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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기우의 주물

농경에 특히 필요한 비가 봄과 여름에 내릴 때에는 먼저 바람이 부는 경우가 많다. 바람이 부는 전조에는 큰 나무의 가지와 잎이 흔들린다. 여기에서 바람에 가장 잘 흔들리는 성질을 가진 버들이 기우(祈雨)의 주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 버들가지가 봄을 상징하며 만물의 생기를 뜻하는데서 전의(轉意)되어 물을 뜻하게 됨으로써 기우제 때 사용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지관(地官)이 우물 팔 자리를 찾을 때 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하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밖에 버들가지가 불교에서 대자대비를 상징함으로써 중생의 소망을 들어주는 상징물로 여겼기 때문에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리 풍속에서 버들가지는 기우제에 사용되는 주술적인 물건(주물)의 의미를 지닌다. 버들가지가 봄을 상징하며 바람과 물에 관계가 깊은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이상희, 「버드나무」,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제3권

눈꽃

시내 다리 저녁 바람에 서 있던 그 옛날엔
매화꽃이 수없이 찬 공중을 비추었는데
깊은 봄에 문득 버들꽃을 만들어 보이니
물태는 때에 따라 절로 이동이 있음일세
憶昔溪橋立晚風
梅花無數暎寒空
春深却作楊花看
物態隨時自異同
봄에 날리는 버들꽃은 눈이 오는 모습으로 비유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색의 작품은 청명일에 내리는 눈을 읊은 것이지만, 실제의 눈이 아닌 버들꽃을 묘사한 것이다. 버들꽃을 보면서 화자는 봄에 내리는 아름다운 눈에 감탄한다.

참고문헌

이색, 「청명(淸明)에 눈이 오므로 백부(伯父)의 운을 차하다」, 『목은시고』 제2권 시(詩)

능수버들

천안 삼거리 버드나무가 왜 생겼느냐?
내 들은 대로 한마디 하겠는데 다른게 아니고 서울 참 부자집 벼슬한 사람이 사는데 동생은 나이가 스무해고 아들은 스물 두살이 됐다 이거여. 그런데 장가를 삼촌보다 에 조카를 먼저 장가를 들이게 되가지고선 저이끼리 자기네끼리 에,
“삼촌이 먼저 장가를 가시오.”
“아니다. 너를 먼저 보낼라고 하니까 니가 먼저 가라.”
서로 이렇게 말을 하는 중 한 날은 인제 예 선을 보러 왔는데 선은 조카가 보였지.
그래가지구 인제 장가를 들러 갔는데 후객(後客)을 삼촌이 따라가게 됐어. 총각이. 그래 인제 따라가 가지고선 서로 오근자근.
“니가 먼저 가거라.”뭐.
“삼촌이 먼저 장가를 드시오.”
이렇게 하다가 결국은 삼촌이 행례(行禮)를 했다 이거여.
삼촌이 행례를 하고서 오던 길에 천안 와서 날이 저물어 가지고 자게됐어.
천안 와서 자다가 이 신부가 인자 소변이 마렵게 되어서 소변을 보고서 들어간다는 것이 딴 방으로 들어갔다 이거여.
딴 방에 들어가 가지구선 잤는데 그 딴 방에 있는 남자는 누구냐? 에 그건 객(客)이란 말여.
그건 말하자면 지금으로 말하면 운전수 운전수가 잤다 이거여,
여자가 들어와 곁에 들어누워 가지고 남자로서 자다 보니까 참 정(情)이 통해서 첫날 밤은 그 운전수가 이제 첫날밤은 치루고, 그래서 이선은 조카가 보고 행례는 아제비가 하고, 첫날밤은 엉뚱한 말하자면 운전수가 이제 첫날밤을 치루게 됐어.
그래 가지고 이 신랑은,
“들어오겠지 들어오겠지.”하고 있다가 날이 샌 정도로 되어 가지고는 잠은 깨어 가지구 떠들고 보니까 엉뚱한 방에서 자게 됐단 말여.
그래가지고, 서이(셋이), 삼인(三人)이 모여 가지고서 어 이건 참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우떡 하겠느냐?”하니까, 운전수의 여동생이 마침 과년(過年)한 동생이 있어 가지고, 그 행례를 한 이제 아제를 주게 되고 또 신부의 동생이 아주 참 친한 친구가 있어 가지구 조카를 인제 장가를 들이구, 그래서 그날 천안서 장가를 서이 드리게 되었지. 그래 가지고서, “야! 우리가 참 만고에 없는 일이 참 새삼스럽게 났으니까 우리 뭐 표를 하나 하자.” 이렇게 약속을 하고서 에 버드나무를 꺾어 가지고 바로 안 심고 가꾸로 심어서 약속을 했소. 그래 뭐라고 약속을 했느냐 하면, “이게 전부 역순(逆順)이 됐으니까 우리 버드나무를 까꾸로 심고 가되 너는 동쪽으로 가고 난 서쪽으로 가고 또 하나는 남쪽으로 가되, 삼년 있다가 우리 다시 여기서 만나보자.” 이렇게 약속을 하고 가서 삼년 후에 오니까 서이(셋이) 다 만나 가지고서 보니까 이 버드나무가 까꾸로 심은 버드나무가 그때서부터 능수버들이 되어 가지고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이란 것이 노래에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나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설(傳說)에 전한다구.

