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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고고함

바람에 휘였노라 굽은 솔 웃지 마라
춘풍에 피운 꽃이 매양에 고왔으랴
풍표표 설분분할 제 네야 날을 부르리라.
람에 휘엿노라 구븐 솔 웃지 마라
春風에 픠온 곳지 양에 고와시랴
風飄飄 雪紛紛 제 네야 나를 부르리라.

인평대군의 시조에서 봄바람에 아름답게 피어난 꽃은 바람에 휘어진 굽은 솔을 비웃는다. 그러나 그 꽃은 계속 아름답게 피어 있을 수 없다.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게 되면 오히려 소나무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강한 바람은 솔을 위협하는 부정적 세력이고 춘풍에 맞추어 핀 고운 꽃은 시세에 아첨하는 무리들로 표현되었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굽은 소나무이지만 온 세상에 바람과 눈이 내리면 홀로 고고한 의미를 드러낼 것이라고 보았다.

참고문헌

인평대군, 『청구영언(靑丘永言)』 390

국가의 동량

어와 베일시고 낙락장송 베일시고
잠깐만 두던들 동량재 되리러니
어즈버 명당이 기울거든 무엇으로 버티려뇨.
어와 버힐시고 落落長松 버힐시고
져근덧 두던들 棟梁材 되리러니
어즈버 明堂이 기울거든 므서스로 바티려뇨.
소나무는 좋은 재질의 목재이므로 흔히 집이나 국가의 재목감으로 비유되어 인재의 의미로 상징되어왔다. 큰 나무가 동량(棟梁)이 되어 명당을 떠받치는 것처럼, 나라의 경우에도 큰 인물이 경영을 맡게 된다는 것으로 유추되기 때문이다.
정철의 작품은 소나무를 국가의 대들보로 설정한 세 편의 작품을 지었다. 그중에서 위 시조는 국가의 동량이 될 낙락장송(유능한 인재)을 마구 베어 버리는 현실정치의 횡포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낙락장송을 베어버려 명당이 무너지는 것은 당쟁이 폐해를 암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정철, 『송강가사』 46

군자

겹겹이 둘러쌓인 산수 속에
낙낙장송이 구름에 닿아있네
이것에 대적할 만한 군자 있으니
농서 이씨 명문으로 이부가 그분일세
重重山水
落落雲松
於斯相對有君子
姓李名榑隴西公
고려시대의 보우국사는 “소나무가 초목 가운데 군자이니, 이를 사랑하는 이는 사람 가운데 군자[松者草木之君子也 愛此者人之君子也]”라고 했다. 내시인 이부(李榑)가 왕명을 받들어 소설산(小雪山)까지 찾아 왔을 때에 그에게 대송(大松)이라는 호와 함께 게송(偈頌)으로 지어준 것이다. 여기에서는 벼슬아치이지만 충성스런 인물을 군자로 미화한 것이다.

참고문헌

보우, 「증대송(贈對松)」, 『태고보우국사법어집(太古普雨國師法語集)』

군자의 절개

소나무여 푸르구나
초목 중의 군자로다
눈서리 차가워도 주눅 들지 않고
이슬 내려도 웃음 보이지 않는구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한결같고
겨울에도 여름처럼 푸르고 푸르구나
푸르구나 소나무여
달뜨면 잎 사이로 달빛 곱게 체질하고
바람 불면 거문고소리 청아하구나
松兮靑兮
草木之君子
霜雪兮不腐
雨露兮不榮
在冬夏靑靑
靑兮松兮
月到兮節金
風來兮鳴琴
소나무의 변함없는 형상은 시시각각 변모하는 세속에서 벗어난 고고한 자태의 인간 모습으로 의인화되곤 했다. 이때 바람 ∙ 눈 ∙ 서리, 그리고 복숭아꽃과 자두꽃 등은 세속적인 세계의 상징들로 소나무와 대조적인 의미 체계를 이룬다.
사명대사는 주변 환경의 변화에 아랑곳 하지 않는 소나무를 초목의 군자로 비유했다. 여기에서 군자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처세하는 이상적 인간상을 가리킨다.

