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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꽃

간신

장송이 푸른 곁에 도화는 붉어있다
도화야 자랑 마라 너는 일시 춘색이라
아마도 사절 춘색은 솔뿐인가 하노라.
長松이 푸른 겻헤 桃花 불거 잇다
桃花야 쟈랑 마라 너 一時 春色이라
아마도 四節 春色은 솔인가 노라.
백경현의 시조는 대조 효과를 활용한 것이다. 복숭아꽃은 솔보다 아름답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자태에 불과하므로 장송의 모습에 비유할 바가 못된다는 것이다. 푸른 장송 옆에서 붉은 자태로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복숭아꽃은 곧 절의를 지키는 충신을 옆에 두고 간사하게 아첨을 떨고 있는 신하를 표상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국화의 경우에도 그 정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비천한 자의 대명사격인 복아꽃과 자두꽃(도리화)를 연계시킨다.

참고문헌

백경현, 『동가선』 558

금기

달도 밝다. 달도 밝다. 야속하게 달도 밝다 나 젊은 과수댁들 문고리 벗겨 놓고 과혼 처녀들은 일 없이 마을 돈다…… 우리 처녀 시절에는 이십 먹은 계집애도 서방생각 안 하더니, 요샛년들 무섭구나. 열다섯 안팎 되면 젖통이가 똥또도름 장기 궁짝 되어 가고 궁둥이가 너부데데 소쿠리 엎어 논 듯, 복숭아꽃 벌어지면 머리 긁고 딴 화 내고…….

위 글은 복숭아꽃이 처녀의 마음을 자극한다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월매의 집에는 금기를 깨고 담 밑에 벽도화를 심어 놓았다. 『춘향가』 에는 월매의 집 정원을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벽도화 뻗은 가지담 밖을 덮었는데……”라는 구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생의 집이기에 이 금기를 지켜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이 금기를 스스로 깨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춘향가』

나례

구나(驅儺)에 관한 일은 관상감(觀象監)이 이를 주관한다. 제석(除夕)에 악공(樂工) 한 사람이 창사(唱師)가 되어 붉은 옷에 가면(假面)을 쓰고, 방상시(方相氏) 4인이 황금빛 나는 네 개의 눈이 달린 가면에 곰 가죽을 쓰고, 지군(持軍) 5인이 붉은 옷에 화립(畫笠)을 쓰고, 판관(判官) 5인이 연두색 옷에 화립을 쓰고, 조왕신(竈王神) 4인이 청포(靑袍)에 목홀(木笏)을 들고, 초라니[小梅] 몇 사람이 여자 모습의 가면을 쓰고 대가 긴 깃발을 들고, 12신(神)이 각각 자신들의 가면을 쓰는데 예를 들어 자신(子神)은 쥐 모양의 가면을 쓰고 축신(丑神)은 소 모양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 또 악공 10여 인이 도열(桃茢, 복숭아나무로 만든 지팡이와 갈대 이삭으로 만든 비)을 들고 이들을 따른다. 그리고 아이들 수십 명을 가려 뽑아서 이들에게 붉은 옷에 가면을 씌워서 아이 초라니[侲子]를 만들어서 의식이 끝날 무렵에 징을 울리며 역귀(疫鬼)를 몰아내도록 한다. 섣달의 대나(大儺)는 광화문(光化門)과 도성의 흥인문(興仁門), 숭례문(崇禮門), 돈의문(敦義門), 숙정문(肅靖門)에서 행하는데, 아이 초라니와 방상시의 복색(服色)과 주사(呪辭)는 고려(高麗)의 의식과 같다.
政院以禮曹言啓曰: “今次親祭楊遊擊之擧, 固出於情禮之不能已者, 而至尊玉體, 下臨凶穢之所, 事甚重難, 不可不愼. 巫祝桃茢之具, 雖未可用於今日, 如武士執戈隨陞之事, 不容竝廢. 令兵曹, 詳察擧行宜當. 聖念惻怛, 至於 躬行奠酹, 則儀註內, 似當有哭聲節次, 而自下不敢擅便磨鍊矣. 日官推擇, 以二十九日爲吉. 雖若稍遠, 不得已用此日, 敢啓.” 傳曰: “知道.”
이유원은 세모(歲暮)에 광화문에서 거행된 나례에서 도열이 사용되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이유원, 「나례(儺禮)」, 『임하필기』 제16권