참고문헌

구연자 한기문, 채록자 김영진, 『한국구비문학대계』 3집 1책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이 현신(現身)할 때에는 33종으로 나타나는데 그 중의 제1위가 양류관음(楊柳觀音)으로 보통은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쥐고 왼손은 왼쪽 가슴에 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또 좌우(座右)의 화병에 버들가지를 꽂고 물가의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버들가지가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를 상징한다. 여기에서 버들가지는 실바람에도 나부끼듯이 미천한 중생의 어떠한 소망에도 유연하게 응해서 중병(衆病)을 제거해 주는 자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버들가지는 원래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움직여 그 소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버들가지는 관세음보살의 정병 속에 들어 있는 불사의 감로수(甘露水)를 고통받는 중생에게 뿌리는 데도 사용된다. 즉 세상을 구하고자하는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사바세계에 널리 퍼지게 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가에 자생하며 뭇 식물보다 먼저 눈을 틔움으로써 “물과 생명”을 상징하게 된 버들가지에 불교의 진리를 펴는 역할을 대입하여 표출한 것이다. 고려청자의 상감무의와 철화무의에서는 흔히 버드나무가 등장한다. 이는 자비의 상징으로서 불교의 교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이상희, 「버드나무」,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제3권

몽롱한 시름

예쁜 담장 서녘에 석양이 붉어 있고
버들꽃 어지러이 말 머리를 치는구나
꿈속에 그 번화는 시름 속에 지나가곤
일 년 봄철은 개나리꽃 바람 이네
粉墻西面夕陽紅
飛絮紛紛撲馬鬃
夢裏韶華愁裏過
一年春事棟花風
눈처럼 화려한 버들꽃도 석양이 되면 빛을 잃고 만다. 신종호의 작품에서 석양의 버들꽃은 어지럽게 날리는 존재로 표현되었다. 버들꽃의 어지러움은 화자에게는 꿈속의 몽롱한 시름을 자아내게 한다..

참고문헌

신종호, 「상춘(傷春)」 2수 중 제2수, 『속동문선』 제10권 칠언절구(七言絶句)

미인

버들가지는 춤추는 허리처럼 가늘다 말하고
또 푸른 버들잎은 긴 눈썹을 닮았다고 이르네
거기다 만약 한번 방긋 웃어준다면
남의 애를 끊는다는 말 이해하리라
皆言舞腰細
復道翠眉長
若敎能一笑
應解斷人腸
잘 휘어지는 부드러운 속성의 버드나무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종종 비유되었다.
정도전은 버들가지를 여인의 가는 허리로, 버들잎을 긴 눈썹으로 비유했다. 버들의 모습을 육감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의인화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정도전, 「버들을 읊다[詠柳]」, 『삼봉집』 제1권 오언절구(五言絶句)

벽사

여름철에 학질에 걸렸을 경우 환자의 나이 수대로 버들잎을 따서 편지봉투에 넣은 다음 겉봉에 ‘유생원댁 입(柳生員宅入納)’이라고 써서 이것을 길에 버려둔다. 길을 가던 사람이 그 봉투를 줍거나 밟게 되면 그 사람이 학질을 가져가 대신에 앓게 되어 환자는 병이 낫는다는 것이다. 또 아침 일찍 버드나무고목에 가서 그 가지로 매듭을 3개 묶어서 만들어 놓고 주문을 외면 학질이 낫는다고도 믿었다.
중국 사람들도 버드나무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음을 느끼고 벽사의 힘을 인정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서(農書)라고 할 수 있는 5세기경에 나온 『제민요술』에서는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버드나무가지를 꺾어 문간에 달아두면 백 가지 잡귀신이 들어오지 못한다”라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월의 버드나무를 꺾어 문 위에 걸어 놓으면 사악한 귀신을 물리칠 수 있다는 설이 있었다.

