹성(甕城)이라고 한다. 옹성은 성문을 포옹하고 있는 격으로 성문을 은폐하는 기능과 이미 옹성 안으로 들어왔거나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군을 옹성 위에서 측면이나 후방 공격할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한다.
옹성은 항아리 옹(甕)자를 썼으므로 그 모양이 항아리같이 둥근 형태임을 알 수 있으나 간혹 네모나게 옹성을 쌓기도 하며, 문은 좌우측 측면에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수원 화성의 경우에는 정면에 출입구를 내었다. 또 옹성 출입문 위에는 누조(漏槽)라고 하는 큰 물통을 만들고 여기에 물을 흘려 내보낼 수 있는 구멍 다섯 개를 내었는데 이름을 오성지(五星池)라 하였다.
오성지는 바로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중국의 병서를 참고해서 고안해 낸 시설로 문을 통과하는 적군에게 뜨거운 기름이나 물을 부어서 공격하기도 하고, 성문에 불이 났을 때 물을 부어 끄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곳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김동욱,2002,돌베게),2002 제 3회 정기학술발표회(사단법인 화성 연구회,2002),한국건축대계7 석조(장기인,1997,보성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