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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가화

홍모란 백모란 정홍모란
홍작약 백작약 정홍작약
어류 옥매 황자장미 지지동백
위 간발ㅅ경 그것이 어떠하니 있고
(엽)합죽도화 고온 두 분 합죽도화 고온 두 분
위 상영ㅅ경 그것이 어떠하니 있고
紅牧丹 白牧丹 丁紅牧丹
紅芍藥 白芍藥 丁紅芍藥
御柳 玉梅 黃紫薔薇 芷芝冬栢
위 間發ㅅ景 긔엇더니잇고
(葉)合竹桃花 고온 두 분 合竹桃花 고온 두 분
위 相暎ㅅ景 긔엇더니잇고

「한림별곡」은 고려 고종 때 한림제유가 지은 경기체가이다. 모두 8연으로 각 연마다 일경(一景)씩을 읊고 있는데 화훼는 다섯 번째 연에서 읊고 있다. 이 가사에서 여러 가지 꽃이름을 나열하면서 모란을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있는데 이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모란을 가장 사랑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림제유, 「한림별곡」제5장

감군

벼슬아치 집 정원마다 다투어 기르니
누가 마치 성서에서 수재를 축하하려는 듯
짙고짙은 향기 따뜻한 바람에 불어오고
얼큰한 묘주는 붉은 뺨에 들어오네
문득 도사 따라 뜰 앞을 바라보니
건물 뒤 피어난 꽃에 임금님 생각나네
한 가지만 유독 피지 않았기에
양(梁)사인 오기를 기다리네
侯家池館競栽培
誰似城西賀秀才
陣陣天香薰暖蕊
酣酣卯酒入紅顋
忽從道士庭前看
因憶君王殿後開
別有一枝猶未發
故應留待舍人來
의종 때 임춘의 작품에는 벼슬하는 집 정원마다 다투어 모란을 기른다고 했다. 양국준 집의 붉은 모란은 임금님이 내려주신 것으로 임금님을 추억하는 매개물로 등장한다.

참고문헌

임춘, 「양국준 집에 하사하신 붉은 모란[梁國俊家鞓紅牧丹]」중 일부, 『서하선생집』 권1, 고율시 61

군왕의 추억

벼슬아치 집 정원마다 다투어 기르니
누가 마치 성서에서 수재를 축하하려는 듯
짙고 짙은 향기 따뜻한 바람에 불어오고
얼큰한 묘주는 붉은 뺨에 들어오네
문득 도사 따라 뜰 앞을 바라보니
건물 뒤 피어난 꽃에 임금님 생각나네
한 가지만 유독 피지 않았기에
양(梁)사인 오기를 기다리네
侯家池館競栽培
誰似城西賀秀才
陣陣天香薰暖蕊
酣酣卯酒入紅顋
忽從道士庭前看
因憶君王殿後開
別有一枝猶未發
故應留待舍人來
의종 때 임춘의 작품에는 벼슬하는 집 정원마다 다투어 모란을 기른다고 했다. 양국준 집의 붉은 모란은 임금님이 내려주신 것으로 임금님을 추억하는 매개물로 등장한다.

참고문헌

임춘, 「양국준 집에 하사하신 붉은 모란[梁國俊家鞓紅牧丹]」중 일부, 『서하선생집』, 권1, 고율시 61

뇌물

조선 효종 때에 정승 이시백(李時白)의 집에 아름다운 모란꽃 나무가 있었는데 마침 꽃이 활짝 피었다. 효종이 이 말을 듣고 중환(中宦)을 보내어 이를 구하시니 시백이 정색하여 말하였다.
“내가 비록 어질지 못하나 일국의 정승이 되어 임금님을 보필하는 책임을 졌으니 어찌 이목(耳目)의 완호(玩好)하는 물건으로 임금을 섬기리오”
그러고는 즉시 뜰 아래 내려가 모란을 베어 버리고나서 북향재배하고 아뢰었다.
“신이 정도로써 전하를 섬기지 못한 고로 오늘에 이르러 전하께옵서 신으로 하여금 바르지 아니함을 행하게 하시니 만일 이와 같을진대 장차 뇌물이 성하여 국가의 위태함이 조석에 있을지라. 신이 보필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는 죽어도 마땅하오나 이는 받들지 못하겠나이다.”
중환이 돌아와서 이러한 사실을 자세히 고하니 효종이 듣고 대단히 기뻐하고 그 후로 시백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국정에 힘썼다고 한다.
이시백이 기르던 모란은 중국에서 건너온 금사낙양홍(金絲洛陽紅)이라는 품종이라고 한다. 이름난 모란 품종을 왕까지 탐내자 이시백은 뇌물로 인해 임금을 보필하지 못할까 하여 모란을 베어버린다. 여기에서 모란은 뇌물인 동시에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방해하는 사물의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대동기문』

