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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고결함

국화야 너는 어찌 삼월 동풍 다 보내고
낙목 한천에 너 홀노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菊花야 너는 어이 三月 東風 다 보고
落木 寒天에 네 홀노 픠엿다
아마도 傲霜孤節은 너인가 노라.

국화는 고전문학에서 사군자와 상호 관련된 상징으로 이해되어 왔다. 세월에 역행하여 개화하는 점에서는 매화(梅花)와 관련되고 고결(高潔)하다는 것은 연꽃과 연관된다. 국화가 지닌 고고함은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까지 피는 꽃이므로 세상일에 초연하여 홀로 고상하다는 데서 연유한다. 이정보의 시조에서 사용된 오상고절(서리에 굴하지 않는다)은 국화를 상징하는 관습적인 표현으로 쓰여왔다.

참고문헌

이정보(李鼎輔), 『해동가요(海東歌謠)』, 一石本 316

국침

흰 모시로 자루를 만들어서 그 속에 향기로운 풀을 넣고 양쪽 마구리를 오무려서 만든 다음 비단으로 싼 듯한데, 거기에는 가는 금사(金絲)로 무늬를 극히 정교하게 수놓고 다시 여기에 붉은 비단으로 장식을 한 바 그 무늬가 연꽃모양과 같았다.

중국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는 고려인들의 향침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이 국침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선 헌종 때에 시인인 조수삼은 국침의 효용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국화를 이용한 치료방법으로 오늘날의 향기치료(aroma therapy)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서긍(徐兢), 「향침(香枕)」, 『고려도경(高麗圖經)』

군자의 덕

한식 비 갠 후에 국화 움이 반가워라
꽃도 보려니와 일일신 더 좋구나
풍상이 섞어 치면 군자절을 피운다.
寒食 비  後에 菊花 움이 반가왜라
곳도 보려니와 日日新 더 죠홰라
風霜이 섯거 치면 君子節을 픠온다.
김수장(金壽長), 『해동가요(海東歌謠)』 주씨본 476

사시가 건듯건듯 철이 바뀌니
봄ㆍ여름 온갖 꽃들 시드네
국화야, 너는 맨 끝에 처음 피어서
맑은 향내 뼛속까지 스며드누나
만장 홍진이 눈을 흐리고
된서리가 머리칼에 날아들어도
너는 끝내 향기를 그대로 지녀
밝은 달에게 그윽한 정을 부치는구나
奄四時兮倐忽
念群芳兮衰歇
殿百花兮始發
香淸冷兮逼骨
塵萬丈兮眯目
颯乾霜兮入髮
保芳馨兮無闕
寄幽情於明月
강희맹(姜希孟), 「우국재부(友菊齋賦)」, 『속동문선』 제1권

아, 일찍 심었는데도, 늦게 피는 것은 덕이요
아, 홀로 깨끗한 것은 절개요
아, 맑고도 높은 것은 서리 아래 호걸이로다.
於乎. 早植晩發者. 德.
於乎. 介然孤潔者. 節.
於乎. 淸高者. 霜下傑.
이형상(李衡祥), 「몽설찬(夢說贊)」,『병와선생문집(甁窩先生文集)』 권4
위의 3개의 시는 모두 풍상이 칠 무렵에 고히 피어있는 국화의 자태를 노래하였다. 서리가 내린 후에 절개를 안다고 했던가. 늦게 피었으나 은은항 향기로 고고한 기상을 떨치는 국화의 모습 속에서 선비의 고고함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덕을 보았다.

참고문헌

김수장(金壽長), 『해동가요(海東歌謠)』 주씨본 476
강희맹(姜希孟), 「우국재부(友菊齋賦)」, 『속동문선』 제1권
이형상(李衡祥), 「몽설찬(夢說贊)」,『병와선생문집(甁窩先生文集)』 권4

불로약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쉬 늙지 않는다. 또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오장을 도우며 사지를 고르게 한다. 그 밖에도 감기 · 두통 · 현기증에 유효하다. 약효를 얻으려면 꽃을 따서 그늘에다 말려 조금씩 물에 넣고 달여서 마신다. 술 마신 다음날 국화 2~3송이를 달여 마시면술이 깨고 머리가 가벼워진다.
이시진(李時珍), 『본초강목(本草綱目)』

9월 9일에 아! 약으로 먹는
황국화가 집안에 드니
초가집 마을이 조용하여라
아으 동동다리
九월 九일에 아으 藥이라 먹는
花고지 안해 드니
새셔가 만얘라
아으 動動다리
작자미상. 「동동(動動)」

