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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궤의 재현장인조직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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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조직 체계

삼국시대는 기술인력이 전제 왕권에 의해 조직화되는 시기로 국가적 생산력을 바탕으로 대장(大匠)이라고 불리는 지도적 기술자가 설계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공사 전체를 주관하여 건축을 만들어 나간 시기이다. 통일 신라에 이르러서는 영선(營繕)조직은 행정관제 속에 편성되어 효과적인 공사운영과 인력을 조직화 하였다. 그러나 8세기 말을 지나 9세기로 접어들면서 중앙의 영선조직은 와해되고 기술인력은 지방 호족 세력 아래로 분산되었다. 고려가 중앙집권화를 이루면서 관청영선조직은 관료체제 속으로 편제되었는데 고려 전기에는 안정된 관청영선조직을 바탕으로 중앙의 왕실이나 관청 중심의 건축이 활발해 전개되었다. 12세기 무신란 이후 고려 영선조직은 위축된 반면 특권층의 무인을 비롯한 일부 권문세족은 관청에 소속되어 있던 우수한 인력을 독점하여 대규모의 건물을 조성하였다. 이 시기 불교사찰은 승려들에 의한 건축조영을 진행하여 고려 말기에는 우수한 기량을 갖춘 승장(僧匠)들이 사찰공사 뿐만 아니라 관영공사에도 진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관청영선조직은 조선 초기에 다시 정비되는데 기본 골격은 고려시대의 것을 답습하면서도 인력확보에 효과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바탕으로 전국의 기술인력을 중앙에 집중시켜 나갈 수 있었으며, 이 시기 건축공장의 우두머리였던 대목(大木)은 공사의 기술적인 부분을 전적으로 통솔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행정의 문란과 왕실 및 일부 양반계층의 지나친 조영활동은 16세기 관청영선조직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건축과 관련한 우수한 인력이 점차 관청을 벗어나 지배계층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특성을 보이면서 민간 부문의 건축이 중요시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17세기에는 지방 장인의 활동이 증가하였고 특히 승장들의 전업적인 활동이 두드러졌다. 장인조직에서는 대목이 사라지고 편수(邊首) 또는 도편수가 조직의 우두머리로 등장하였다. 도편수의 등장 이후 부재 세부가공이나 표현을 담당하던 편수의 위치가 커지는 반면 건물의 통일성을 책임지는 도편수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18세기 말 이후는 공장의 노임제 정착과 도시화에 힘입어 민간장인이 크게 성장하였는데 민간장인은 관청영선 뿐만 아니라 불사조영에도 진출하였으며 관청의 지배를 벗어나 장인간의 집단화 조직화를 추진하였다. 이 시기에 장인들의 활동을 지배하는 것은 국가의 지배력이 아니라 금전이었는데 민간 장인의 성장과 조직화는 19세기 말 이후 외래건축이 유입될 때 이에 대응 할 수 있는 잠재력을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건축공장사연구(김동욱,1993),조선후기 건축공장의 노임고(김동욱,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