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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례에 나타나는 우리 꽃

개관

우리는 삶을 살며 닥치는 어떤 마디마다 특별한 행위를 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람의 한 평생이다. 태어나 살다 죽고 후인에게 기려지는 일회적이고 직선적인 삶이 그 하나다. 이는 대개 일생의례, 혹은 평생의례로 불린다. 보통 이는 유교적 예제가 보급된 이후 관혼상제(冠婚喪祭, 家禮)로 통칭되어왔으나, 이외에 기자속이나 돌, 백일, 회혼잔치, 천도재 등이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일 년 열두 달의 순환 반복의 삶이다. 이는 세시풍속(의례)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 특별한 계기에 행해지는 부정기적인 의례가 있다. 이들 의례는 개인(가정, 전통사회에서 개인이란 가족 공동체의 일원) 마을(지역) 국가(왕실)이라는 단위에서 행해진다. 이들 의식을 집전하는 전문가들은 가정이나 마을에 있기도 하고, 국가(왕실)의 관리들이 행하기도 하고, 승려나 무당들처럼 전문가들이 집전하기도 한다.

이들 의례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매우 다양한 의례가 발달했고, 이들 의례에는 필수적으로 꽃이 등장한다. 꽃은 자연 그 자체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의미 있는 상징이기도 하고, 때로는 신의 위엄과 권능을 보여주는 대행자(매개체)이기도 하다. 꽃은 생화가 사용되기도 하였고, 가화(假花, 지화)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최근처럼 사철 꽃이 없었기에 생화의 사용은 제한적이었다. 대신 가화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에는 공작의 전문가가 필요하였다. 전문가는 마을마다, 지방 관아마다, 그리고 궁중에 존재했고, 승려나 무당, 광대들도 가화의 전문 제작자였다. 가화는 갈수록 발달하여 불교나 무속에서처럼 각종 의미를 품고 있는 상상의 꽃이 만들어졌다. 이하에서는 민간의 평생의례(혼례, 회혼례, 상례), 왕실의 궁중의례(주로 가례), 불교, 대동굿(세시풍속, 무속) 등에서 꽃이 사용되는 방식과 그 의미를 개관해보고자 한다.

민간의례

평생의례(가례, 주로 조선성리학 도입으로 주문공가례의 규범이 정착한 이후 가례, 관혼상제, 혹은 그냥 사례로 불렸다)에서는 대개의 경우 꽃이 필수적인 물목으로 사용되었다. 그 중 혼례와 회혼례 등의 잔치, 상례의 일부에서 꽃이 사용되었다.

혼례에서는 솔가지와 대가 사용되었다. 신부 집에서 진행하는 대례 시에 그 상(초례상, 행례상, 대례상)에 각종 물목과 더불어 꽃이 필수로 진설되었다. 소나무는 장수를, 대나무는 자손번성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송죽 대신 사철나무나 동백꽃(봄), 국화(늦가을) 등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들 꽃은 백자 항아리에 꽂아 놓는다. 겨울인 경우 더러 지화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여유 있는 사대부가에서는 대례의 음식상을 각종 꽃으로 장식하기도 하였고, 부녀자들의 머리에 꽃을 꽃아 분위기를 돋우기도 하였다. 대례상의 꽃으로는 신방을 장식하였다. 잔치의 병풍으로는 모란병풍이 많이 사용되었다. 모란병풍은 보통 괴석과 모란이 같이 그려졌는데, 남녀화합과 부귀를 상징한다. 신랑 집에서 시부모님에 인사하는 현구례 때에도 신랑, 신부가 받는 상의 끝에는 어김없이 꽃이 등장한다.

어르신의 회갑이나 축수연 등에서는 만수무강을 비는 의미에서 국화가 사용되었다. 국화에 기국연년(杞菊延年) 등의 문구를 부쳐 헌화하였다. 국화는 백자화병에 꽂아 놓는 것이 일반적이며, 더러 하객들(주로 부인들)의 머리에도 꽃을 꽂기도 하였다. 큰 잔치의 경우 하객들 음식상에도 꽃병을 놓는데, 이를 상화(床花)라 한다. 병풍은 대개 모란병풍이고 더러 화병에 모란을 꽂기도 하였다.