국화는 중국이 그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록에도 국화의 기원이 매우 오래된 것으로 나타난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고려 충숙왕 때 원나라에서 학정홍(鶴頂紅) ․ 소설백(笑雪白) 등 여러 품종의 국화를 다른 꽃들과 함께 도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 송나라 때의 양국(養菊) 대가(大家)인 유몽(劉蒙)의 「국보(菊譜)」에 국화의 품종으로 신라국(新羅菊, 일명 옥매(玉梅) 또는 능국(陵菊))을 기록하고 있고 또 일본의 『왜하남재도회(倭漢三才圖會)』에서는 4세기 경에 백제에서 청 · 황 · 홍 · 백 · 흑 등 오색의 국화가 일본에 수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사』에는 고려 의종(毅宗) 14년(1160년) 9월에 왕이 국화를 감상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이미 국화가 있었고 중국으로부터 도래된 국화와 더불어 재배 또는 교류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중국과 같이 국화의 원산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국화는 봄에는 국화의 움싹을 데쳐 먹었고 여름에는 국화잎을 쌈을 싸 먹었으며 가을에는 국화꽃잎으로 화전을 부쳐 먹었고 겨울에는 국화 뿌리를 달여 마셨다고 한다. 감국 포기 밑에서 나오는 샘물은 국화수라 하여 이 물을 장기간 복용하면 안색이 좋아지고 늙지 않으며 풍도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국로수(菊露水)라 하여 국화꽃에 맺힌 이슬을 털어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국화주는 두통을 낫게 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병을 없애는 데에 큰 효과가 있다고 믿어왔다.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국화의 효능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우리의 민간에서는 이미 국화를 약용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고려가요인 「동동(動動)」의 9월령(月令)에 등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이시진, 『본초강목(本草綱目)』
작자미상. 「동동(動動)」

불로장수

현기증이 있어도 온갖 약효 없더니
의원이 이르기를 국침이 좋다 했다
(중략)
잠깐 베고 있어도 ‘중향국’예 들어간 듯
높이 괴어 베면 감수곡이 부럽지 않도다
효험도 신기하여 몸이 가뿐하고
더욱 신기한 건 두 눈이 점차 맑아지네
머릿속의 잡생각이 말끔히 가시고
목욕하고 난 듯 그 기운 온 몸에 퍼지네
我有風眩藥無功
醫云枕菊當差復(中略)
乍枕疑入衆香國
高臥不羨甘水谷
異效信然輕一身
新功漸次明雙眼
頭裡邪風不敢作
滲沾體髮同齊沐
국화는 예부터 불로장수를 상징하였다. 옛 사람들은 단순히 국화의 은일미(隱逸美)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식용하여 불로장수하려던 사람도 많았다. 국화의 다른 이름에 갱생(更生), 장수화(長壽花), 수객(壽客), 부연년(傅延年), 연령객(延齡客) 등으로 부른 것은 국화가 지닌 장수의 의미 때문이다. 국화꽃잎을 넣어 만든 국침도 국화가 지닌 장수의 효능을 활용한 것이다. 국침은 국화꽃잎을 곱게 말려서 베개 속이나 이불 속에 넣어 그윽한 향기를 즐기는 동시에 몸에 이롭게 활용하던 것이다. 민간에서는 국침을 베고 자면 머리가 맑아지고 단잠을 잘 수 있다고 하였고 오늘날에도 두통치료의 요법으로 쓰이고 있다.

참고문헌

조수삼(趙秀三), 「 국침(菊枕)」, 『추재집(秋齋集)』

선비정신

중추절도 열엿새 밤이
달빛 더욱 밝지 않던가
중양절 하루 지난 오늘
국화 향기 여전히 은은하여라
세속은 유행에 부화뇌동하여
명절만 지나면 관심도 없지만
나는 유독 청초한 이 꽃을 사랑하노니
만년의 절조 지킴이 내 마음에 꼭 들어
바람결에 몇 번이나 향내 맡고도 싶다마는
주위의 사람이 뭐라고 할까 또 겁이 나니
차라리 술잔 위에 꽃잎을 둥둥 띄워
곤드레만드레 황혼 녘까지 함께하리라
中秋十六夜
月色更輝輝
重陽十日菊
餘香故依依
世俗尙雷同
時過非所希
獨憐此粲者
晩節莫我違
臨風欲三嗅
又恐旁人非
不如泛美酒
昏昏到夕暉

