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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조선시대의 객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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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객사건축

조선시대의 읍치는 대부분 배후에 진산(鎭山)을 두고 앞에는 하천이 흐르는 풍수지리상의 요지에 입지하므로 북문을 내지 않고 동서문과 남문만을 둠으로써 내부 가로구조가 T자형을 이루는 것이 보통인데 두 도로가 교차하는 중심부에 객사(客舍)와 관아(官衙)가 자리하며 그 중에서도 객사가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놓인다. 객관(客館)이라고도 하는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나 대궐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모시고 임금에 대한 예를 행하는 장소로서 지방의 공공건물 가운데 가장 높은 위계를 갖는다. 수령들은 부임하게 되면 먼저 객사에 들려 배례를 올렸고,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望闕禮)를 통해 임금에 대한 충성과 목민관으로서의 소임을 다짐하였다. 객사는 외국에서 온 사신들과 공무를 위해 파견된 중앙 관리들이 숙소로 사용하거나 고을의 인사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기도 하는 곳이었다.
지금 남아있는 대표적인 객사 건물로는 경기도 과천객사와 평택객사, 충청도 문의객사와 부여객사, 전라도 무장객사와 낙안객사, 경상도 거제객사와 청도객사 등이 있고 최근 상주 고창등에서 객사를 복원하였다. 이 건물들은 모두 한결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 조선시대 객사의 건축형식이 표준화 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옆으로 긴 한일자(ㅡ)형을 이루는 객사 건물은 전패나 궐패를 모신 정청(正廳)과 숙소로 쓰는 익사(翼舍)로 구성되는데, 정청을 중앙에 두고 그 좌우에 익사를 나란히 배열하며, 정청 지붕을 익사 지붕보다 한단 높이는 것이 원칙이었다. 익사에는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마련하고 동익사에는 문관(文官)을 서익사에는 무관(武官)을 머물게 하였다. 대개 서익사 보다 동익사를 격이 높은 것으로 여겨 여기서 주로 연회 등을 열었기 때문에 동익사 주변에 연못을 마련하거나 주변에 수목을 조성해서 좋은 경관을 꾸미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건축의 이해(김동욱,1999,서울대학교출판부),한국건축사(대한건축학회,1996,기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