상이 났을 때나 제사에서는 꽃은 당연히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출상 시의 영여(靈輿)와 상여는 예외다. 영여는 망자의 혼을 싣고 가는 가마인데, 가마 지붕에 녹색 바탕에 붉은 색의 연봉을 달아 놓고 가마 옆에는 연꽃을 그려 놓았다. 상여는 망자의 시신을 싣고 가는 가마인데, 용마루 위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상여 옆에는 십이지상 등 각종 장식이 배치되는데, 이를 꼭두라 한다. 영여와 상여를 연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극락왕생을 비는 불교적 신앙의 흔적이다. 상여는 비용이 많이 들므로 대개 마을 공동의 소유다. 꽃상여는 흰색 지화로 장식하는데, 상이 끝나면 모두 태워버린다.

민간의 세시풍속은 정월(대보름), 이월 연등, 삼월삼짇날, 사월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 팔월 한가위, 구월귀일(중양), 시월상달, 동지섣달로 이어진다. 꽃은 봄과 가을에 많이 피므로 삼월 진달래 화전(놀이), 유월 창포, 구월 국화 등이 사랑받았다. 절기의 꽃(節花)은 식용, 약용, 관상용 등으로 이용되었다. 사대부가에서는 매난국죽 사군자를 중국 고사 등과 연결 지으며, 절의의 상징으로 여겨, 단순한 관상용의 경지를 넘어 수많은 시화(詩畵)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 전하는 사대부의 문인화는 대부분이 이 사군자를 그리고 그에 시를 붙인 것이다.

궁중의례

궁중의례는 다섯 가지 의례로 나뉜다. 소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가 그것이다. 오례는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의 다섯이다. 조선조에 주자 성리학과 주자가례가 유입되었지만, 주자가례는 말 그대로 가례만을 중시했을 뿐 국가(궁중)의례에 대한 규범은 정해 놓지 않았다. 이에 조선은 고려의 예제와 중국의 고례를 참고하여 나름의 궁중의례를 정형화시켰다. 세종 때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하였고, 조선 후기에 재정비하였다.

궁중의례는 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의식이다. 당연히 각종 장식이나 상징물들도 최고급이었다. 필수품이었던 꽃도 최고급의 절화(제철 생화)나 가화가 사용되었다. 오례 중 꽃이 가장 많이 사용된 예제는 가례, 즉 잔치였다. 이외 빈례(사신 접대)나 흉례(상례) 등에서도 일부 사용되었다. 이하에서는 고려시기 궁중의례 중 꽃의 사용에 대해 간략 살펴보고 조선시기의 가례를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1) 고려의 궁중의례
고려시기 궁중의례 중 꽃이 많이 사용된 경우는 대부분 가례다. 고려사 예지에는 왕비나 왕태자를 정하고 잔치를 벌이는 경우, 신하들을 위한 연회 등에서 임금에게 꽃을 올리고, 신하들에게 꽃을 하사하고, 꽃을 머리에 꽂는(戴花) 기록이 여럿 발견된다. 이외 연등회(정월)나 팔관회(11월)는 해마다 열리는 가장 큰 국가의례였는데, 왕이 머리에 꽃을 꽂는 법도가 엄정하였고, 태자와 군신에게 꽃을 하사하는 절차가 있었다. 강감찬장군은 거란병을 물리치고 돌아와 금으로 만든 여덟 가지의 꽃을 하사받았고, 노인잔치인 기로연에서도 꽃의 하사가 있었다. 대화의 풍속은 고구려 등 사신도에 보이는 깃털 꼽는 풍속의 유풍으로 보이며, 이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대화는 아마도 고대 이래로 조선을 상징하는 특이한 장식문화였던 것으로 여겨진 듯하다. 꽃은 대개 가화였고, 베나 비단, 심지어는 금으로 제작하기도 하여 낭비라는 건의도 있었다.

꽃과 관련한 관리도 따로 있었는데, 왕이 하사하는 꽃과 술을 전달하는 선화주사(宣花酒使), 꽃을 꽂아주는 권화사(勸花使), 운반을 감독하는 압화주사(押花酒使), 꽃 가진 이를 영솔하고 꽃을 거두는 인화담원(引花擔員) 등이 있었다.