무후

이후근(李厚槿)이란 자가 “꿈에 모란꽃이 많이 피고 꽃잎이 몹시 큰데, 꽃 위에는 모두 허실(許實)이라는 두 글자가 씌어 있었는데 이것은 무슨 징조일까?”하고 물었다. 내가 이 꿈을 풀기를 “이는 허실이라는 자가 과거에 급제할 조짐이오 옛 시에 말하기를 ‘저 모란꽃 저렇게 큰 것 우습기도 하더니, 씨 하나도 맺지 못하고 부질없이 빈 가지일세’라고 했으니 다만 아들을 얻지 못할 것이 두려울 뿐이오”라고 하였다. 그런 지 얼마 후예 허실은 과거에 급제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일찍 죽고 없었다. 즉 모란은 부귀공명을 상징하여 과거에는 급제했으나, 씨를 맺지 못하였으니 후손이 없음을 뜻한다.
이수광의 해몽 설화는 선덕여왕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모란이 씨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보면 후사를 두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참고문헌

이광수, 『지봉유설(芝峯類說)』

불사이군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은 모란도(牧丹圖)를 보고 모란이 향기 없는 것을 알고서 이르기를, “절등하게 고와도 벌과 나비는 찾아오지 않겠다.” 했으나, 나는 경험해 보니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다만 꿀벌이 없는 것은, 꽃은 곱지만 냄새가 나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밀봉시(蜜蜂詩)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나라 위해 몸 바치니 참으로 지성이로구나
마음껏 임금님을 섬기려고 뭇 꽃송이에 사냥을 간다
곱게 핀 모란에는 왜 한 번도 아니 오느냐 하면
꽃 가운데 부귀란 이름 띤 걸 피함일레
물리학(物理學)에 박흡한 이로서는 상고해 봐야 할 것이다.
殉國忘身卽至誠
勞心事上獵羣英
牧丹叢裏何曾到
應避花中富貴名

이익은 모란꽃에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는 것은 꽃은 곱지만 냄새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한시 작품에서는 벌이 여왕벌을 섬기기 위해 부귀한 모란꽃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여왕벌과 모란꽃 사이에서 벌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성심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 것이다.

참고문헌

이익, 「모란무향(牧丹無香)」, 『성호사설』 제5권 만물문(萬物門)

사치

어느 날 차약송이 기홍수(奇洪壽)와 함께 중서성(中書省)으로 들어가서 공사를 끝낸 후 차약송이 기홍수에게 묻기를
“공작(孔雀)이 잘 있는가?”라고 하니 기홍수가 대답하기를
“생선을 먹이다가 가시가 목구멍에 걸리어 죽었다”라고 하였다. 이어 모란(牧丹) 기르는 방법을 물으니 이에 대하여 차약송이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문답을 들은 사람들은
“재상의 직위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도의를 논의하고 국가를 다스릴 데 대한 말을 할 일인데 화초나 새 기르는 이야기만을 주고 받으니 이래서야 어떻게 백관들의 지도적 모범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若松與奇洪壽 同入中書省上訖 若松問於洪壽曰 孔雀好在乎 答曰食魚嗛咽而死 因問養牧丹之術 若松具道之 聞者曰 宰相之職 在論道經邦 但論花鳥 何以儀表百寮
충숙왕 때 위왕의 객관에 나타난 상서로운 광채는 모란이 바로 왕의 성덕으로 인식되었음을 드러내는 자료이다. 충숙왕 때에는 왕이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여 본국으로 돌아올 때 원나라 천자가 진귀한 화초를 많이 주었는데 그 중에 황 · 백 · 적 · 홍색의 모란이 들어 있었다고 하므로 모란은 그때 이미 여러 가지 색깔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열전」 제14 차약송(車若松), 『고려사』 제101권

