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화성의궤의 재현언론정책

연관목차보기

언론정책

조선시대 군주도 인심을 천심과 동일시하여 정치를 운영하는 것으로 정통성을 부여받는 한 공론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은 없었다. 또한 공론은 모든 인심을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범위에는 조관 뿐만 아니라 서민의 논의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정조가 공론을 군주의 의리에 집중한 것은 왕권의 극대화를 보장하는 것이라 할 지라도 사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켜 정치 참여층의 축소를 초래함으로써 공론정치의 퇴조를 불가피하게 하였다.
한편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은 백성들의 억울하고 원통한 사정을 국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합법적인 소원제도이다. 상소(上疏)가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에 비해 상언과 격쟁은 주로 개인적인 사정을 소원하는 수단이었다 정조대에 이르러 상언 격쟁은 더욱 활성화 되었다. 그 이유로 첫째 18세기 후반에 토지겸병, 부세수탈, 상공업 이익 침탈 등 사회모순의 심화에 따른 백성들의 저항의지가 성장하였다는 점과 둘째 민의를 적극 수렴하여 이상사회를 실현하려는 정조의 통치철학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