참고문헌

사명대사, 「청송사(靑松辭)」

군사의 절조

창송은 어찌하여 백설을 웃는건가
도리는 어찌하여 청하를 두르는가
아마도 사시 불변하니 군자절을 가졌다
蒼松은 엇지여 白雪을 웃는고야
桃李는 엇더여 淸霞를 둘이는고
암아도 四時 不變이 君子節을 가졋다.
군자란 유교적인 덕목을 지닌 이상적인 인간상을 가리킨다. 성품이 어질 뿐만 아니라 학식까지 높은 지성인을 뜻한다. 김수장은 짧은 기간 동안에 피었다 져버리는 복숭아꽃이나 자두꽃과 달리 소나무는 사시에 변하지 않은 군자의 절조를 지녔다고 보았다.

참고문헌

김수장, 「소나무」, 『해동가요』 491

내면의 절조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 서리를 모르느냐
구천의 뿌리 곧은 줄을 그로 하여 아노라
더우면 곳 퓌고 치우면 닙 디거
솔아 너 엇디 눈 서리 모다
九泉의 불희 고 줄을 글로 야 아노라.

윤선도의 노래에서는 소나무의 내면적 세계를 찬송하고 있다. 즉 소나무의 변하지 않는 절조의 원천은 땅속 깊이 구천에 곧게 뻗쳐 있는 뿌리의 영력(靈力)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은 뿌리는 결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슬기로운 마음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윤선도, 「오우가」중 솔, 『고산유고(孤山遺稿)』 16

떠도는 인생

버들솜 날릴 때 평양에서 떠나
송홧가루 떨어질 때 개성을 지나네
송화와 버들솜 비록 바람에 흩날리지만
오히려 낫지, 뜬 인생 날마다 떠도는 나보다는
柳絮飛時別柳京
松花落後過松營
飛花落絮雖飄蕩
猶勝浮生日遠征
김부용의 작품에서 ‘유경’은 버드나무가 많은 평양을, ‘송영’은 소나무가 많은 개성을 각각 가리킨다. 이 작품에서 일시적으로 날리는 꽃송이들을 보며 화자는 날마다 떠도는 자신의 신세를 돌아본다. 봄철에 흩날리는 버들솜과 초여름에 떨어지는 송화 가루는 시간의 변화를 알려주는 것과 대조적으로 시인의 자의식은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참고문헌

김부용, 「길 가던 중에」, 『국역 운초기완』

마을의 수호자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에 있는 반송은 수령 약 500년인 노거수로서 천연기념물 제2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나무는 밑에서 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져 그 폭이 5m에 이르며 높이는 15m, 수관(樹冠)의 길이는 25m에 달하는 반월형으로 그 웅좌(雄坐)함을 뽐내고 있다. 이 나무는 마을의 당산목(堂山木)으로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에 모여 동제(洞祭)를 지내는 습속이 있다. 동민들은 이 반송을 숭상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해치는 일이 없으며 심지어 땅에 떨어진 잎을 가져가도 벌을 받는다는 말이 있고 또 이 나무 속에 이무기가 살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 가도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안개가 낀 날에는 나무주변을 구름이 덮인 듯이 보이고 이무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한다. 이 나무는 또 그 모양이 탑같이 보인다고 하여 탑송(塔松)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오래 살아 거목이 된 소나무는 영성(靈性)과 신성(神性)을 지닌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마을을 수호한다고 믿어지는 당산목 중에서 소나무가 가장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나무의 위력으로부터 평안을 얻고자 한 것이다.

참고문헌

이상희, 「소나무」, 『꽃으로본 우리 문화』 제3권

민족적 기상

집들 둘러 층층의 묏부리 솟아
공중에 버텨 서서 푸른 일산 되었네
비가 개이면 구름 와서 흰 옷 걸쳐주고
밤이 고요하면 달이 맑게 빨아주네
깎아지른 듯 천 년의 터에 솟아 있어
바람이 10리 까지 소리를 전하네
사람들은 이런 모습 돌아보지 않고
떠들썩하게 명예만 다투네
繞屋層巒聳
撑空翠盖成
雨晴雲襯白
夜靜月篩淸
璧立千年地
風傳十里聲
無人回首見
擾擾競馳名

소나무는 정중하며 엄숙하고 과묵하여 우리 민족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심성을 상징해왔다. 간난의 세월을 억척스럽게 살아온 우리 민족은 소나무를 통해 배워야할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왔던 것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인 정이오는 남산의 절경을 읊은 작품 중의 하나인 「고갯마루의 장송」에서 묏부리에 솟아 일산처럼 버티고 서있는 우람한 장송의 자태를 묘사한다. 흰 구름과 맑은 달빛, 높은 위치와 솔바람으로 묘사되는 소나무는 남산의 정경을 단순히 노래한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정신을 표상하고 있다. 소나무가 지닌 민족적 기상이라는 이미지는 애국가에서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가사로 이어져 민족적 상징으로 굳어져 왔다.