버드나무는 예부터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력을 지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버드나무가 벽사력을 가진 이유는 첫째로 버드나무의 한자인 유(柳)는 목(木)과 묘(卯)를 합한 글자로서 묘(卯)는 동방(東方)이며 동방은 곧 춘양(春陽)을 의미하기 때문에 음(陰)을 굴복시키고 백귀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버드나무의 잎의 모양이 날카롭고 뾰족하기 때문에 귀신은 이것이 무서워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버들잎 모양으로 만들어진 화살촉을 유엽전(柳葉箭)이라고 하는 것도 그 잎 모양의 날카로움에서 나온 것이다. 셋째는 버드나무는 그 가지를 거꾸로 꽂아 놓아도 살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여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참고문헌

이상희, 「버드나무」,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제3권

별리

버들을 꺾어서 길 떠나는 이에게 주는 것은 옛날의 공통된 상례이나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내 뜻으로 억측해보면, 길 떠나는 이에게는 반드시 선물이 있어야 하는데. 가난한 선비는 재물만을 폐(幣)로 삼지 않아도 되는 것이므로 청교(靑橋)의 버들가지는 어디나 있는 것이라 꺾어서 그로써 전승함은 그 충정을 표시하자는 때문이다. 이는 재물을 들이지 아니하면서 그 정성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니, 그 뜻이 또 간절하다 하겠다.

버드나무는 이별할 때에 주는 정표를 상징한다.
옛 사람들이 이별할 때의 정표로 버들을 꺾어주었던 풍습에 대해 조선 후기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는 그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은 재물을 들이지 않고서도 정성을 표할 수 있는 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절류(折柳) 풍습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미 한대(漢代)부터 정인(情人)과 이별을 나눌 때 버들가지를 꺾어서 상대방에게 주는 습속이 있었는데 특히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장안(長安) 교외에 있는 파교(灞橋)의 다리목에는 보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이별을 아쉬워하는 석별의 명소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이익, 「행인에게 버드나무를 꺾어주는 것[折柳贈行]」, 『성호사설』 제9권 인사문(人事門)

봄의 아쉬움

다락에 올라 배회하니 떨어지는 붉은 햇빛
물가의 풀들 다시금 시름을 자아내네
버들꽃 다 졌으니 꾀꼬리 어디에 몸 부치랴
지루한 장마철 나그네 발길 잡아 두네
술로도 이별의 한 달랠 길 없어
글 끄적여 자꾸만 전하는 슬픈 마음
막다른 길 그저 함께 숨어 사는 게 좋을지니
인간 세상 이두의 이름 얻어서 뭐 하겠소
徙倚樓頭落日明
不堪江草喚愁生
楊花落盡鸎無賴
梅雨來時客未行
綠酒難澆岐路恨
素書頻寄別離情
窮途正好同埋照
浪得人間李杜名
장유는 버들꽃으로 상징되는 봄이 지나가자 그 아쉬움을 노래했다. 물가의 풀들, 버들꽃, 꾀꼬리는 나그네의 객고(客苦)를 달래주었으나 초여름에 장마가 되자 아무 것도 시름을 달랠 수 없다고 했다.

참고문헌

장유, 「다시 청음에게 드린 시 두 수[再呈淸陰 二首]」, 『계곡선생집』 제30권 칠언율(七言律) 1백 60수(首)

봄의 전령

보리는 푸릇푸릇 밀은 자라 가지런한데
버들꽃 눈과 같고 살구꽃은 드무네
바람결에 새 한 마리 사람을 부딪고 지나고
하늘가의 외구름은 기러기를 배워 나는구나
날씨가 하 좋으니 금방 취해 볼거나
봄이 문득 가버릴까 두렵네
비단안장 옥굴레가 길에 가득한데
석양에 혼자 읊으며 돌아감이 쓸쓸하구나
大麥青青小麥齊
柳花如雪杏花稀
風前一鳥打人過
天際孤雲學雁飛
轉愛晴光卽欲醉
却愁春事便相違
錦韉玉勒紛紛滿
日暮遙怜獨詠歸
버들꽃은 화창한 봄을 알리는 전령이다.
설손의 작품에서 버들꽃은 화창한 봄의 대낮을 상징한다. 화자는 계절에 도취하면서도 이 느낌이 사라질 것도 두려워한다. 화자의 예감대로 절정의 시간은 석양이 되면서 쓸쓸한 감정으로 바뀐다.