2) 조선의 궁중의례
조선시기 꽃이 많이 사용되는 경우는 고려와 마찬가지로 가례다. 조선의 궁중 잔치는 큰 연회를 진연(進宴), 작은 잔치를 진찬(進饌)이라 했다. 이러한 잔치에서 사용되는 꽃은 대부분 가화였고, 그 종류와 수량도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 또한 가화를 만드는 전문 장인인 화장(花匠)이 있었다. 꽃을 꼽는 각종 도구(花樽, 花案, 花壺, 進花卓, 供花卓 등)도 정교하게 준비되었다. 이들 잔치는 궁중 도화원의 전문 화공들이 상세한 칼라 그림으로 그려 놓았는데, 이를 왕실의궤(王室儀軌)라 한다. 이 의궤에는 각종 꽃장식들, 가화들이 자세히 그려져 있어 오늘날 꽃꽂이 하는 이들이 참고하여 재현하고 있다.

잔칫상에는 음식마다 꽃을 꽂았고(床花), 후기로 오면서 꽃의 종류가 20여 가지를 상회하였다. 고종 때 조대비의 육순잔치 때는 29가지의 꽃이 등장한다. 삼층대수파련(三層大水波蓮), 중수파련, 소수파련의 연꽃, 절화(節花), 삼지건화(三枝建花), 삼색별건화(三色別建花), 홍도건화(紅桃建花) 등 모두 29가지가 잔치 음식 중앙에 꽂혀졌다.

일반적인 가례에서는 왕에게는 진화(進花)하고, 왕세자 등에는 공화(供花)하고, 신하들에게는 산화(散花)하였다. 이외 임금이 내리는 특별한 사화(賜花)가 있었는데, 어사화(御賜花)가 그것이다. 어사화는 두 개의 대오리 밑 부분을 종이로 함께 싸서 묶고 위로는 대오리가 각각 벌어지도록 한 다음 아래에는 커다란 종이(꽃받침)를, 위에는 여러 색의 종이꽃을 붙인 것이다.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머리에 꽃을 꽂는 것(戴花)은 일반적이었다. 왕과 신하, 궁녀, 악공, 기녀, 무희 등이 모두 대화를 하였다. 머리 위의 관에 꽂는 꽃은 사화(絲花, 絲圈花)라 하는데, 오색 비단실을 감아 만든 가화였다. 사권화는 한 줄기에 네 송이의 꽃과 잎을 붙이고, 두 마리의 나비와 벌 네 마리를 붙여 놓은 형상이었다.

한편 임금의 초상 때에도 많은 가화를 사용하여 그 낭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상 때 가화는 비단으로 여러 꽃과 열매를 만들어 유밀과에 꽂았다고 한다. 꽃은 매화, 배, 진달래, 해당화, 복숭아, 살구, 연화, 모란, 감귤, 홍시 등이었다. 가화는 비단, 모시, 기름종이 등으로 만들어졌기에 논란이 많았고, 생화의 경우도 민간에 헌납을 강요하여 민폐가 많았다.

불교의 꽃

불교에서 꽃은 기본적으로 불보살에 바치는 공양물이다. 또한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거나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장엄물이기도 하다. 꽃이 깨달음의 상징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염화미소(拈花微笑)가 있다. 부처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다 꽃을 들어 보이니 가섭만이 미소 지었다는 얘기인데, 꽃이 바로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하는 매개가 된 것이다.

불전에 바치는 공양물임을 보여주는 기록으로는 『석가여래십지행록(十地行錄)』의 제8지 「선혜선인품」이 있다. 이는 석가모니의 본생담(전생담)이다. 선혜라는 보살이 부처님께 꽃을 공양하고자 구리라는 여인이 갖고 있던 칠경화(七莖花)를 내생의 결혼 약속 끝에 얻어 각각 다섯 송이와 두 송이를 부처님께 공양하고 미래 성불을 수기받았다는 설화다. 이 선혜보살은 석가모니가 되었고, 구리는 석가의 아내가 되었다. 일제 시기 이후 불교의 신식 화혼례(華婚禮)에서는 이 칠경화 설화에 따라 신랑, 신부가 헌화한다. 불전에 공양하는 꽃다발을 화만(華?)이라 하는데, 이는 인도인들이 꽃을 실로 꿰거나 묶어서 몸을 치장하는 방법이었는데, 불교에서 이를 불보살에 드리는 공양법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는 이후 불전 공양구로 전용되거나 불화 상단의 장엄용으로도 활용되었다.