고전문학에 나타난 국화의 이미지는 군자나 은일사에 국한되지만 유교적인 관점에서는 선비정신을 함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때 대부분의 작품이 의인화 방식을 취하는 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곡의 <십일국>에서는 8월 보름 다음 날인 16일의 달빛과 또 증양절 다음 날인 10일의 국화 향기를 들고 있다. 9월 10일은 중양절과는 불과 하루 뒷날임으로 그 사이에 국화의 향기가 쇠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국화가 한창시절일 것이라는 상징적인 날짜인 9월 9일을 지났기 때문에 어제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시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일국화에 더욱 아쉬운 정감을 보내게 마련이다. 여기서는 16일 밤의 달빛과 10일의 국화로 하여 더욱 은일의 의미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시세의 변화에 좌우되기 쉬운 이 사회에서 개인의 뜻을 펴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세에 따라 뜻을 굽히고 만다. 그러나 자신은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국화를 사랑하며 세속에 물들 수 없다는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국화의 향기를 맡으려다가 세속에 물든 나쁜 것까지 묻어올까 저어하여 차라리 꽃잎을 슬에 띄워서 마시리라” 한 표현에는 강한 현실부정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참고문헌

이곡(李穀), 「십일국(十日菊)」, 『가정집(稼亭集)』 제14권

역경의 극복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는 「국화 옆에서」란 작품에서 가을에 피는 국화는 봄에 피는 다른 꽃들과 달리 오랜 성숙과정을 통해 피어나는 꽃으로 인식한다. 국화의 개화(開花) 과정을 소쩍새·천둥·무서리 등 다른 상황들로 확장하면서 모든 생명체의 생의 과정으로 대유(代喩)화한다. 결국 모든 생명체들은 저마다 치열한 생명 창조의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는 것을 선명히 보여준다. 국화가 마침내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피우고, 무수한 괴로움과 역경을 극복한 여인이 거울 앞에 앉아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은 동식물을 인간적 비유로 활용하는 알레고리적 발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
어떠한 생명체라도 치열한 명 창조의 역정을 밟고 태어난다는 것을 선명히 보여 주는 이 시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 因緣說)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한다고 할 때, 그것이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강한 힘을 부여하는 인(因)과 약한 힘을 보태는 연(緣)과의 상호 결합의 결과로 본다. 이 시에서도 국화 자체의 힘(因)과 소쩍새·천둥·무서리가 봄부터 가을까지 작용(緣)함으로써 국화가 꽃을 피우는 것이다. 여기서 국화는 모든 생명체의 대유이자, 나아가 생명이 그러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상태의 상징이며, 동시에 시적 자아의 '누님'과 같은 40대 중년 여인이 도달할 수 있는 원숙하고 평온한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서정주, 「국화 옆에서」, 경향신문, 1947.11.9.

인고

봄의 신이 꽃 피우는 것 맡고 있는데
어찌 가을의 신이 또 꽃을 피우려 하나
서늘한 바람 날마다 불어오는데
어디서 따뜻한 기운 빌어다 꽃을 피우는지
靑帝司花剪刻多
如何白帝友司花
金風日日吹蕭瑟
借底陽和放豔葩

가을에 늦게 피는 국화는 인고의 상징으로 자주 쓰였다. 이규보의 작품에서 원래 꽃을 피게 하는 책임은 동쪽에 있는 봄 신의 소관으로 보았다. 그러나 서쪽에 있는 가을의 신은 꽃을 피우려 해도 이미 서리가 내리고 음기(陰氣)가 대지에 깔려 힘이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어디서 따뜻한 기운을 빌려와 국화를 피게 한 것이다. 국화는 천지의 조화로움 속에서 가을의 신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인고 끝에 피어나는 꽃이다

참고문헌

이규보, 「영국(詠菊)」,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14

절개

주렴계는 애련하고 도정절은 애국이라
周濂溪는 愛蓮하고 陶靖節은 愛菊이라
연화는 군자거늘 국화는 은일사라
蓮花는 君子어늘 菊花는 隱逸士ㅣ라
지금에 방당에 연 심고 호칭연호하더라.
至今에 方塘에 蓮 시무고 號稱蓮湖더라.

눈과 서리가 흔히 정치적으로 불순한 세력이나 불의(不意)를 뜻하는 상징으로 쓰였다면 국화의 꿋꿋함은 선비들의 저항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점은 오뉴월에 화려하게 피는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시세(時勢)에 영합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안민영의 시조는 <연호>라는 못을 만든 내력을 담은 작품이다. 여기에서 국화는 도연명(도정절)을 통해 세상에 숨어사는 선비(은일사)를 환기시키는 소재로 사용되었다. 고고함에서 파생되는 외로움이라는 속성이 세속에 소외된 선비의 이미지로 분화된 것이다.