벽사

정원이 예조의 말로 아뢰기를,
“이번에 양 유격을 직접 조제하시는 일은 실로 정례(情禮)에 있어 그만둘 수 없는 데에서 나온 일이나, 지극히 존귀하신 옥체(玉體)를 흉하고 더러운 곳에 하림(下臨) 하시는 것은 일이 매우 중난한 것이어서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축(巫祝)이 도열(桃茢)을 잡고 불제(祓除)하는 의식을 오늘에 쓸 수는 없지만, 무사들이 창을 잡고 따라 올라가는 일은 폐할 수가 없습니다. 병조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서 거행하게 하심이 마땅하겠습니다. 상께서 불쌍하게 여겨 몸소 전작(奠酌)을 거행하시는데 의주(儀註)에 곡(哭)하는 절차도 있어야 할 듯합니다만 아래에서 감히 마음대로 마련할 수 없습니다. 일관(日官)의 택일에 의하면 29일이 길하다고 합니다. 시일이 좀 멀기는 하지만 부득이 이 날을 쓰지 않을 수 없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政院以禮曹言啓曰: “今次親祭楊遊擊之擧, 固出於情禮之不能已者, 而至尊玉體, 下臨凶穢之所, 事甚重難, 不可不愼. 巫祝桃茢之具, 雖未可用於今日, 如武士執戈隨陞之事, 不容竝廢. 令兵曹, 詳察擧行宜當. 聖念惻怛, 至於 躬行奠酹, 則儀註內, 似當有哭聲節次, 而自下不敢擅便磨鍊矣. 日官推擇, 以二十九日爲吉. 雖若稍遠, 不得已用此日, 敢啓.” 傳曰: “知道.”

민간과 궁중을 막론하고 복숭아 가치는 벽사와 축귀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임금의 행차에 앞서 도열(桃茢)로 부정한 것을 쓸어 없앴다.

참고문헌

『선조실록』 선조 31년 1월 24일(경술)

비천한 자

장송이 푸른 곁에 도화는 붉어있다
도화야 자랑 마라 너는 일시 춘색이라
아마도 사절 춘색은 솔뿐인가 하노라.
長松이 푸른 겻헤 桃花 불거 잇다
桃花야 쟈랑 마라 너 一時 春色이라
아마도 四節 春色은 솔인가 노라.
백경현의 시조는 대조 효과를 활용한 것이다. 복숭아꽃은 솔보다 아름답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자태에 불과하므로 장송의 모습에 비유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이다. 푸른 장송 옆에서 붉은 자태로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복숭아꽃은 곧 절의를 지키는 충신을 옆에 두고 간사하게 아첨을 떨고 있는 신하를 표상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국화의 경우에도 그 정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비천한 자의 대명사격인 붕숭아꽃과 자두꽃(도리화)를 연계시킨다.