참고문헌

설손, 「삼월 회일 즉사(三月晦日卽事)」, 『동문선』 제16권 칠언율시(七言律詩)

소양제

버드나무의 소양제로서의 효과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무척이나 여자를 밝히는 난봉꾼이 있었다. 이 난봉꾼은 마음에 드는 여자만 보면 유부녀나 처녀를 가리지 않고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기어이 욕심을 채우고 마는 색광이었다. 그가 어느날 저녁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냇가를 지나게 치었는데 그 개울가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 듯한 여인이 막 옷을 벗고 목욕을 하려고 나서는 참이었다. 난봉꾼은 대뜸 달려가 껴안고 밤새도록 씨름을 하였다 그런데 그 이틀날 아침에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고 만다. 그 이후 그 난봉꾼은 양기를 모두 잃어 다시는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다름 아닌 버드나무의 정(精)이었다고 한다.

왕버들이나 다른 버드나무 종류의 버들꽃[柳絮]은 소양제로서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버들꽃은 남자의 성욕을 감퇴시키기 때문에 버들꽃이 피는 암나무는 자손이 귀한 집에서는 울안에 심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참고문헌

이상희, 「버드나무」,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제3권

어지러움

해는 서쪽으로 지고 물은 동으로 흐르는데
종전에는 이따금 공중이 불탄 듯 하였네
늙어 가매 굳은 지조는 충인을 할 만하고
젊은 날 미친 마음은 기러기 쏘는 걸 후회해라
술잔은 실컷 마시어 생명을 포기하고
시구는 난하게 써서 잘 되길 바라지 않네
여생은 판연히 바람에 날리는 버들꽃 같아
넓고 넓은 천지 사이에 부쳐 있을 뿐이라오
白日流西水逝東
從前種種火燒空
老來苦操堪充蚓
少日狂心悔射鴻
痛引杯樽棄命
亂題詩句不求工
餘生判似因風絮
寄着乾坤蕩蕩中
윤영희의 작품에서 불탄 듯하던 저녁놀이 지자 화자는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쓸쓸해한다. 호기롭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모습은 가벼이 나는 버들꽃 같이 천지간에 겨우 의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려하던 버들꽃은 이제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로 변화한 것이다.

참고문헌

윤영희, 「정약용과의 차운시」 다산시문집 제7권 시(詩), 『우세화시집』

이별

엇그제 님 이별하고 벽사창에 닫혔으니
황혼에 지는 꽃과 녹류에 걸린 달을
아무리 무심히 보아도 불승비감하여라.
엇그제 님 離別고 碧紗窓에 지혀시니
黃昏에 지 곳과 綠柳에 걸닌 을
아모리 無心히 보아도 不勝悲感 여라.
버들가지는 이별을 상징한다. 예로부터 이별의 증표로 버들을 꺾어주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전문학에서 등장하는 버들가지는 님과의 이별 자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작자미상의 시조에서도 버드나무에 걸린 달은 이러한 문학적 관습과 결부되어 이별의 정서를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해동가요』 484

정처 없음

들 머리를 항해 앉으매 풀이 옷을 물들이는데
해는 기울어 산 기운은 더욱 비미하구나
강에 가득한 봄빛은 아무 걸림이 없어
버들꽃은 아래위로 나는 데 맡겨만 둔다
坐向郊頭草染衣
日斜山氣轉霏微
滿江春色無拘管
一任楊花上下飛
허종의 작품에서도 해가 기운 뒤의 버들꽃은 아래 위로 힘없이 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봄빛이 강에 가득하지만 버들꽃은 정처가 없는 것이다.

참고문헌

허종, 「다경루 우부(多景樓又賦)」, 『속동문선』 제9권 칠언절구(七言絕句)

춘정

여자는 버들이오 남자는 춘풍이라
춘풍이 부는 대로 버들가지 넘놀건만
바람이 정심(定心)없어 왕래가 무상하다.
김낙기는 버들과 바람을 여자와 남자로 알레고리화했다. 버들가지는 봄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건만 정작 봄바람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고 하여 남녀간의 춘정을 빗대고 있다.

참고문헌

김낙기, 「춘유곡」중에서

춤추는 여인

황삼에 긴 소매로 너울너울 춤추는 모습
동풍에 간드러지게 움직이는 버들가지일세
그 누가 한 몸으로 여러 가지 모습 자아내나
예쁜 집에서 노을 지는 때인데
黃衫長袂舞垂垂
裊裊東風弱柳枝
誰使一身兼百態
畫堂看到日斜時
신광수는 춤추는 여인의 모습을 동품에 흔들리는 버들가지로 표현했다. 버들을 의인화한 것과 반대로 춤추는 여인의 행위를 역동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버들을 보조관념으로 도입한 것이다.