참고문헌

안민영(安玟英), 『금옥총부(金玉叢部)』 32

변함 없는 충절

사람은 말을 할 수 있어도
나는 그 나쁜 마음을 싫어하네
꽃은 비록 말을 할 수 없으나
그 꽃다운 마음을 나는 사랑하네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았으나
너를 위해 한 잔을 드네
평생 웃어 본 적 없지만
너를 위해 한바탕 웃겠노라
국화를 내가 사랑하는 것은
복숭아와 자두꽃엔 풍광이 많기 때문이네
人雖可與語
吾惡其心狂
花雖不解語
我愛其心芳
平生不飮酒
爲汝擧一觴
平生不啓齒
菊花我所思
桃李多風光
국화의 생태는 인간 사회에서의 현실저항을 상징하여 외압에 굴하지 않고 굳은 의지로 살아가는 기골찬 인물에 비유되기도 한다. 남성 인물은 온갖 유혹과 무서운 고초에도 굴하지 않는 충절로, 여성 인물은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꺼져가는 고려 사직을 지키려다 순사(殉死)한 정몽주는 장편시 「국화탄」에서 국화를 사랑하는 이유가 복숭아꽃과 자두꽃에는 풍광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화 사랑의 이유를 간접적으로 복숭아와 자두꽃의 특징에서 찾았다. 여기에서 풍광이란 봄바람과 양지를 뜻하지만 시세(時勢)에 영합하는 것을 암유(暗喩)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국화는 곧 변함없는 충절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정몽주, 「신축십이월정전 국화탄(辛丑十月庭前菊花嘆)」,『포은선생문집』 권2

중양절

19와 29가 모두 9자 수인데
9월 9일로 정해진 때가 없도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지 못하나
활짝 핀 국화만은 이것을 알리라
十九卄九皆是九
九月九日無定時
多少世人皆不識
滿開惟有菊花知
정렴, 「영만국(咏晩菊)」

뭇사람들은 중양절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만
반드시 중양절만이 흥이 더 많은 것은 아니네
국화를 마주 보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면
구추 어느 날인들 중양절이 아니랴.
世人最重重陽節
未必重陽引興長
若對黃花傾白酒
九秋何日不重陽
정작(鄭碏), 「중양후일시(重陽後日詩)」

중양이라는 말은 9가 양수이기 때문에 양수가 겹친 것을 뜻한다. 9가 2번 겹치므로 '중구'라고도 한다. 속설에는 제비가 3월 3일에 왔다가 중양절에 강남으로 간다고 한다. 이날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먼 곳을 바라보며 고향생각을 하며 국화전이나 국화주를 만들어 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명절로 정하여 잔치를 베풀어 군신이 더불어 즐거움을 같이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봄과 가을의 중양절 2차례에 걸쳐 노인잔치를 크게 베풀어 경로사상을 드높이는 계기로 삼았다.

참고문헌

정렴, 「영만국(咏晩菊)」
정작(鄭碏), 「중양후일시(重陽後日詩)」

지조

아홉 대를 딱 때리니
구자 낫을  붓치니
구고(깊은 못)의 학이 되어
구고(九臯)의 학(鶴)이 되야
구만리 긴 하늘을 높이 날아
구만장공(九萬長空) 놉히 날아
구곡간장(구불구불한 간장)에 매친 한을
구곡간장(九曲肝腸) 매친 한을
구중심처(아홉겹 깊은 곳)에 아뢰고자
구중심처(九重深處) 알외고져
구월 서리 바람이 흔들어댄들
구월상풍(九月霜風) 요락(搖落)한들
구월의 국화가 지겠습니까
구월황화(九月黃花) 이우릿가
「춘향가」의 십장가(十杖歌)에서는 국화가 곧 춘향의 절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구월의 차가운 서릿발에도 지지 않는 국화처럼 춘향의 일편단심이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임을 저항하듯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부녀자들이 사용하는 비녀 머리에는 국화무늬를 새긴 국화잠(菊花簪)이 있었다. 이 국화잠은 장수를 기원하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부녀자의 절개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춘향가」 중 십장가

풍류

밖에 국화를 심어 국화 아래 술을 빚어
밧긔 국화를 심거 국화 아래 슐을 비져
달 뜨자 술 익자 꽃 피자 님오시자
달 자 슐 익 퓌자 님오시자
나비가 와셔 춤 추거든 완월상취하리다.
나배 와셔 츔 츄거든 완월샹취 리다.
작자미상, 『악부(樂府)』, 나손본 822

