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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봉화(烽火)의 신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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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烽火)의 신호법

봉수(烽燧)의 관장은 중앙의 경우는 병조의 무비사(武備司)가, 지방의 경우는 관찰사나 수령, 병사(兵使), 수사(水使), 도절제사, 순찰사 등 모든 군사책임자가 그 임무를 맡았다. 봉수대에 봉수군과 오장이 배치되어 기거하면서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봉수군은 주야로 근무를 서는 고역을 직접 담당하였고, 오장(伍長:監考)은 대상(臺上)에서 함께 기거하면서 봉수군을 통솔하고 봉수대의 이상유무를 수령(守令:鎭將)에게 보고하였다.
봉수대(烽燧臺)에서는 거수(炬數, 봉화수)를 달리하여 정세의 시급함을 나타냈는데, 평상시에는 1거(炬), 왜적이 해상에 나타나거나 적이 국경에 나타나면 2거, 왜적이 해안에 가까이 오거나 적이 변경에 가까이 오면 3거, 우리 병선(兵船)과 접전하거나 국경을 침범하면 4거, 왜적이 상륙하거나 국경에 침범한 적과 접전하면 5거씩 올리도록 하였다. 만약 적침이 있을 때 안개와 구름, 비나 바람 등으로 봉수에 의해 전달이 불가능할 때 봉수대는 포성(砲聲:信砲 ·發火 등)과 각성(角聲:角吹)으로 주위의 주민과 수비군인에게 급보를 알리고, 봉수군이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서 알리기도 하였다. 서울 남산에 있는 5개의 봉수대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병조(兵曹)에 종합 보고하는 종점이 되었다. 병조에서는 매일 새벽 승정원(承政院)에 보고하여 임금에게 알리고, 변란이 있으면 밤중이라도 즉시 승정원에 보고하였다.
봉수는 동서남북의 어느 변경에 위치한 봉수대에서 올린 봉화이든지 약 12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봉수군의 태만, 봉수대의 관리 소홀로 봉화가 올려지지 않거나 또는 불통되는 등 전달 소요시간이 너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여러 규정이 제정되었다. 근면한 봉수군은 승진 또는 표창하며, 반면 일을 게을리하거나 결번(缺番)과 대립(代立), 거짓 봉화, 그리고 오장, 수령등 관계 관원이 감시감독을 게을리할 때는 엄벌로 다스렸다. 처벌 내용은 장(杖) 70∼100대, 파직, 적과 접전했는데 봉화하지 않거나 적이 침입하였는데 보고하지 않을 때는 봉수군과 수령 모두 참하였다.



참고문헌 : 두산세계대백과사전(두산동아 백과사전연구소 편,1983,서울 두산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