참고문헌

정이오, 「고갯마루의 장송[嶺上長松]」,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권 한성부(漢城府)

벽사

동제를 지내기 여러 날 전에 신당은 물론 제수를 준비하는 도가집, 공동우물, 마을 어귀 등에 금줄을 친다. 금줄은 왼새끼를 꼬아 만든 줄에 백지 조각이나 소나무가지를 꿰어 두는데 이는 밖에서 들어오는 잡귀의 침입과 부정을 막아 제의공간을 정화하기 위해서이다. 정월 대보름 전후해서 소나무 가지를 문 앞에 세우거나 지붕 위에 둔다든가 처마에 꽃아 둔다든가 솔잎을 문안에 뿌리는 등의 민속이 있었는데 이것도 잡귀와 부정을 막기 위해서였다. (중략) 전라북도 금마(金馬) 지방에서는 곡우(穀雨) 때에 씨나락을 그릇에 담고 솔가지를 그 위에 덮어 놓는다. 그것은 궂은 일이 있는 남의 집에 다녀오는 사람이 혹시나 묻혀올지도 모를 잡귀나 부정의 침입을 막아 소중한 씨나락을 잘 보존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동제에서 사용하는 금줄과 씨나락을 덮는 용도로 사용되는 소나무 가지는 잡귀와 부정을 물리치는 정신적인 청정함의 상징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행동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는 금기적 상징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이상희, 「소나무」, 『꽃으로본 우리 문화』 제3권 12절

별유천지

죽장망혜 단표자로 천리 강산 들어가니
그 곳이 골이 깊어 두견 접동이 낮에 운다 구름은 뭉게뭉게 피어 낙락장송에 어리였고 바람은 솰솰 불어 시내 암상에 꽃가지만 떨떨이는구나
그 곳이 별유천지 비인간이니 놀고 갈까.
竹杖芒鞋 單瓢子로 千里 江山 드러가니
그 곳이 골이 깁퍼 杜鵑 졉동이 나졔 운다 구룸은 뭉게 뭉게 퓌여 落落長松에 어리엿고 바람은 솰솰 부러 시 巖上에  가지만 이는고나
그 곳이 別有天地 非人間이니 놀고 갈가.
소나무의 잎과 꽃가루 등을 식품으로 섭취하여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우리 민족은 소나무가 있는 곳을 신선들이 사는 선경으로 믿어왔다.
남훈태평가에 수록된 작자미상의 시조에서 별유천지 비인간을 구현하는 자연의 중심 이미지가 낙락장송으로 설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218

상록

장송이 푸른 곁에 도화 붉어 있다
도화야 자랑 마라 너는 일시 춘색이라
아마도 사시 춘색은 솔뿐인가 하노라
長松이 푸른 겻헤 桃花 불거 잇다
桃花야 쟈랑 마라 너 一時 春色이라
아마도 四節 春色은 솔 인가 노라.
백경현의 작품에서는 고고한 소나무가 한 순간의 춘색을 자랑하는 복숭아꽃과 대조되어 있다. 그래서 사시사철 봄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의 고고함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참고문헌

백경현, 『동가선』 558

선경

산이 뺑 둘린 외로운 마을의 작은 길 옆
먼 숲에 더위도 가셨는데 봉래를 찾아왔네
신선이 온 줄 알고 학은 구름 낀 골에 날고
손님을 접대하려 동자는 현관을 쓰는구나
샘물은 돌시내에 와서 슬그머니 옥을 울리고
불이 단조에 남아 식었던 재 되살아나네
문득 들리는 공중의 철적소리
10리의 소나무꽃 하루밤에 피어나누나
山遶孤村小逕隈
遠林暑薄訪蓬萊
鶴飛雲洞知仙起
童掃玄關待客來
泉至石渠鳴暗玉
火存丹竈活寒灰
忽聞鐵笛空中響
十里松花一夜開
석광연의 한시에서 봉래를 찾아온 화자는 스스로 신선이 되었음을 자부한다. 여기에서도 소나무꽃은 공중에서 들리는 철적소리와 함께 중심적인 소재로 등장한다.