사치의 숭상

어느 날 차약송이 기홍수(奇洪壽)와 함께 중서성(中書省)으로 들어가서 공사를 끝낸 후 차약송이 기홍수에게 묻기를
“공작(孔雀)이 잘 있는가?”라고 하니 기홍수가 대답하기를
“생선을 먹이다가 가시가 목구멍에 걸리어 죽었다”라고 하였다. 이어 모란(牧丹) 기르는 방법을 물으니 이에 대하여 차약송이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문답을 들은 사람들은
“재상의 직위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도의를 논의하고 국가를 다스릴 데 대한 말을 할 일인데 화초나 새 기르는 이야기만을 주고 받으니 이래서야 어떻게 백관들의 지도적 모범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若松與奇洪壽 同入中書省上訖 若松問於洪壽曰 孔雀好在乎 答曰食魚嗛咽而死 因問養牧丹之術 若松具道之 聞者曰 宰相之職 在論道經邦 但論花鳥 何以儀表百寮
고려 중기 이무에는 궁중은 물론 권문세가들이 서로 다투어 진귀한 품종을 집안의 정원에 심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는데 그것이 너무 호화롭고 사치스럽다 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기홍수와 차약송이 어느날 관청에 앉아 모란 기르는 법을 논했는데 사람들이 호화사치를 숭상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모란으로 상징되는 부귀가 지나쳐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참고문헌

「차약송(車若松)」, 『고려사』, 제101권, 열전 제14

석녀

전왕 때 당나라에서 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덕만에게 보였더니 덕만이 말했다.
“이 꽃은 비록 매우 아름답지만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어찌 아느냐?”
그는 대답했다.
“꽃은 그렸는데도 나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여자에게 절세의 미모가 있으면 남자가 따르게 되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는 법입니다. 이 꽃이 매우 아름답지만 그림에 또한 벌과 나비가 없사오니, 이는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
씨를 심었는데 과연 말한 바와 같았다. 그가 앞질러 앎이 이와 같았다.
前王時 得自唐來牡丹花圖幷花子 以示德曼 德曼曰 此花□□□□無香氣 王笑曰 爾何以知之 對曰 花而無蝶 故知之 大抵女有國色□□□□□□□□□□□故也 此花絶艶 而圖又無蜂蝶 是必無香花 種植之 果如所言 其先識如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선덕여왕의 공주시절 일화가 전한다.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을 보고 선덕여왕이 “꽃은 비록 고우나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씨앗을 심어 본즉 과연 향기가 없었다. 이 이야기는 당태종이 그림을 보낸 의도를 선덕여왕이 알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향기 없는 모란꽃은 선덕여왕이 아름답지만 여성적인 매력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당태종은 선덕여왕을 후사를 두지 못하는 석녀로 폄하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선덕여왕이 세가지 일을 알다[善德王知幾三事]」, 『삼국유사』 권 제1 기이 제1

성덕

원 나라에서 위왕(魏王) 아목가(阿木哥)를 탐라(耽羅)에 귀양보냈다가, 곧 대청도(大靑島)로 옮겼다.
원 나라에서 사자를 보내 와서, 태자를 세운 조서를 반포하였다.
위왕(魏王)의 객관(客館) 뜰 벽돌에 해가 비치니, 서리[霜]가 윤기(潤氣)가 나서 광채가 찬란하였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아뢰기를, “위왕의 객관 뜰 안의 광채가 모두 모란꽃의 형상을 이루었으니, 어찌 하늘이 상서를 내리어 왕의 성덕을 표시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그 사람에게 후하게 상을 주고, 곧 화공에게 명하여 형상을 그리게 하였다.
충숙왕 때 위왕의 객관에 나타난 상서로운 광채는 모란이 바로 왕의 성덕으로 인식되었음을 드러내는 자료이다. 충숙왕 때에는 왕이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여 본국으로 돌아올 때 원나라 천자가 진귀한 화초를 많이 주었는데 그 중에 황 · 백 · 적 · 홍색의 모란이 들어 있었다고 하므로 모란은 그때 이미 여러 가지 색깔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충숙왕」4년 정월, 『고려사절요』