참고문헌

백경현, 『동가선』 558

소인배

처음에 제가 나라 창고의 고방벽을 뚫으려고 조심스레 벽 밑으로 기어가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산천초목은 모두 삼엄해 보이는데 오직 담장 모퉁이에 피어 있는 복숭아꽃은 저를 보고 생긋생긋 웃고 있었습니다.
이에 창고신이 복숭아꽃 신을 불러들여 추궁을 하니 복숭아꽃은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말씀드리기 황송하오나 저는 본디 겨울철엔 벌거숭이로 지내다가 봄을 맞아 피어나는 꽃봉오리들이 진분홍에 연지 빛깔이옵고 연분홍에 아리따운 비단무의입니다. 이는 저의 타고난 본성이오며 또한 조물주의 공덕이옵니다. 그러니 다만 봄을 즐겨 웃음을 띠었을 뿐이옵고 저 도적놈에게 그날 무슨 정을 표시한 것은 아닙니다.
다음에 쥐는 여러 짐승들을 끌어들여 무고하는데 모두 죄가 없음을 아뢰어 쥐의 죄상이 들어나려 하자 쥐는 다시 법관의 판단을 흐리게 하기 위하여 재차복숭아나무를 다음과 같이 헐뜯는다.
대체로 피었다가 시들고 시들었다가 퍼는 것이 나무의 천성입니다. 그러므로 무심히 피고 무심히 지는 것은 또한 자연의 이치이온데 복숭아꽃은 깜직하게도 곱고 요염한 빛을 보여서 사람의 눈을 홀리며 얄망스럽게도 얌전한 자태를 자랑하여 사람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오니 저 연꽃의 천연한 태도와 매화의 냉담한 운치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복숭아나무는 제 스스로 동쪽을 향한 가지가 능히 귀신을 꾸짖어 쫓는다고 하며 무당의 손에 들리워 잡신을 상대로 기도하는 데 쓰이고 있으니 그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를 어찌 면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빗날 진나라 백성이 그 가혹한 정치를 싫어하고 만리장성을 쌓는 고역을 피하기 위하여 노인과 어린이가 서로 손을 잡고 무릉도원이란 별유천지를 찾아들어가 청산으로 세상과 담을 쌓고 유수로 인간을 막았는데 다만 요망한 복숭아꽂이 심어준 은혜를 저버리고 은자의 종적을 세상에 누설시키려고 시냇물결을 타고 동구 밖으로 나가서 어부의 배를 끌고 들어왔습니다. 어부는 돌아가 그곳 태수에게 그 사실을 알려 사람을 시켜 그곳을 찾았으나 다행히 선원을 판별할 수 없어 그곳을 찾지 못하여 무사하게 되었지만 만일 그러하지 않았다면 그곳의 그들이 악정과 고역을 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복숭아꽃 부질없이 심어 숨은 종적 드러낸 것이 후회로다”라는 옛날 사람의 시구가 모두 복숭아꽃의 신의 없음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임제의 소설인 『서옥설』에서는 나라의 창고를 텅 빌 정도로 축낸 교활하고 간사한 쥐를 다스리기 위하여 창고신이 문초를 하는데 쥐는 복숭아나무를 무고한다. 쥐는 복숭아의 죄상으로 첫째로 너무 요염하제 생겨 사람을 유혹하고 둘째로 벽사의 주력이 있는 것처럼 하여 혹세무민하고 셋째로 도원이 있는 곳을 속인에게 알렸다는 세 가지를 들고 있다. 복숭아꽃이 미덥지 못한 꽃으로 대접받게 된 둘째 이유는 소나무나 대나무와 같이 불변성이나 절개를 지니지도 못하면서 봄철 짧은 기간에 피어나 하찮은 아름다움만 자랑하는 것이 소인의 태도라는 것이다. 흔히 전통 시가에서는 소나무나 대나무의 불변성이나 절개를 돋보이게 하기위하여 복숭아꽃을 끌어들인다.