참고문헌

석굉연, 「제유선암(題劉仙巖)」, 『동문선』 제17권 칠언율시(七言律詩)

선식

재우는 천성이 효도스럽고 우애가 있으며, 기개와 도량이 크고 심원(深遠)하며, 호걸스럽고 의협심이 있어 의리를 좋아하였으며, 용맹은 삼군의 위세를 압도할 만하였다. 소년 때 조식(曹植)에게서 글을 배웠는데 조식이 자기의 외손녀를 재우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적이 물러가니 재우가 말하기를,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쥐를 잡기 위해서이다. 이제 적이 이미 평정되어 나의 할 일이 없으니 가는 것이 옳다.” 하고 드디어 신선되는 술법을 배워 산중에 들어가 곡기를 끊었는데, 어떤 때는 해[年]가 넘도록 먹지 않아도 몸이 가볍고 건강하였다. 오직 날마다 조그맣게 뭉친 송화(松花)가루 한 조각을 먹을 뿐이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곽재우는 미래를 내다보고 현실에서 은둔하여 신선이 되었는데, 이때 그는 뭉친 송홧가루 조각을 섭취했다고 했다. 능력 있는 인재의 은퇴와 신선수련의 행위를 관련시키는 가운데 소나무꽃의 상징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참고문헌

이긍익, 「곽재우(郭再祐)」, 『연려실기술』 제16권 선조조 고사본말(宣祖朝故事本末)

선약

잎이 다섯 개 있는 산자송(山子松)은 송진이 땅속에 들어가 천 년이 지나면 복령(茯笭)이 되고 또 천년이 지나면 호박(琥珀)이 된다. 또 큰 소나무는 천 년이 지나면 그 정기가 청우(靑牛)가 되고 복귀(伏龜)가 된다.

강희안의 화훼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 에서는 솔잎과 소나무가 오래되면 다른 사물로 변한다고 했다. 복령이나 호박은 모두 도교에서 말하는 선약의 일종으로 불로장생을 누리게 해준다고 믿었던 것들이다. 이들 식품을 먹으면 몸이 가볍게 되어 마침내 날개가 생겨 하늘에 올라 선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과학적 사실은 아니지만 당시인들이 소나무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의 일단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강희안, 『양화소록(養花小錄)』

송화

글 짓던 습성이 갈수록 오만해져
문득 최문창후 떠올려 월영대에 올랐네
풍월은 황학 따라 가지 않고
뿌연 파도는 흰 갈매기 함께 오네
비 개자 산빛은 난간에 낮게 깔리고
봄 지나자 송화가 술잔에 날아드네
티끌세상 등지고 거문고에 뜻을 두었으니
다른 날 비ㆍ구름과 함께 다시 찾으리
文章習氣轉崔嵬
忽憶崔侯一上臺
風月不隨黃鶴去
煙波相逐白鷗來
雨晴山色濃低檻
春盡松花亂入杯
更有琴心隔塵土
他時好與雨雲迴
채홍철은 마산의 월영대에 올라 신라시대의 최치원을 회상한다. 여기에서 황학, 송화, 거문고는 모두 신선과 관련된 이미지로 신선이 되었다던 최치원을 환기시킨다. 신선적인 분위기의 표현을 위해 소나무 자체보다 소나무꽃을 활용한 것은 계절 감각까지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다.

참고문헌

채홍철, 「월영대(月影臺)」, 『동문선』 제14권 칠언율시(七言律詩)

은자의 세계

솔 아래 동자에게 물으니 이르기를 선생이 약을 캐러 갔너이다.
다만 이 산중에 있건마는 구름이 깊어 간 곳을 모릅니다.
아이야 네 선생 오시면 내가 왔다고 아뢰어라
솔 아 童子려 무로니 니르기를 先生이 藥을 라 갓너이다
다만 이 山中에 잇건마 구름이 깁퍼 간 곳을 아지 못게라
아희야 네 先生 오셔드란 날 왓더라 와라.
작자미상의 시조에서 화자는 소나무가 있는 은자의 세계를 찾아간다. 고고한 소나무가 자라는 곳에서 탈속하여 은둔하는 은자는 신선으로 보아도 좋다. 여기에서 소나무가 있는 곳은 구름 속에 거처하는 은자를 찾아간 사람도 은자가 되게 하는 점염(點染)되는 공간을 상징한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청구영언(靑丘永言)』 755

