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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

소박한 미인

초가 지붕 마루에
흰옷 입은 아가씨
부드럽고 수줍어
황혼 속에 웃나니
달빛 아래 흐느끼는
배꽃보다도
가시 속에 해죽이는
장미 보다도
산골짝에 숨어 피는
백합 보다도
부드럽고 수줍어
소리 없이 웃나니
초가집의 황혼을
자늑자늑 씹으며
하나 둘씩 반짝이는
별만 보고 웃나니

참고문헌

이희승, 「박꽃」

순백의 정결

박꽃은 이른 아침, 샘터에서 물을 길어온 여인네가 장독대에 단정히 꿇어앉아 상 위에 하얀 백자대접을 받쳐놓고 지성으로 기구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박꽃의 희디흰 빛깔은 고독 속에 홀로 간직한 청순미와 함께 무섬증이 들도록 섬짓하면서도 마음을 끄는 가련미를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꽃이 화사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 같은 데 반해 박꽃만은 그런 느낌과는 달리 눈물과 비애미를 간직하고 있다. 남들이 모두 잠든 밤에 피어 있는 박꽃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머니나 누이를 생각하게 된다.
박꽃은 우리 겨레 마음의 텃밭에서 덩굴을 뻗어나가 가을들판에서 피어나고 있다. 박꽃의 순수 비애미를 함축한 강렬한 인상은 민족 정서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보라. 박꽃이 안으로 안으로 다스려온 그리움이 마침내 영글면 박이 열린다. 농가 울타리와 산비탈에 그리고 밭두렁에 주렁주렁 열리는 박은 가을의 풍요로움과 흥취를 돋워준다. 우리나라 산등성이의 곡선과 잘 어울리는 초가지붕의 곡선. 모나지 않고 보름달 같은 초가지붕 위에 하이얀 박덩이가 얹히고 빨간 고추가 널려 청명한 하늘과 대조를 이루는 풍경…. 이는 그리운 옛 농촌의 가을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농부는 가을에 박을 따 바가지를 만든다. 바가지는 우리 민족이 수천 년 동안 대대로 사용해 온 생활 용구, 소박하고 은근한 정감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우리 겨레에게 바가지처럼 다양하게 쓰여진 용구도 없을 듯하다. 물과 곡식을 퍼내고 담는 그릇으로 제격이었을 뿐만 아니라 탈을 만들어 생활의 흥취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렇든 우리 겨레의 마음에 소중한 모습으로 또한 정겨운 가을서정으로 자리잡고 있는 박꽃같은 여인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정목일, 「박꽃」 중에서

꽃 생태정보

식물명 : 박
과명 : 박과
학명 : Lagenaria leucantha
종류 : 초본(풀)
이명 : 포, 포과, 쓴박, 고주박, 참조롱박
꽃색 : 흰색
계절 : 여름
분포 지리 : 아프리카 또는 열대아시아 원산(귀화식물)
분포 지형 : 농가에서 재배
생육상 : 1년생초본(한해살이 덩굴풀)
높이 : 길이 10~15m
개화기 : 7월 ~ 9월
결실기 : 9~10월
열매의 형태 : 장과(물열매) 과육과 액즙이 많고 속에 씨가 들어 있는 과실
용도 : 관상용, 식용
기타 : 농가에서 심으며 지붕 위로 벋어올라 꽃이 핀다.
사진제공자 : 김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