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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

고향의 추억

뜰에 가득한 꽃나무는 비단겹 펼친 듯
꽃들마다 붉은 망울 차례로 터뜨리네
서울에선 보기 드문 너의 고운 모습
남쪽 지방의 추억 자꾸만 떠오르네
滿樹如堆錦
繁英次第紅
京華稀見汝
偏憶在南中
장유는 뜰에 가득한 백일홍이 한꺼번에 많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을 묘사한다. 화자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모습을 보며 과거에 남쪽 지방에서의 추억을 떠올린다.

참고문헌

장유, 「백일홍운(百日紅韻)」, 『계곡선생집』 제33권 오언 절구(五言絶句) 42수(首)

관상수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산실인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식영정․ 명옥헌, 그리고 경주의 서출지 등과 같은 원림에서 백일홍을 볼 수 있다. 또한 전남 강진의 백련사, 전북 고창의 선운사 등의 산사에서도 잘 자란 백일홍 나무를 볼 수 있다.
잘 자란 백일홍나무는 대체로 옛 선비들이 지은 아름다운 정자 주변이나 혹은 깊은 산속 산사의 앞마당에서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우리 선조들이 그 꽃을 아껴왔기에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이름난 정자나 옛 원림에는 어김없이 백일홍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한편 백일홍은 우리나라에서 석류문․ 난초문 등과 함께 식물문양으로서 많이 사용되었다. 백일홍문양은 잎이 무성한 꽃으로 표현되어 있다. 백일홍의 꽃무늬는 조선시대 민화의 소재로도 흔히 그려져 병풍 등에 쓰였고, 선비들은 가구나 청화 백자에 소담하게 그려진 백일홍의 수수한 멋을 좋아하였다.

참고문헌

고규홍, 『이 땅의 큰 나무』, 눌와, 2003

기다림

옛날 어떤 어촌에서 목이 셋이나 되는 이무기에게 해마다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어느 해에도 한 처녀의 차례가 되어 모두 슬픔에 빠져 있는데, 어디선가 용사가 나타나 자신이 이무기를 처치하겠다고 자원하였다. 처녀로 가장하여 기다리던 용사는 이무기가 나타나자 달려들어 칼로 쳤으나 이무기는 목 하나만 잘린 채 도망갔다.
보은의 뜻으로 혼인을 청하는 처녀에게 용사는 지금 자신은 전쟁터에 나가는 길이니 100일만 기다리면 돌아오겠다 약속하고, 만약 흰 깃발을 단 배로 돌아오면 승리하여 생환하는 것이요, 붉은 깃발을 단 배로 돌아오면 패배하여 주검으로 돌아오는 줄 알라고 이르고 떠나갔다.
그 뒤 처녀는 100일이 되기를 기다리며 높은 산에 올라 수평선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수평선 위에 용사가 탄 배가 나타나 다가왔으나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처녀는 절망한 나머지 자결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은 용사가 다시 이무기와 싸워 그 피가 흰 깃발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다. 그 뒤 처녀의 무덤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는데, 백일기도를 하던 처녀의 넋이 꽃으로 피어났다 하여 백일홍이라 불렀다 한다.

백일홍설화(百日紅說話)는 처녀의 넋이 백일홍으로 피어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신을 구해주고 전쟁터에 나간 용사를 백일 동안 기다리던 처녀는 이무기의 피에 물든 깃발을 보고는 용사가 패배한 것으로 오인하여 자결했다. 여기에서 백일홍은 약속한 용사를 기다리던 처녀의 넋을 상징한다.

참고문헌

구점선 구연, 김승찬, 한 채영 채록, 「백일홍 전설」, 『한국구비문학대계』 8집 9책

누적성

마루 앞에 한 그루 백일홍이 피었는데
쓸쓸할사 그윽한 빛 시골집과 흡사하다
번갈아서 피고 지며 백일을 끌어가는데
백 가닥의 가지마다 또 백 가지 뻗었네
堂前一樹紫薇花
寂寞幽光似野家
半悴半榮延百日
百條仍有百杈枒
장유의 작품은 백일이라는 기간이 지속성에서 누적성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꽃이 오랫동안 계속 핀다는 것은 결국 많아진다는 속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꽃만이 아니라 굵고 가는 가지까지 많아진다는 발상을 통해 결국 백일홍이 풍성한 꽃임을 암시한다.