이상향

김유신 집안의 재매부인(財買夫人)이 죽으니 청연(靑淵)에 장사지내고, 이로 인하여 재매곡(財買谷)이라 불렀다. 해마다 봄철에는 한 종중(宗中)의 남자와 여자들이 그 골짜기의 남쪽 시내에 모여 크게 잔치했는데, 이때엔 온갖 꽃이 피고 송화(松花)가 골안 숲에 가득했다. 골짜기 어귀에 암자를 지어 송화방(松花房)이라 불렀으며 원찰(願刹)로 삼았다.
金氏宗財買夫人死 葬於靑淵上谷 因名財買谷 每年春月 一宗士女 會宴於其谷之南澗 于時百卉敷榮 松花滿洞府林 谷口架築爲庵 因名松花房 傳爲願刹
삼국유사에 나오는 재매부인 이야기는 송화방의 지명유래담이다. 여기에서 송화가 피는 골짜기는 죽은 이가 잠든 곳으로 현실과 구별되는 이상향으로 묘사되었다. 죽음의 의미가 부정적이지 않고, 봄이면 종중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하는 축제의 공간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일연, 「김유신」, 『삼국유사』 제2 기이편(紀異篇)

인고

봄이 와도 그 빛을 더하지 않고
겨울이 되어도 그 빛이 바래지 않네
바람이 치는 대로 흔들려 주고
횐 눈이 휘날리는 대로 내맡겨 두네
春來不加色
寒至不渝色
從他長風饕
任他飛雪白

신흠은 계절과 환경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는 소나무의 정신적 자세를 관용적인 의미로 파악한다. 바람이 치는 대로 흔들려주고, 눈이 휘날리는대로 내맡겨 두는 모습은 남성적 강인성보다는 여성적 인고의 모습에 가깝다.

참고문헌

신흠, 「장송표(長松標)」, 『상촌선생집』 제4권 악부체(樂府體)

일편단심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때 독야청청하리라
이 몸이 주거 가셔 무어시 될고 니
蓬萊山 第一峰에 落落長松 되야이셔
白雪이 滿乾坤 제 獨也靑靑 리라.
소나무가 지닌 절조는 불특정한 인재라는 범주를 넘어 특정한 충신의 상징으로 형상화된 작품들도 많다. 성삼문의 작품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숙음을 당할 때 지었다는 배경 설화로 인해 낙락장송의 이미지가 죽음까지 초극하려는 작자의 이미지와 더욱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 독야청청하는 낙락장송은 이생에서 다할 수 없는 충절을 죽어서 봉래산 제일봉에서라도 실천하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다.

참고문헌

성삼문, 『청구영언』 16

자부심

솔이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기느냐
천심절벽에 낙락장송 내 그것이로다
길 아래 초동의 접낫이야 걸어볼 줄 있으랴
솔이 솔이라 니 무 솔만 너기다
千尋 絶壁에 落落長松 내 긔로다
길 아 樵童의 졉낫시야 걸어볼 줄 이시랴.
송이의 작품에서 절벽에 뿌리를 박고 우뚝 서 있는 낙락장송은 뭇 남성들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표현되었다. 낙락장송은 기생이지만 강한 자부심을 지닌 여성 화자 자신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참고문헌

송이, 『해동가요』 141

자연미

외나무는 숲을 못 이룬다던 이 그 누구던가
뜰 앞의 반송 한 그루 녹음이 우거졌네
깊고 깊은 뿌리는 지맥에 닿아있고
일산처럼 둥근 가지 하늘을 받쳤구나
구름을 뚫고 올라 학이 날아오르는 듯
비를 부르면서 규룡이 꿈틀대는 듯
스쳐가는 바람결은 옷소매를 펄럭이고
파도 같은 소리 나고 대낮에도 어둑하네
誰曰獨樹不成林
且向庭前坐綠陰
滾滾深根連地脈
盤盤偃盖拱天心
從敎白鶴穿雲起
莫遣蒼虯帶雨吟
夢入徂徠風滿袖
海濤聲裡晝沈沈
소나무가 아름답게 수를 놓은 정경은 우리나라 자연미의 정형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소나무의 개별적 형상보다는 대개 달, 바람, 소리 등과 결합하여 독특한 풍취를 자아내는 작품이 많다.
김식의 작품은 평안도 철산의 거련역(車輦驛)이라는 역마을에 있던 큰 반송을 묘사한 것이다. 소나무 한 그루가 거대하게 자라 숲처럼 된 것인데, 시인은 깊은 뿌리, 넓은 가지, 꿈틀대는 줄기, 그리고 바람소리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소묘하여 소나무의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형상화했다.