참고문헌

임제, 『서옥설』

아름다운 여성

제25대 사륜왕(舍輸王)의 시호(諡號)는 진지대왕(眞智大王)이니 성은 김씨요 비(妃)는 기오공(起烏公)의 딸 지도부인(知刀夫人)이다. 대건(大建) 8년 병신(丙申)에 즉위하였는데 (고본에는 11년 기해(己亥)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나라를 다스린 지 4년에 정사가 어지럽고 또 음난한 짓이 많으므로, 나랏 사람들이 그를 폐하였다. 이 앞서 사량부(沙梁部)에 서녀(庶女)가 있어 얼굴이 하도 고우므로 그때 사람들이 도화랑(桃花娘)이라고 불렀다. 왕이 듣고 궁중에 불러들여 상관하려 하니, 여자가 말하되 “여자의 지킬 바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이니 남편이 있고 다른 데로 가는 것은 비록 만승(萬乘)의 위엄으로도 빼앗지 못하나이다”. 왕이 말하되 “너를 죽이면 어찌 하려느냐”. 여자 가로되 “차라리 죽을지언정 다른 일은 원치 않습니다”. 왕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네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 대답하되 “그러면 될 수 있나이다”하니, 왕이 놓아 보냈다. 이해에 왕이 폐위되고 돌아갔는데, 그 후 2년에 그 남편이 또한 죽었다. 그후 10일에 갑자기 밤중에 왕이 생시와 같이 여자의 방에 나타나 이르되 “네가 이전에 허락이 있었는데 지금 네 남편이 없으니 좋겠느냐”하였다. 여자가 가벼이 허락치 않고 부모에게 고하니, 가로되 “임금님의 말씀을 어찌 어기랴”하고 그 딸로 하여금 방에 들어가게 하였다. 7일 동안 머무를 때 항상 오색 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에 가득하더니 7일 후에 갑자기 왕의 자취가 없어졌다. 여자는 이내 태기가 있다가 달이 차서 해산하려 할 때에 천지가 진동하더니 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름을 비형(鼻荊)이라 하였다. 진평대왕이 그 이상함을 듣고 궁중에 들여다가 길렀다. 나이 15세에 이르러 집사를 차수(差授)하니 밤마다 멀리 도망가서 노는지라, 왕이 용사 50인을 시켜 지키게 하니 매양 월성(月城)을 날아 넘어 서쪽 황천(荒川) 언덕 위에 가서 귀신의 무리를 데리고 노는 것을 용사가 수풀 속에서 엿보니 귀신들이 여러 절의 새벽 종소리를 듣고 각각 흩어지고 비형도 또한 돌아왔다. 군사가 사실대로 아뢰니 왕이 비형을 불러 이르되 “네가 귀신을 데리고 논다는 것이 참 말이냐”. 비형이 대답하되 “그러합니다”. 왕이 이르되 “그러면 네가 귀신들을 부리어 신원사(神元寺) 북쪽 개천(혹은 신중사(神衆寺)라 하나 잘못이다. 혹은 황천(荒天) 동쪽 심거(深渠)라 한다)에 다리를 놓으라” 하였다. 비형이 칙명을 받들고 그 무리를 시켜서 돌을 다듬어 하룻밤에 큰 다리를 놓았으므로 그 다리를 귀교(鬼橋)라 하였다. 왕이 또 묻되 “귀신들 가운데 인간에 출현하여 정사를 도울 자가 있느냐”. 가로되 “길달(吉達)이라는 자가 있으니 정사를 도울만 하나이다”. 왕이 데리고 오라 하였다. 이튿날 비형이 데리고 와서 보이었다. 집사의 직책을 주니 과연 충직함이 짝이 없다. 이때에 각간(角干) 임종(林宗)이 아들이 없으므로 왕이 명하여 아들을 삼게 하였다. 임종이 길달을 시켜 흥륜사(興輪寺) 남쪽에 문루를 세우게 하고 밤마다 그 문 위에 가서 자게 하였으므로 길달문이라 하였다. 하루는 길달이 여우로 변하여 도망하니 비형이 귀신을 시켜 잡아 죽였다. 그러므로 그 무리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하여 달아나니 그때 사람들이 글을 지어 이르되 “성제(聖帝)의 혼이 나으신 아들, 비형의 집이 여기로구나, 날고뛰는 잡귀들아 행여 이곳에 머물지말라”라 하였다. 시골 풍속에 이 글을 붙여서 귀신을 물리쳤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郞)」 이야기는 복숭아꽃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이다. 여기에서 도화녀는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진지왕의 혼령과 동침하여 탄생한 비형랑이 귀신을 부리는 재주를 지닌 인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성인 도화녀가 복숭아꽃의 아름다움에서 형상화되었다면 남성인 비형랑은 민간에서 신봉되고 있는 복숭아나무 축귀적(逐鬼的) 능력에서 형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일연, 「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郞)」,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1 기이 제1