삼월이 좋다 해도 구시월만 못하리라
三月이 죳타 도 九十月만 못허리라
봉봉이 단풍이요 골골마다 국화로다
峯峯이 丹楓이요 골골마다 菊花로다
아마도 놀기 좋기는 구시월인가.
아마도 놀긔 죳킨은 九十月인가
작자미상, 『調 및 詞』 55

국화는 민간에서 술을 빚는 재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또한 도연명의 고사와 관련해 풍류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 앞의 시조에서는 국화 술 나비로 이어지는 소재의 연쇄적 결합이 종장에서 춤으로 어우러져 흥취의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두 번째 작품에서 국화가 피는 음력 구시월은 단풍과 함께 유흥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임을 노래한다. 이들 작품에서 국화는 풍류적인 취락(醉樂) 행위의 중심소재인 것이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악부(樂府)』, 나손본
작자미상, 『調 및 詞』

호연지기

산 빛과 사람들 그림자 모두 북적대고
희뿌연 산들 바라보면 만 리가 모두 가을이네
비단빛 단풍숲은 푸른 아지랑이 속에 있고
금빛 국화는 노인들 머리에도 꽂혔네
山光人影共浮浮
一望風烟萬里秋
錦色楓林蒼靄裏
黃花又揷老人頭
중양절은 매년 음력 9월 9일로 가을의 명절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 때부터 공식 명절로 삼아, 국가에서 임금이 참석하는 제사를 올렸고, 사가(私家)에서도 제사와 성묘 등을 하였다. 또 양(陽)이 가득한 날이라고 하여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 등고(登高)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작품은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등고 풍습을 노래한 것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9월 9일에 노란 국화를 따다가 찹쌀전을 만드는데 방법은 3월 삼짇날의 진달래전과 같고 이를 화전(花煎)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국화만두, 국화주도 중양절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중양절에 국화주를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생각했는데 궁중에서도 축하주로 애용하였다. 또 도성에서 변경지방으로 부임할 때는 벗의 먼 여행길의 안녕을 비는 액막이의 뜻으로 성 밖까지 전송하며 국화주를 나누어 마셨다고 한다.

참고문헌

김부용 저, 김근태 번역, 『중양절에 등고하며(重陽登高)』국역 운초기완 1, 성환문화원, 2010

생태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양지의 산골짜기와 산지의 북부에 자생한다. 크기는 60~120cm이다. 꽃의 모양과 꽃이 피는 형태에 따라 품종이 매우 다양하다. 홑꽃형은 중심부 통상화에 꽃잎 1 2겹이 붙어있는 형태이며 겹꽃형은 통상화 없이 모두 꽃잎으로만 덮여있다. 아네모네형은 중심부 통상화에 바깥 설상화꽃이 길게 신장하는 형태이고, 폼폰형은 탁구공모양과 같이 작은 원형모습이며. 스파이더형은 가늘고 긴 꽃잎이 거미줄 모양으로 붙어있는 형태이다. 꽃이 피는 형태에 따라서 스탠다드형은 하나의 꽃대에 하나의 꽃을 피우는 것으로 흔히 장례식이나 제례용으로 사용되는 흰색과 노란색의 국화이며, 스프레이형은 하나의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을 피우는 것으로 보통 꽃꽂이나 꽃다발용으로 사용된다.

국화는 뭇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이나 여름을 피하여 황량한 늦가을에 고고하게 피어난다. 늦가을 찬바람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외롭게 피어나는 모습은 이 세상의 모든 영화를 버리고 자연 속에 숨어사는 은사의 풍모나 기품이 높고 고결한 인간상으로 비유되었다. 또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국화는 봄이 아직 빠른 세한에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매화와 닮은 점이 있어서 함께 ‘세한이우(歲寒二友)로 불렀다.

꽃 생태정보

식물명 : 국화
과명 : 국화과
학명 : Chrysanthemum morifoliu
종류 : 초본(풀)
이명 : 국, 절화, 중양화, 금화
꽃색 : 황색, 여러 가지 잡색
계절 : 가을
분포 지리 : 원예품종, 전국 각지
분포 지형 : 관상용 재배
생육상 : 다년생초본(여러해살이풀)
높이 : 60~100cm
개화기 : 9월 ~ 10월
결실기 : 10~11월
열매의 형태 : 수과(여윈열매)
용도 : 관상용
기타 : 구절초와 감국 등이 합쳐진 원예품종
사진제공자 : 김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