참고문헌

김식, 「반송(盤松)」, 『동국여지승람』 제53권 평안도(平安道) 철산군(鐵山郡)

자연의 소리

청풍이 습습하니 송성이 냉랭하다
악보 없고 곡조 없으니 무현금이 저렇던가
지금에 도연명 간 후이니 지음할 이 없도다
淸風이 習習니 松聲이 冷冷다
譜업고 調업스니 無絃琴이 져러턴가
至今에 陶淵明 간 後ㅣ니 知音 리 업도다.
김진태의 시조에서는 소나무와 바람소리를 결합하여 음악보다 뛰어난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부각시켰다. 솔잎 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는 수많은 시인들의 작품에서 송뢰(松籟) · 송운(松韻) · 송도(松濤) · 송풍(松風)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아름다운 음악으로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명약으로 비유되었다.

참고문헌

김진태, 『청구가요』 30

절개

춘풍 도리화들아 고운 양자 자랑 마라
창송녹죽을 세한에 보려무나
정정코 낙락한 절을 고칠 줄이 있으랴
春風 桃李花들아 고온 양 자랑 마라
蒼松 綠竹을 歲寒에 보려무나
亭亭코 落落 節을 고칠 줄이 이시랴.

김유기의 작품에서는 춘풍에 짧은 동안 피어 예쁜 모습을 자랑하는 복숭아꽃과 자두꽃은 추운 겨울에도 변치 않는 소나무와 대나무의 절개를 더욱 강조시켜준다. 작자는 아름다움을 다투는 꽃들과 절개를 지키는 소나무와 대나무들을 유형별로 성격화하여 의인화 단계에서 정치적 알레고리의 단계로 전환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김유기, 『청구영언』 249

절조

창 밖에는 소나무가 너울대고
솔 위로 아름다운 달이 떠 있도다
솔의 곧음과 달의 빛남이 어울리니
운치와 절조가 절경을 이루도다
冉冉窓外松
姸姸松上月
貞華兩相宜
韻操雙奇絶
최자는 소나무와 달의 결합을 통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형상화했다. 그것은 소나무가 지닌 곧음과 달이 지닌 빛남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낸 분위기(운치)와 의미(절조)의 결합이다.
최자의 다음 작품에서는 학의 이미지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로 인해 시각적 이미지에 청각적 이미지가 복합되어 입체적인 효과를 자아냈다. 소나무의 아름다움은 이제 오감을 자극하는 미적 체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최자, 「송월(松月)」

정화

2월 초하룻날 4경(更)에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솔잎을 집 안팎에 뿌리는데 이를 급침(給針)이라 한다.
2월 초하룻날은 화조(花朝)라 하여 이른 새벽에 솔잎을 문간에 뿌리는데, 속언으로는, “그 냄새나는 빈대가 미워서 솔잎으로 찔러 사(邪)를 없앤다.”고 한다.
二月初一日花朝。乘曉散松葉於門庭。俗言惡其臭蟲而作針辟
우리의 전래 풍속에서 소나무는 신성한 나무로서 벽사력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소나무는 제의(祭儀)나 의례(儀禮) 때 부정을 물리치는 신물로서 제의공간을 청정하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강희맹과 성현은 소나무 잎의 모양이 바늘처럼 생긴데서 벌레를 찔러 퇴치한다는 침벽(針辟) 풍속이 있었음을 소개한 바 있다.

참고문헌

강희맹, 「급침(給針)」, 『사시찬요(四時纂要)』
성현, 『용재총화(慵齋叢話)』 제2권

주술

노래기 침주기는 노래기를 퇴치하는 다양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노래기를 쫓기 위해 “노래기 침준다, 노래기 침준다.”고 외치면서 미리 준비해 놓은 솔가지를 지붕 위에 던지거나 처마 끝에 돌아가면서 끼우고, 주변의 검불을 모아서 태우기도 하는데, 이를 ‘노래기 침주기’라 한다. 이때 솔가지는 침을 상징하고 불은 노래기를 태우는 것을 상징한다. 노래기 침주기는 바늘처럼 뾰족한 솔가지 때문에 초가지붕으로 노래기가 들어오지 못하거나, 서식하던 노래기가 바늘에 찔려 도망간다고 믿는 유감주술적 성격이 강하다.
소나무 잎의 모양이 바늘처럼 생긴데서 벌레를 찔러 퇴치한다는 풍속이 오늘날 각처에 전하는 노래기 침주기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소나무가 지닌 벽사적 의미에 솔잎의 침 모양이 지닌 예방이나 치료효과가 더해져 이러한 풍속이 전해오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속박물관, 「노래기침주기」, 『한국세시풍속사전』