세상의 통치

미륵은 인간을 비롯하여 해 · 달 · 별 등의 만물을 창조한다. 그러나 뒤늦게 나타난 석가가 이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하여, 이 세상을 두고 몇 가지 내기를 벌인다. 석가가 계속 시합에 진 가운데 마지막으로 모란꽃 피우기 시합을 한다. 즉 모란꽃 씨를 심어 놓고 그 앞에 미륵과 석가가 누워 있다가 모란꽃이 먼저 피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였다. 그런데 모란꽃은 미륵의 것이 잘 피었으나 미륵이 잠든 사이에 석가가 이를 훔쳐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석가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
이 설화는 무속신화인 창세가에 실려 있다. 세상이 만들어진 내력을 무속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서 모란꽃은 세상을 지배하는 통치권을 상징한다. 이 신화에서는 모란꽃이 잘 낀 미륵에게 신격을 제시했으나 미륵은 그 모란꽃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통치권은 석가에게 돌아가게 되고 만다.

참고문헌

『창세가』

시부

사루(紗樓)에 나가 문신(文臣) 56명을 불러 초[燭]에 금을 그어 놓고 타기 전에 모란시를 짓게 하였는데, 첨사부 주부 안보린(安寶麟)이 일등이 되었다. 비단을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 이때 강일용(康日用)이 시 잘 짓기로 이름났는데, 왕이 서서 그의 짓는 것을 구경하였다. 초의 금이 다 되도록 겨우 한 연(聯)을 지었는데, “백발의 취한 늙은이 궁전 뒤에서 보고, 눈밝은 늙은 선비 난간 가에 의지하였다."고 하였다. 시 초고를 소매에 넣고 어구(御溝 궁중 안의 개울) 속에 엎드려 있었다. 왕이 내시를 명하여 초고를 가져다 보고 칭찬하여 마지않으며 이르기를, “이것이 옛사람의 이른바 '흰머리에 꽃비녀 가득해도 서시(西施)의 반쪽 얼굴 단장만 못하네.'라는 것이다,"고 하면서 위로하며 보냈다.

모란은 신라 진평왕 때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고려시대에 이르러 많이 재배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고려사절요』등에는 모란에 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현종 때에는 대궐 안 사루(紗樓) 앞에 손수 모란을 심었으며 예종은 이 사루에서 모란 시를 짓고 유신들에게 명령하여 화답시를 짓게 하였는데 그 이전 덕종으로부터 숙종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모란꽃을 옳고 신하들은 이에 화답하는 행사가 되풀이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문효대왕」 2, 『고려사절요』 제8권

시의 화답

사루(紗樓)에 나가 문신(文臣) 56명을 불러 초[燭]에 금을 그어 놓고 타기 전에 모란시를 짓게 하였는데, 첨사부 주부 안보린(安寶麟)이 일등이 되었다. 비단을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 이때 강일용(康日用)이 시 잘 짓기로 이름났는데, 왕이 서서 그의 짓는 것을 구경하였다. 초의 금이 다 되도록 겨우 한 연(聯)을 지었는데, “백발의 취한 늙은이 궁전 뒤에서 보고, 눈밝은 늙은 선비 난간 가에 의지하였다."고 하였다. 시 초고를 소매에 넣고 어구(御溝 궁중 안의 개울) 속에 엎드려 있었다. 왕이 내시를 명하여 초고를 가져다 보고 칭찬하여 마지않으며 이르기를, “이것이 옛사람의 이른바 '흰머리에 꽃비녀 가득해도 서시(西施)의 반쪽 얼굴 단장만 못하네.'라는 것이다,"고 하면서 위로하며 보냈다.
모란은 신라 진평왕 때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고려시대에 이르러 많이 재배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고려사절요』등에는 모란에 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현종 때에는 대궐 안 사루(紗樓) 앞에 손수 모란을 심었으며 예종은 이 사루에서 모란 시를 짓고 유신들에게 명령하여 화답시를 짓게 하였는데 그 이전 덕종으로부터 숙종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모란꽃을 옳고 신하들은 이에 화답하는 행사가 되풀이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예종 문효대왕 2(睿宗文孝大王二)」임인 17년(1122), 『고려사절요』