참고문헌

장유, 「역참의 누각 앞에 식물 네 종류가 있으므로 장난삼아 절구를 짓다[驛樓前有植物四種 戲爲絶句]」, 『다산시문집』 제2권 시(詩)

명당

정문도 전설에 따르면 처음 묘를 썼을 때 매일 밤 도깨비들이 나타나 파헤쳤다. 숨어서 살펴보았더니 도깨비들이 ‘임금님의 황금 관이나 묻을 장소’라고 수근대는 것이었다. 이에 보릿짚으로 관을 둘러 싸 황금관으로 위장하여 어리숙한 도깨비 눈을 속이고 나서야 겨우 묘를 쓸 수 있었다. 이후 동래 정씨 가문에는 출세한 후손들이 많아 명당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일홍나무는 부산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168호로 지정된 부산진구 양정동 화지공원의 백일홍 나무는 고려 중기에 안일호장을 지낸 동래 정씨의 시조 정문도공(鄭文道公)의 묘 앞 양쪽에 서 있다. 나이는 800살 정도로 추정된다. 정문도의 묘소가 있는 화지공원 묘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당자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정문도는 동래정씨의 2대조이나 시조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바로 그 묘 양옆에 서있는 백일홍나무는 후손들의 부귀와 영화를 기원하는 바람이 그대로 드러난 나무이다.

참고문헌

고규홍, 『이 땅의 큰 나무』, 눌와, 2003

사간원

일 천 가지에 옥롱송을 조각해 놓은 듯
동쪽 서쪽의 누각에 붉게 만발하였네
그 옛날 조서 초하고 꽃 아래서 취할 적엔
고요한 지관에 또 가을 바람이 불었었지
千枝刻作玉瓏鬆
東閤西樓爛熳紅
憶昔草綸花下醉
寂寥池館又秋風
조선시대에는 중서성이 사간원으로 바뀌어 자미화는 사간원을 비유하게 되었다.
김종직의 작품은 자미화를 통해 사간원에서 근무했던 당시를 회상하는 것이다. 조서를 기초하고 자미화 아래에서 취했었다는 표현은 자미화가 사간원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독자가 알았을 때에야 비로소 구체적인 의미로 드러나게 된다.

참고문헌

김종직, 「자미화를 읊다[詠紫薇花]」, 『점필재집』 시집 제9권 [시(詩)]

생육방법

우리나라 영남(嶺南) 지방 해안 근처 여러 고을[郡]에서 이 꽃을 많이 심는데, 비단처럼 아름답고 이슬꽃처럼 곱게 온 마당을 비춰주어 그 어느 것보다도 유려(流麗)하다. 그러나 영북(嶺北) 지방에서는 기온이 너무 차가워 얼어 죽는 것이 십중팔구이고, 다행히 호사가(好事家)의 보살핌을 받아도 겨우 죽는 것만을 면하는 것이 열 나무 중에 한둘에 불과하다. 이슬비가 올 때 가지를 잘라 꽂아 그늘진 곳에 두어 두면 곧 산다. 새 가지는 해장죽[海竹] 등으로 붙잡아 매어 주고 백양류 꼴로 수형(樹形)을 가다듬으면 아름답다. 갈무리할 때는 너무 덥게 하지 말고 마르지 않게 물을 주어야 한다.

잘 자란 백일홍나무는 대체로 옛 선비들이 지은 아름다운 정자 주변이나 혹은 깊은 산속 산사의 앞마당에서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우리 선조들이 그 꽃을 아껴왔기에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이름난 정자나 옛 원림에는 어김없이 백일홍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한편 백일홍은 우리나라에서 석류문․ 난초문 등과 함께 식물문양으로서 많이 사용되었다. 백일홍문양은 잎이 무성한 꽃으로 표현되어 있다. 백일홍의 꽃무늬는 조선시대 민화의 소재로도 흔히 그려져 병풍 등에 쓰였고, 선비들은 가구나 청화 백자에 소담하게 그려진 백일홍의 수수한 멋을 좋아하였다.

