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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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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도량형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길이를 재는 자이다. 표준 척도가 있어야만 되, 말, 저울 등의 표준 용기를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표준 척도의 제정은 도량형 정비의 핵심이었다.
척도 제정의 기준은 검은 기장알이었는데 90개를 나열하여 12율의 기본음인 황종관의 길이를 만들고 이를 90등분 한 것을 1리(釐)로 삼았다. 그리고 10리를 1분(分), 10분(分)을 1촌(寸), 10촌을 1척(尺), 10척을 1장(丈)으로 정하였다. 조선시대의 자는 쓰임새에 따라 황종척(黃鍾尺), 주척(周尺), 조례기척(造禮器尺), 포백척(布帛尺), 영조척(營造尺)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황종척은 각종 악기의 제조와 음률을 맞추는 데 사용하고, 주척은 거리, 토지 등을 측정하거나 측우기 등의 천측기구 및 사당(祠堂)의 신주(神主)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조례기척은 종묘나 문묘 등 예기를 제작할 때 사용하였으며 포백척은 옷감을 재단할 때 쓰였다. 영조척은 성벽이나 궁궐 등을 건축하거나 되, 말 등의 양기(量機)를 만드는 기준이 되었다. 이밖에도 황종관(黃鐘管) 제작에 사용했던 종서척(縱黍尺)과 횡서척(橫黍尺)이 있으며 정조(正祖)가 신하들에게 나누어 준 중화척(中和尺)이 있다. 세종 때 제정된 각종 자를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황종척은 34.70cm, 주척은 20.795cm, 조례기척은 28.621cm, 포백척은 46.703cm, 영조척은 31.220cm이다. '시악화성(詩樂和聲)'에 그려진 척보의 도본을 실측해 본 결과 황종척는 33.45cm, 주척은 20.45cm, 조례기척 28.05cm, 포백척(8촌)은 36.15cm, 영조척은 30.7cm이다.
각각의 자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황종척은 각종 악기의 제조와 음률을 맞추는 데 사용하는 표준자로 세종 7년(1425년)에 박연(朴堧, 1378-1458)이 검은 기장 100알을 나란히 쌓아 그 길이를 황종척의 길이로 삼았다. 그리고 검은 기장 한 알의 길이를 1분, 10알의 쌓은 길이를 1촌으로 정하였다. 12음률의 기본 음인 황종(黃鐘)의 길이는 9촌(90분)이고 황종척의 길이는 황종에 1촌을 더하여 10촌(100분)이었다. 주척은 원래 주(周)나라 때 거리나 면적 등을 측정하는데 사용하는 기준자로 삼국시대에 당(唐)으로부터 들어와 고려,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주척은 주로 천측기구(天測器具)를 측정하거나 사당의 신주를 만들 때 사용하며 도로의 거리, 묘지의 영역, 훈련관 교정의 거리, 활터의 거리를 재거나 토지측량, 시체 검시 등에 사용하였다. 조선초기에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실려 있는 것을 표준척으로 사용하였으나 그 값이 일치하지 않아 세종 12년(1430년)에 집현전으로 하여금 주척을 교정하게 하였다. 이 때 허조(許稠, 1369-1439)가 지본주척(紙本周尺), '주자가례'에 실린 주척본(周尺本) 등을 참고하여 주척을 교정하여 전국에 반포 하였다. 이 후 성종 14(1483년)년에는 주척을 동철(銅鐵)로 만들어 형조, 한성부, 각 도에 보내게 하였으며 숙종 20년(1694년)에는 호조와 공조로 하여금 주척을 구리로 만들거나 돌에 새겨 잡척(雜尺)의 사용을 금하기도 하였다.
영조척은 곡척, 대척 등으로 불리웠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목수들이 사용하는 자로써 가옥과 성벽, 봉화, 사직단, 산릉과 능실 등을 건축하거나 되 및 말 등의 양기를 만들 때 표준척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세종 12년(1430년)에는 주척을 기준으로 하여 교정되었고 세종 28년(1446년)에는 세로 만든 영조척 40개를 전국에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주척과 마찬가치로 숙종 20년(1694년)에 영조척을 구리나 돌에 새겨 길이를 고정시켰다. 포백척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사용해 온 자로, 지방에 따라, 또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길이가 일정치 않았다. 세종 12년(1430년)에 다른 도량기는 모두 교정되었으나 포백척만은 교정되지 않아서 세종 13년에 각 관으로 하여금 죽척(竹尺)을 만들어서 경시서(京市署)로 보내어 교정하게 하였다. 세종 28년(1446년)에는 새로운 포백척으로 만들어 전국에 나누어 주었고 숙종 20년(1694년)에는 주척, 영조척과 같이 포백척을 구리로 만들거나 돌에 새기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의 도량형(국립민속박물관,1997),한국 중세 도량형제 연구(이종봉,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