불교에서 꽃은 극락세계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연꽃은 깨달은 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부처가 태어나 칠보를 걸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는 설화는 그 첫 사례다. 또한 모든 불상은 법당에서 연화대 위에 앉아 있다. 화엄경에서는 연화장(蓮華藏) 세계를 설하는데, 이는 부처의 깨달음과 함께 바른 눈이 열리는 장엄 세계라는 의미이다. 정토 관련 경전에서는 극락세계 중 최상위인 9품연화대에 왕생하는 것이 으뜸임을 설하고 있다. 불교에서 연꽃은 다섯 가지(백련, 홍련, 청련, 황련, 청백련)가 있는데, 이중 백련을 으뜸으로 친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그 청정함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하여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 한다.

한편 불교의식의 정수인 영산재(靈山齋)에서는 각 단을 지화로 장엄한다. 불교의 천도재는 대개 상단(불보살단), 중단(신중단), 영단(영가단)의 삼단 체계를 기본으로 하는데, 이 각 단을 지화로 장엄한다. 상단(큰 불화를 야외 마당에 건다, 掛佛壇)에는 작약과 (살)모란을, 중단에는 국화와 다리화를, 영단에는 연화(연지화)를 놓아 장엄한다. 또한 재를 지내는 중 가장 장엄한 상단불공에서는 작법(불교 의식무용)을 추는데, 이때 모란과 작약을 들고 춤공양을 올리기도 한다. 연꽃, 모란과 작약 외에도 불교 전각에는 외부나 실내 벽화에 다양한 꽃이 그려지는데, 어송화, 수초, 맨드라미, 치자, 들국화 등이 자주 등장한다.

대동굿(무속)의 꽃

대동굿은 대개 한 마을이 아니라 읍치(읍면단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대규모 공동체 굿이다. 동해안이나 남해안의 각종 별신굿, 강릉단오제, 은산별신제 등이 그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큰굿이어야 의식 진행 중에 각종 화려한 종이꽃(紙花)들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 큰굿은 지역민들이 제주가 되고 경비를 대지만 의식의 실제 집전자는 무당들이다. 그리고 이들 무당은 각종 지화의 전승, 생산자들이기도 하다. 이들 무당은 고려 조선 시기 궁중의 각종 의례에 동원되어 지화를 제작한 전통을 갖고 있다. 각종 지화의 전승 주체는 궁중 화장, 승려, 무당, 광대이지만, 오늘날은 승려와 무당들이 그 맥을 잇고 있다.

이하에서는 동해안별신굿, 강릉단오제에 사용되는 지화의 명칭을 수록한다. 이외에 읍치의 대동굿은 아니지만 서울이나 충청도, 황해도 무당들이 만드는 지화의 명칭을 첨부한다.

동해안별신굿의 지화
산함박꽃 / 가시게국화 / 정국화 / 출하작약 / 연꽃 / 박꽃 / 고동화

강릉단오제의 지화
고동화 / 가위초 / 광화초 / 연꽃 / 장미 / 박꽃 / 연봉

서울, 충청, 황해도의 지화
수팔연(연꽃, 목단, 매화, 난, 도라지, 단풍잎 등) / 살제비꽃 / 가지꽃 / 천상화(백련) / 막꽃 / 눈설화꽃 / 서리화 / 제석꽃 / 꽃갓꽃 / 칠성제비꽃 / 만감홍꽃 / 만도산꽃 / 군웅꽃 / 조상꽃

이외 무속에서는 무가에 등장하는 각종 상상의 꽃이 등장하여 극락왕생을 빌거나 환생, 치유를 비는 기능을 하는데, 이 글에서는 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