참고문헌

강희안 , 『양화소록』

수줍은 여인

푸른 치마 붉은 소매로 아리따움 견주는데
한 떨기 짙은 꽃이 이슬 젖어 선명하네
풍류 독차지해 여름꽃들 압도하고
얼굴빛은 봄꽃들도 견주지 못하리
간지럼 시키면 신선의 손톱인지 돌아보고
교령을 풀어도 웃음을 참고 잔치에 끼지 않네
누가 고심해서 별호를 붙였는지 제목도 오묘한데
미원초가 젊은 시절 떠올리네
碧裙紅袖競嫣然
一種濃華浥露鮮
獨占風流當夏艶
不將顏色競春姸
怕痒還擬爬仙爪
忍笑休敎狎禁筵
別號誰煩題品妙
薇垣草詔憶芳年

백일홍이 긁으면 흔들린다는 것을 문인들은 백일홍이 간지럼이나 부끄러움을 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꽃이 여성을 비유한다는 관념과 결합할 때 백일홍이 부끄러움을 타는 여인으로 표현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연상작용이다.
김일손의 작품에서 백일홍은 여름꽃과 봄꽃을 막론하여 미모를 견줄 수 없는 여성으로 형상화된다. 간지럼을 시키면 부끄러운 모습으로 전혀 친압하지 않는 자세를 지닌 여인이다. 여기에서 미원초란 단순히 담장가에 핀 풀이라는 뜻도 되지만 조선시대에 미원(薇垣)이 사간원(司諫院)의 별칭을 뜻했다는 점에서 백일홍의 또 다른 명칭으로 보아야 한다.

참고문헌

김일손, 「임금님의 운에 따라 읊은 사십팔영[四十八詠賡韻應製]」, 『탁영선생문집속(濯纓先生文集續)』 상(上) 시 칠언율시

유한성

온갖 초목들 모두 아름다운 꽃이 있지만
한 달 가는 꽃 없다는데
너 홀로 백 일 동안 붉어
나를 위해 봄빛을 남겨주누나
衆卉莫不花
花無保全月
爾獨紅百日
爲我留春色
한편 장현광의 작품에서 백일홍이 지닌 지속성은 그렇지 못한 인간의 유한성과 대비되는 의미를 지닌다. 화자는 백일홍이 백일동안 붉게 피는 것은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 봄빛을 남겨주려는 의도 때문으로 보았다.

참고문헌

장현광, 「백일홍(百日紅)」, 『여헌선생속집』 제1권 시(詩)

젊은날의 추억

사계절 같은 것은 푸르고 푸른 소나무잎이요
백일 내내 붉게 피는 것은 선경의 꽃이구나
새 꽃과 늙은 꽃이 서로 이어 한 색깔이 되니
조물의 묘한 그 생각은 끝까지 알기 어렵구나
서리와 눈 겪으면서 내 마음 더욱 고달픈데
여름부터 가을까지 꽃 모습 여전히 농염해라
만물은 원래 다른 법 같게 될 수가 있겠는가
흰머리 늙은이 너를 대하며 거듭 탄식하노라
靑靑松葉四時同
又見仙葩百日紅
新故相承成一色
天公巧思儘難窮
經霜與雪心逾苦
自夏徂秋態自濃
物自不齊齊者少
對花三歎白頭翁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피는 백일홍을 보고 종종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인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그것과 대비되는 백일홍의 지속성을 당연히 부러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색은 백일홍이 새로 핀 꽃과 늙은 꽃이 같은 색인 것을 보고 그렇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본다. 자신은 서리와 눈을 겪으며 흰 머리의 늙은이가 되었는데 이 꽃은 백일 내내 붉기 때문이다. 백일홍이 지나간 젊은 날을 추억하게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이색, 「백일홍(百日紅)을 노래하다」, 『목은시고』 제34권 시(詩)

중서성

글 읽을 수 있는 사람 옛날에도 적었는데
그대는 재주 많고 문장도 화려하구려
장대한 마음은 준마가 천리를 생각하는 듯
큰 주량은 고래가 바닷물을 마시듯 하네
그 옛날 우리 함께 중서성에 출사할 적에
퇴청한 뒤엔 서로 자미화를 읊조렸었네
유유히 눈에 스쳐간 오 년의 일들을 보면
비 구름 엎고 뒤집음만 날로 심해져갔네
能讀書人古不多
多君才調富文華
壯心逸驥思千里
偉量長鯨吸百波
憶昔同趨靑瑣闥
退朝相詠紫薇花
悠悠過眼五年事
雨覆雲翻漸日蹉
백일홍은 자미화(紫薇花)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당(唐)나라의 백거이(白居易)가 지었던 「자미화시」에서 연유한다. 백거이는 중서 사인(中書舍人)으로 있을 때 “황혼에 홀로 앉았으니 누가 내 벗이 될꼬, 자미화만이 자미랑과 서로 마주하였네.[獨坐黃昏誰是伴 紫薇花對紫薇郞]”라는 시를 썼는데, 여기에서 당나라 때 자미화를 중서성(中書省)에 많이 심어서 중서성을 자미성(紫薇省)으로, 중서 사인을 자미랑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서거정, 「세 번째 화답하다」, 『사가시집』 제8권 시류(詩類)