축귀

봉익대부(奉翊大夫) 홍순(洪順)은 충정공(忠正公 홍자번(洪子藩)의 시호)의 아들이다. 그는 항상 상서(尙書) 이순(李淳)과 내기 바둑을 두었는데, 이(李)가 골동품(骨董品)과 서화(書畫)를 걸었다가 거의 다 빼앗겼다. 마지막에는 보물로 여기는 현학금(玄鶴琴)을 걸고 두었는데, 홍(洪)이 또 그를 이겨 얻었다.
이(李)는 거문고를 주면서 말하기를,
“이 거문고는 우리 집의 청전(靑氈)으로서 거의 2백 년이나 전해 내려온 것일세. 물건이 오래되어 신(神)이 붙어 있으니, 그대는 잘 간수하게.”
하였으니, 이(李)는 특히 홍(洪)의 성품이 겁내고 꺼리는 것이 많음을 알고 농담한 것이다.
하루는 밤이 몹시 추워서 거문고 줄이 얼어 끊어지면서 쨍하는 소리가 났다. 홍은 신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홍은 급히 등불을 밝히고 복숭아나무 회초리(桃茢)로 어지러이 치니 거문고는 치면 칠수록 더욱 소리를 냈고 홍은 더욱 의혹되어 종을 시켜 밤새도록 지키게 하였다. 날이 새자 홍은 종 연수(延壽)란 자에게 거문고를 들려 이씨 집으로 가져가게 하였다. 이(李)는 일찍 찾아온 것을 괴이하게 여기다가 가지고 온 거문고에 어지러이 맞은 흔적을 보고 속여 말하기를,
“내가 이 거문고 때문에 오랫동안 걱정하여 여러 번 깨뜨려버리려 하였으나, 또 신의 화가 있을까 두려워 깨뜨리지 못하던 차에 다행하게도 공에게 넘기게 되었는데, 어째서 돌려준단 말인가.”
하고,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그러자 홍은 몹시 난처하여, 전에 내기하여 얻은 서화와 골동품 등을 죄다 곁들여서 거문고에 딸려 보내니, 이(李)는 마지못한 체하고 받았다. 그러나 홍은 이에게 속은 것을 모르고 거문고를 돌려준 것만 다행하게 생각하였다.

이제현의 역옹패설에는 복숭아나무 회초리(桃茢)가 등장한다. 홍순은 이순이 귀신이 붙어 있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상기하고 복숭아나무 회초리로 거문고를 마구 때려서 귀신을 쫓았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이제현, 『역옹패설(櫟翁稗說)』 2