지조

낙장장송들아 너는 어이 홀로 서서
바람 비 눈 서리에 어이하여 푸르렀나
우리도 창천과 한 빛이라 변할 줄이 있으랴
落落長松드라 너 어이 노 셔서
 비 눈 셔리예 어이 여 프르럿
우리도 蒼天과  빗치라 變 줄이 이시랴.
늘 푸르고 청정한 기상을 표현하는 낙락장송은 변함없는 절개를 지닌 채 어떠한 부정적 세력에도 굴하지 않는 지조를 지닌 인간상으로 비유되었다. 이 경우에 소나무는 눈 서리 바람 등과 차별성을 지닌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화자의 삶의 지향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악학습영(樂學拾零)』 778

의리

거년에 「만학」·「대운」 두 책을 부쳐 왔고, 금년에는 또 「우경문편」을 부쳐 왔는데,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것이 아니고, 머나먼 천만리 밖에서 구입한 것이며, 여러 해 걸려서 얻은 것이요, 일시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세상은 물밀듯이 권력만을 따르는데, 이같이 몸과 마음을 쏟아 얻은 것을 권력자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해외의 한 초췌하고 고고(枯槁)한 사람에게 주기를 세상이 권력가에 추세하는 것과 같이 하니, 태사공이 이르기를 ‘권력으로 합한 자는 권력이 떨어지면 교분이 성글어 진다’고 하였는데, 군(君)도 역시 이 세상 사람으로 초연히 권력에 추세하는 테두리 밖을 떠나서 권력으로 나를 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태사공의 말이 잘못된 것인가.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세한 연후에야 송백의 후조를 알게 된다.’고 하였으니, 송백은 사철을 통해 시들지 않는 것이라면, 세한 이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세한 이후에도 하나의 송백인데, 성인이 특히 세한을 당한 이후를 칭찬하였다. 지금 군이 나에게 대해 앞이라고 더한 것도 없고 뒤라고 덜한 바도 없으니, 세한 이전의 군은 칭찬할 것 없거니와, 세한 이후의 군은 또한 성인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이하 생략)

참고문헌

「세한도」 발문

청아

벼슬을 매양하랴 고산(故山)으로 돌아오니
일학송풍(一壑松風)이 이내 진구(塵口) 다 씻었다.
송풍(松風)아 세상 기별 오거든 불어 도로 보내어라
작자는 이 시조에서 명예를 찾아 헤매던 세속을 멀리하고 산 속을 찾아 드니 솔바람이 속세에 더럽혀진 몸을 말끔히 씻어 준다고 했다. 그리고 이왕에 속세와 인연을 끊었으니, 오염된 속세의 기별일랑 돌려보내라고 하면서 그 역할을 솔바람에게 맡기고 있다. 송계연월옹의 시조가 송림에 묻힌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라면, 「송계한담도」는 소나무 그늘 아래서 여럿이 함께 즐기는 풍류의 세계를 그린 것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마음을 같이 하는 벗들이 모여서 소나무 숲이나 계곡 등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풍속은 조선 시대의 문인과 선비들 사이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다. 그들은 송림 사이를 스치는 솔바람 소리를 악보도 없고 곡조도 없는 무현금(無絃琴) 소리로 삼고, 세속의 일을 잊어버리고 화두(話頭) 같은 한담으로 소일하는 것을 참다운 낙으로 여겼다.
이와 같은 태도는 탈속의 경지에서 유교적 절의나 명분을 지킨다는 고답주의(高踏主義) 성향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노장(老莊)은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아집을 버리고 대자연과 함께 만사에 무심히 응하면 홀연히 모든 것을 잊은 것 같고 적적할 수 있어 마음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참고문헌

송계연월옹

초여름

소나무도 봄빛을 저버리지 않아서
억지로 담황색의 꽃을 피웠네
우습다 곧은 마음도 때로는 흔들려서
황금 가루로 사람 위해 단장하는가
松公猶不負春芳
强自敷花色淡黃
堪笑貞心時或撓
却將金粉爲人粧
소나무꽃은 초여름에 피어나는 꽃으로, 문학작품에서는 계절감을 형성하는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이규보는 늦게 피는 송화가 봄빛을 져버리지 않으려고 억지로 피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봄빛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던 곧은 마음도 흔들렸다고 꼬집는다. 소나무꽃이 늦게 피어나는 이유를 해학적으로 해명한 것이다.