지속성

후원에다 진중히 백일홍을 심어 가꾸어
무수한 꽃들이 자유자재로 활짝 피었네
나비는 수시로 향기를 마시고 떠나는데
난새는 어느 날 밤에 씨를 물고 왔던고
빨간 빛깔은 백 일을 내내 지탱하거니와
갈고는 두세 가지를 자꾸만 재촉하누나
거센 바람에 당부하노니 열심히 보호하여
이끼 사이에 거꾸러져 떨어지게 말지어다
後園珍重爲栽培
無數繁英自在開
粉蝶有時香啑去
靑鸞何夕子銜來
猩紅百日垂垂盡
羯鼓三枝故故催
說與狂風勤護惜
休敎顚倒落莓苔
백일홍은 다른 꽃들과 달리 오랫동안 피는 지속성을 특징으로 한다.
서거정의 작품에서 백일홍은 백일 동안 아름다움을 지탱하는 소중한 존재로 나타난다. 화자는 백일홍의 지속성이 전설상의 갈고가 계속 피워내는 것으로 보고 바람도 이를 막지 말았으면 한다.

참고문헌

서거정, 「영물(詠物)」 43수 중 백일홍(百日紅), 『사가시집』 제4권 시류(詩類)

파양화

자미화에 대해서 격물론에 말하기를, “자미의 속명은 파양화인데. 대개 손톱으로 나무껍질을 긁으면 큰 나무의 가지와 잎이 모두 흔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줄기가 빛나고 매끄러우며 높이가 한길이 넘고 꽃은 붉은 주름이 있는 밀랍빛이며 붉은 꽃잎이 무성하게 피고 가지와 잎이 마주난다. 4 5월에 꽃이 피어 계속 이어서 6 7월까지 피므로 속칭 백일홍이라고 한다”고 했다.
紫薇花 格物論曰 紫薇 俗名怕痒花 葢以爪括皮 則大樹枝葉俱動故也 又曰 樹身光滑 高丈餘 花瓣紫皺蠟 跗茸萼赤 莖葉對生 四五月始花 開謝接續 可至六七月 俗稱百日紅 亦由此也

백일홍은 또한 파양화(怕痒花)라고도 했다.
옛 사람들은 백일홍나무가 마치 동물처럼 외부의 자극에 반응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긁으면 흔들린다”는 뜻으로 파양화라고 불렀다. 이만부는 격물론을 인용하여 백일홍의 생태를 자세히 관찰하고 속명인 파양화의 유래를 설명했다.

참고문헌

이만부, 「노곡초목지(魯谷草木誌)」, 『식산선생별집』 권1 누항록(陋巷錄)

생태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소교목이다. 개화기가 길어서 백일홍이라고 하는데 소리가 변하여 배롱나무라고 한다. 국화과 초본식물에도 있으므로 구별하기 위하여 목백일홍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중국 원산으로 높이는 8m 내외이다.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윤기가 있고 털이 없다. 꽃은 7∼9월에 피고 홍색 또는 백색이며 양성으로서 원추화서에 달린다. 꽃받침은 6개로 갈라지고 꽃잎도 6개로서 주름이 많다. 수술은 30∼40개이지만 가장자리의 6개가 가장 길고 1개의 암술은 길게 밖으로 나왔다.

백일홍의 한자명인 자미화는 당나라 때 중서성에 많이 심은 데에서 유래하어 우리나라에서도 중서성 또는 조선시대의 사간원을 상징했다. 나무껍질을 긁으면 흔들린다는 속설 때문에 파양수라고도 하는데 문학적으로는 부끄러운 여인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꽃이 피므로 시간의 지속성과 기다림을 상징한다.

꽃 생태정보

식물명 : 백일홍
과명 : 국화과
학명 : Zinnia elegans
종류 : 초본(풀)
이명 : 백일초
꽃색 : 붉은색, 흰색, 황색
계절 : 여름
분포 지리 : 벡시코 원산의 원예품종, 전국
분포 지형 : 관상용으로 심는다.
생육상 : 1년생초본(한해살이풀)
높이 : 60~90cm
개화기 : 6월 ~ 10월
결실기 : 8~11월
열매의 형태 : 수과(여윈열매)
용도 : 관상용
기타 :
사진제공자 : 김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