참고문헌

신광수, 「춤을 보며[觀舞]」, 『석북선생문집』 권9 시(詩)

향수

하늘 그늘 울타리 밖 차가운 저녁
한식날 동녘 바람 들물만 밝았구나
온배의 장사꾼 하는 얘기
버들꽃 핀 계절에 고향 생각 절로 나네
天陰籬外夕寒生
寒食東風野水明
無限滿船商客語
柳花峕節故鄕情
버드나무가 피어 있는 모습은 고향을 상징한다.
남효온의 작품에서 버들꽃은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소재이다. 떠돌아다니는 상인들에게 버들꽃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물이다. 어느 곳에서나 피는 버들꽃이건만 가장 좋은 시절이기 때문에 가장 그리운 고향을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종래 우리나라 시골에는 버드나무가 없는 마을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마을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가에 버드나무가 여기저기 서 있었고 마을 앞 개울가 방천둑에는 수없이 늘어져 있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왕버들의 노거수는 대부분 마을을 지키는 동신목으로 보호를 받았고 마을의 지표목처럼 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남효온, 「서강 한식(西江寒食)」, 『속동문선』 제10권 칠언절구(七言絶句)

화려한 봄밤

한양성 안에 화창한 봄날이 길어지니
바람에 날린 버들꽃은 백설이 향기로운데
어느 집 소년이 황금 장식 준마를 타고
장난삼아 붉은문 곁에서 나는 새를 쏘는고
웃으며 청루에 들어서는 손들을 불러오니
자리 가득 미인들이 관현악을 연주하누나
긴 밤이 일 년 같아 새벽이 온 것도 몰라라
젊어서 안 즐기고 늙어지면 어찌하리요
漢陽城中春日長
風吹柳花白雪香
誰家少年金腰褭
戲傍朱門射飛鳥
笑入靑樓喚客來
妖姬滿座絲管催
長夜如年不知曉
少壯不樂迺遲老
서거정의 작품에서 버들꽃은 화려한 봄밤을 수놓는 장식물이다. 권세 있는 자제들의 밤놀이는 배경인 버들꽃으로 인해 더욱 운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버들꽃, 봄밤, 젊은이들은 가장 절정의 아름다움을 지닌 소재들이다.

참고문헌

서거정, 「소년행(少年行)」, 『사가시집』 제3권 시류(詩類)

생태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인 버드나무의 꽃이다. 전국 각처에서 자라는데 특히 냇가에서 흔히 자란다. 높이가 20m, 지름 80㎝에 달하는 큰 나무로서 껍질은 검은 갈색이고 가지는 황록색이며 원줄기에서 잘 떨어진다. 잎은 어긋나고 피침형이고, 양끝이 좁아지고 가장자리에 안으로 굽은 톱니가 있다. 꽃은 암·수가 딴 그루에 달리지만 때로 같은 나무에 달리는 수도 있다. 수꽃 화수는 길이 1, 2㎝이며 화서축에 털이 있다. 포는 타원형이며 명주실 같은 털이 밀생한다. 암꽃 화수는 수꽃 화수의 길이와 비슷하고 화서축에 털이 있다. 포는 난형이며 털이 있다. 꽃은 4월에 피고 열매는 5월에 익으며 삭과에는 털이 달린 종자가 들어 있다.

버드나무는 냇가에 피며 그 꽃은 봄철에 아름답게 날린다. 예로부터 헤어질 때에는 버들가지를 꺾어주었으므로 이별을 상징해왔고, 꽃은 약재로 사용되었다. 문학적으로 버들가지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비유되었고 꽃은 화창한 봄날을 상징했다.

참고문헌

이창식, 『대한식물도감』, 향문사, 1982

꽃 생태정보

식물명 : 떡버들
과명 : 버드나무과
학명 : Salix hallaisanensis
종류 : 목본(나무)
이명 : 원대엽류, 탐라류
꽃색 : 황색
계절 : 봄
분포 지리 : 전국 각지
분포 지형 : 해발 300~1,700m 산허리 및 골짜기
생육상 : 낙엽관목(잎이 지는 떨기나무)
높이 : 6m 안팎
개화기 : 4월 ~ 5월
결실기 : 6~7월
열매의 형태 : 삭과(튀는열매) 익으면 과피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여러 개의 씨방으로 된 열매
용도 : 관상용(풍치림), 약용(잎)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