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화성의궤의 재현조선시대의 관아건축

연관목차보기

조선시대의 관아건축

관아(官衙)란 관원들이 나라일을 보기 위해 지은 건축물을 이른다. 관서(官署) 또는 공해(公?)라고도 하는데, 지방관아로 대표적인 것은 각 도의 관찰사(觀察使)가 집무하는 감영(監營)과 각 읍 수령들의 집무처인 동헌(東軒)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밑에 각 읍의 규모와 중요도에 따라 부(府), 대도호부(大都護府), 목(牧), 도호부(都護府), 군(郡), 현(縣) 등을 설치하여 중앙에서 관리을 파견하여 통치하였다. 이에 따라 수령이 주재하는 읍치에서는 수령의 집무처인 동헌과 살림집인 내아(內衙), 관원들이 근무하는 향청(鄕廳), 작청(作廳) 등 많은 관아시설이 읍의 중심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의 관아건축은 일제시대에 정책적으로 또는 개화에 편승하여 대부분이 헐려 없어졌고 다만 고을에 따라 그 일부인 아문(衙門), 동헌, 누관(樓館) 등이 한두 채씩 남아있다. 따라서 한정된 유구와 더불어 발굴조사의 성과나 문헌 및 고지도의 기록을 통해 관아건축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관아는 관원이 나라일을 보는 곳이므로 궁궐건축이나 사찰건축과 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관청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낸다. 관아의 아문은 누문(樓門)이나 삼문(三門)의 형식을 취하였다. 동헌은 진입축을 강조하여 정청(正廳)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하였고, 건물의 크기나 공간의 규모에 있어 다른 공간과 차별을 두었다. 또한 높은 기단을 구성하거나 장초석(長礎石)을 사용하고 익공식 공포를 갖추며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붕을 장중하게 꾸미는 등의 방식으로 권위성을 표현하였다.
지방관아에는 수령과 권솔들이 생활하는 내아도 마련되었다. 내아는 그 당시 상류주택의 모습을 따라 지어졌는데, 동헌이 정무를 수행하는 공적인 공간이라면 내아는 사적인 생활 공간이기 때문에 관아를 계획할 때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동헌을 놓고 내아는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뒤쪽에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참고문헌 : 전북미술사(윤덕향,2002,새전북신문 연재),한국건축사(대한건축학회,1996,기문당),한국의 전통건축(장경호,1992,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