왕의 성덕

원나라에서 위왕(魏王) 아목가(阿木哥)를 탐라(耽羅)에 귀양 보냈다가, 곧 대청도(大靑島)로 옮겼다.
원나라에서 사자를 보내 와서, 태자를 세운 조서를 반포하였다.
위왕(魏王)의 객관(客館) 뜰 벽돌에 해가 비치니, 서리[霜]가 윤기(潤氣)가 나서 광채가 찬란하였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아뢰기를, “위왕의 객관 뜰 안의 광채가 모두 모란꽃의 형상을 이루었으니, 어찌 하늘이 상서를 내리어 왕의 성덕을 표시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그 사람에게 후하게 상을 주고, 곧 화공에게 명하여 형상을 그리게 하였다.
충숙왕 때 위왕의 객관에 나타난 상서로운 광채는 모란이 바로 왕의 성덕으로 인식되었음을 느러내는 자료이다. 충숙왕 때에는 왕이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여 본국으로 돌아올 때 원나라 천자가 진귀한 화초를 많이 주었는데 그 중에 황 · 백 · 적 · 홍색의 모란이 들어 있었다고 하므로 모란은 그때 이미 여러 가지 색깔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충숙왕 4년 정월」, 『고려사절요』

외간여자

담 안에 섰는 꽃이 모란인가 해당화인가
해뜩 발긋 피어 있어 남의 눈을 놀래인다
두어라 임자 있으랴 내 꽃 보듯 하리라.
담 안에 셧는 곳지 모란인가 海棠花가
득 발긋 퓌여 이셔 의 눈을 놀내인다
두어라 님자 이시랴 내  보듯 리라.
모란도 다른 꽃들처럼 아름다운 여인으로 의인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활짝 핀 모란꽃은 복스럽고 덕있는 여성으로 형상화된다.
신헌조는 임자 없는 꽃을 자기 꽃처럼 보겠다는 표현을 통해 외간 여인에 관심을 둔 남자들의 심리를 암시했다.

참고문헌

신헌조, 『청구영언』 육당본

천상의 존재

타향에 모란 피니 반갑다 다시 보자
사창전 옥계상의 사랑턴 네 아니냐
엇지타 꽃조차 때를 잃고 향기 적어.
타향의 모란 퓌니 반갑다 다시 보
챵젼 옥계샹의 랑턴 네 아니냐
엇지타 둇 를 일코 향긔 젹어

이세보는 천상에서 보았던 모란꽃을 타향에서 만났다는 표현을 통해 자신과 모란꽃이 천상의 존재였다고 했다. 모란꽃이 향기 없는 까닭을 좋은 때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하여 하늘에서 귀양 온 존재들이 처한 현실적 상황을 비유했다.

참고문헌

이세보, 『풍아(風雅)』 389

화왕계

좋은 봄날에 현란하게 핀 백화의 왕 모란이 수많은 꽃 위에 군림하자 천자만홍(千紫萬紅)의 꽃들이 다투어 화왕의 궁궐에 입조할 때 요염한 절세미인 장미가 아양을 떨며 화왕에게 말하기를 “첩이 일찍 왕의 염덕(念德)을 듣고 흠모하는 마음으로 찾아 왔으니 행여 버리지 않으시면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이때 또 포의한사(布衣寒士)로서 길가에 있던 할미꽃[백두옹]이 구부리고 와서 화왕에게 그 곁에 있으면서 일하기를 원하며 요염한 여자에게 현혹되지 말기를 간하였다. 그러나 화왕은 벌써 요염한 장미에게 빠져서 할미꽃의 충언을 알면서도 그것을 듣지 않았다. 그것을 본 할미꽃은 분연히 왕에게 아뢰기를 “신이 처음에는 왕이 총민함이 의리를 깨달으리라 믿었으나 가까이서 보니 그렇지 못하외다. 예로부터 임금이 요염한 여인을 가까이하게 되면 충직을 소원하게 하여 마침내 패망을 부르지 않은 적이 드뭅니다. 서시(西施) 같은 요희(妖姬)가 나라를 뒤집고 맹가(孟軻) 같은 현인이 뜻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인즉 신인들 어찌 하리까” 하고 왕에게서 떠나려 하자 왕도 그제서야 깨닫고 할미꽃에게 사과하였다.