혹세무민

처음에 제가 나라창고의 고방벽을 뚫으려고 조심스레 벽 밑으로 기어가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산천초목은 모두 삼엄해 보이는데 오직 담장 모퉁이에 피어 있는 복숭아꽃은 저를 보고 생긋생긋 웃고 있었습니다.
이에 창고신이 복숭아꽃 신을 불러들여 추궁을 하니 복숭아꽃은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말씀드리기 황송하오나 저는 본디 겨울철엔 벌거숭이로 지내다가 봄을 맞아 피어나는 꽃봉오리들이 진분홍에 연지 빛깔이옵고 연분홍에 아리따운 비단무의입니다. 이는 저의 타고난 본성이오며 또한 조물주의 공덕이옵니다. 그러니 다만 봄을 즐겨 웃음을 띠었을 뿐이옵고 저 도적놈에게 그날 무슨 정을 표시한 것은 아닙니다.
다음에 쥐는 여러 짐승들을 끌어들여 무고하는데 모두 죄가 없음을 아뢰어 쥐의 죄상이 들어나려하자 쥐는 다시 법관의 판단을 흐리게 하기 위하여 재차복숭아나무를 다음과 같이 헐뜯는다.
대체로 피었다가 시들고 시들었다가 퍼는 것이 나무의 천성입니다. 그러므로 무심히 피고 무심히 지는 것은 또한 자연의 이치이온데 복숭아꽃은 깜찍하게도 곱고 요염한 빛을 보여서 사람의 눈을 홀리며 얄망스럽게도 얌전한 자태를 자랑하여 사람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오니 저 연꽃의 천연한 태도와 매화의 냉담한 운치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복숭아나무는 제 스스로 동쪽을 향한 가지가 능히 귀신을 꾸짖어 쫓는다고 하며 무당의 손에 들리워 잡신을 상대로 기도하는 데 쓰이고 있으니 그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를 어찌 면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빗날 진나라 백성이 그 가혹한 정치를 싫어하고 만리장성을 쌓는 고역을 피하기 위하여 노인과 어린이가 서로 손을 잡고 무릉도원이란 별유천지를 찾아들어가 청산으로 세상과 담을 쌓고 유수로 인간을 막았는데 다만 요망한 복숭아꽂이 심어준 은혜를 저버리고 은자의 종적을 세상에 누설시키려고 시냇물결을 타고 동구 밖으로 나가서 어부의 배를 끌고 들어왔습니다. 어부는 돌아가 그곳 태수에게 그 사실을 알려 사람을 시켜 그곳을 찾았으나 다행히 선원을 판별할 수 없어 그곳을 찾지 못하여 무사하게 되었지만 만일 그러하지 않았다면 그곳의 그들이 악정과 고역을 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복숭아꽃 부질없이 심어 숨은 종적 드러낸 것이 후회로다”라는 옛날 사람의 시구가 모두 복숭아꽃의 신의 없음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임제의 소설인 『서옥설』에서는 나라의 창고를 텅 빌 정도로 축낸 교활하고 간사한 쥐를 다스리기 위하여 창고신이 문초를 하는데 쥐는 복숭아나무를 무고한다. 쥐는 복숭아의 죄상으로 첫째로 너무 요염하제 생겨 사람을 유혹하고 둘째로 벽사의 주력이 있는 것처럼 하여 혹세무민하고 셋째로 도원이 있는 곳을 속인에게 알렸다는 세 가지를 들고 있다. 복숭아꽃이 미덥지 못한 꽃으로 대접받게 된 둘째 이유는 소나무나 대나무와 같이 불변성이나 절개를 지니지도 못하면서 봄철 짧은 기간에 피어나 하찮은 아름다움만 자랑하는 것이 소인의 태도라는 것이다. 흔히 전통 시가에서는 소나무나 대나무의 불변성이나 절개를 돋보이게 하기위하여 복숭아꽃을 끌어들인다.

참고문헌

임제, 『서옥설』

생태

복숭아꽃은 쌍떡잎식물강 장미목 장미과 나무인 복사나무의 꽃이다. 복사나무는 크기 6m 정도이며, 꽃의 색깔은 연홍색이다. 개화시기는 4~5월경이고 과실의 수확시기는 7~9월이다. 잎보다 먼저 연홍색의 꽃이 1~2개씩 가지 끝 짧은 꽃줄기 끝에 달리는데. 꽃잎은 5개로 원형이고, 꽃받침잎은 난형이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타원상 피침형으로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에는 밀선이 있다.

복숭아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과실의 맛이 좋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던 꽃이다. 대표적인 양목(陽木)으로 알려져 동쪽으로 난 가지가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으며, 꽃 과 열매가 선경(仙境)과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의미하는 신선들의 과일로 상징된다. 한편 복숭아꽃 자체가 화려하므로 시세에 아첨하는 무리들로 흥히 표상된다. 이점은 사군자와 대조되는 문학적인 알레고리로 이해된다.

꽃 생태정보

식물명 : 복사나무
과명 : 장미과
학명 : Prunus persica
종류 : 목본(나무)
이명 : 도, 도화수, 선과수, 복숭아나무, 복사
꽃색 : 연한 홍색
계절 : 봄
분포 지리 : 중국 원산(과수용), 북부 고원지를 제외한 전국
분포 지형 : 재배
생육상 : 낙엽소교목(잎이 지는 작은키나무)
높이 : 3~6m
개화기 : 4월 ~ 5월
결실기 : 8~9월
열매의 형태 : 핵과(굳은씨열매)
용도 : 식용(열매), 약용(열매, 씨)
기타 :
사진제공자 : 김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