신라 설총(薛聰)의 「화왕계」에서는 모란을 꽃들의 왕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신문왕은 이야기를 듣고 낯빛이 변하여 가로되 “뜻이 깊은 이야기로서 왕자의 경계(警戒)가 될 만하니 곧 글을 만들어 오라”고 하였다 한다.
모란이 꽃들의 왕을 상징하는 전통은 조선시대의 의인소설에서도 계승된다. 이이순(李頤淳)의 「화왕전(花王傳)」에서도 송대(宋代)의 「낙양모란기(洛陽牧丹記)」에서처럼 모란의 일종인 요황(姚黃)을 왕으로 추대하고 또 다른 종류의 위자(魏紫)를 왕후로 삼고 있다. 임제(林悌)의 <화사(花史)>에서는 모란은 매화 · 부용과 더불어 군왕으로 등장한다.

참고문헌

설총, 「화왕계」, 『삼국사기』 열전 권46

화중왕

모란은 화중왕이요 향일화는 충신이로다
연화는 군자요 행화 소인이라 국화 은일사요 한사로다 박꽃은 노인이요 석죽화는 소년이라 규화 무당이요 해당화는 창기로다
이 중에 이화 시객이요 홍도 벽도 삼색도 풍류랑인가 노라.
牧丹은 花中王이요 向日花 忠臣이로다
蓮花 君子ㅣ오 杏花 小人이라 菊花 隱逸士요 寒士로다 박곳츤 老人이요 石竹花 少年이라 葵花 巫黨이요 海棠花 娼妓로다
이 듕에 梨花 詩客이요 紅桃 碧桃 三色桃 風流郞인가 노라.
김수장의 시조에서는 온갖 꽃들을 다양한 인간형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해바라기(향일화)의 보필을 받는 것으로 형상화 되었다.

참고문헌

김수장, 『해동가요』 주씨본 528

희망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슬픔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 시는 김영랑의 작품으로 널리 애송되고 있는 대표적인 시 중의 하나이다. 시인은 모란이 피자 생의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모란이 핀 지 얼마 아니 되어 시들어 버렸을 때 봄을 여윈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는 삼백 예순 날을 섭섭해 우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안타깝게 기다리고 그렇게 덧없이 지는 것을 서러워하면서도 또 다시 오는 봄에 그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란은 희망이며 기다림의 대상이다.

참고문헌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생태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다. 모란이라는 이름은 종자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수컷의 모습이므로 모(牡)자를 붙였고, 꽃색이 붉기 때문에 란[丹]이라 힌 데에서 유래한다. 나무의 높이는 2m 정도이며 가지가 굵고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고 두세 개로 갈라지기도 하고 표면에는 털이 없다. 꽃은 5월에 피고 지름은 15㎝ 이상이고, 홍자색이지만 백색·홍색·담홍색·주홍색·농홍색·자색 및 황색이 있다. 꽃잎은 5∼7개인데 많은 꽃잎이 달리는 품종이 개발되어 있다. 꽃은 2∼3일 동안 피지지만 꽃잎이 많은 종류는 7∼10일간 피기도 한다.

모란은 화려한 색채와 풍성한 모습 때문에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 문학적 전통으로는 꽃 중의 왕으로, 인간 중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상징되며, 무속신화에서는 세상의 통치권을 의미한다.

꽃 생태정보

식물명 : 모란(목단)
과명 : 미나리아재빗과
학명 : Paeonia suffruticosa
종류 : 목본(나무)
이명 : 목단피
꽃색 : 붉은색, 흰색, 홍자색
계절 : 봄
분포 지리 : 중국 원산(약용, 귀화식물), 전국 각지
분포 지형 : 약초농가 재배
생육상 : 낙엽관목(잎이 지는 떨기나무)
높이 : 1~1.5m
개화기 : 5월 ~ 6월
결실기 : 8~9월
열매의 형태 : 골돌(쪽꼬투리열매)
용도 : 관상용, 약용(뿌리줄기)
기타 : 유독성식물
사진제공자 : 김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