참고문헌

이규보, 「송화(松花)」, 『동국이상국후집』 제1권, 고율시(古律詩) 1백 5수

충신

청산 자와송아 네 어이 누웠느냐
광풍을 못 이기어 뿌리 저어 누웠노라
가다가 양공 만나거든 날 여기 있더라 하거라
靑山 自臥松아 네 어이 누엇는다
狂風을 못 이긔여 불희 져어 누엇노라
가다가 良工 만나거든 날 옛더라 고려

박태보의 시조에서는 소나무의 이미지는 간언(諫言)을 하다가 억울하게 죽은 작자의 생애와 결합되어 역사상의 충신을 상징한다. 광풍을 못이겨 저절로 누은 자와송이지만 훌륭한 목수(양공)를 만나면 참된 가치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참고문헌

박태보, 『청구영언』 378

충신의 죽음

간밤에 부던 바람 눈 서리 치단 말인가
낙락장송이 다 기울어 가노매라
하물며 못 다 핀 꽃이야 일러 무엇하리오
간 밤에 부던 람 눈 셔리 치단 말가
落落長松이 다 기우러 가노라
물며 못 다 퓐 곳치야 닐러 므 리오
유응부의 작품에서는 바람과 눈 서리에 기울어 가는 낙락장송은 계유정난(癸酉靖難)에 희생된 김종서(金宗瑞)나 황보인(皇甫仁) 같은 충신들의 죽음을 은유한다.
낙락장송의 남성적 이미지가 충신을 상징했다면 여성적으로는 여인의 인고(忍苦)나 절개를 상징한다.

참고문헌

유응부, 『청구영언』 359

탈속

치원이 서쪽으로 가서 당나라에 벼슬하다가 동쪽 고국으로 돌아오니, 모두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운수가 막혀 움직이면 문득 허물을 얻게 되었으므로 스스로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슬퍼하며, 다시 벼슬할 뜻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유유히 마음대로 생활하며, 산림 아래와 강과 바닷가에 누각과 정자를 짓고 소나무와 대를 심고, 책 속에 파묻혀 풍월을 읊었으니, 경주 남산(南山), 강주(剛州)의 빙산(氷山), 합주(陜州, 합천) 청량사(淸凉寺), 지리산 쌍계사(雙溪寺), 합포현(合浦縣, 마산)의 별서(別墅)가 모두 그가 놀던 곳이다. 맨 후에는 가족을 거느리고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 살았는데, 동복 형인 중 현준(賢俊) 및 정현(定玄)스님과 도우(道友)를 맺어 휴식하고 한가히 지내면서 여생을 마쳤다.

우리나라 역사 기록에는 소나무와 소나무꽃이 현실을 벗어난 탈속(脫俗)의 뜻으로 등장한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돌아와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자 했으나 끝내 소외감을 떨치지 못하고 벼슬길을 단념하였다. 그는 마음대로 생활하며, 산림 아래와 강과 바닷가에 누각과 정자를 짓고 소나무와 대를 심으며 여러 곳의 별장에서 놀았으나 끝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최치원이 현실을 벗어난 행동과 최후의 모습에는 다분히 도교적인 은둔사상이 배어있다.

참고문헌

김부식, 「최치원 열전」, 『삼국사기』 권제45 열전 제6

파랑성

물가의 외로운 솔 혼자 어이 씩씩한고
먼 구름 한하지 마라 세상을 가리온다
두어라 파랑성을 염치 마라 진훤을 막는도다
물의 외로운 솔 혼자 어이 싁싁고
머흔 구룸 恨티 마라 世上을 리온다
두어라 波浪聲을 厭티 마라 塵喧을 막 또다.
윤선도는 소나무가 세상을 가리는 구름과 대조적인 존재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름과 파랑성을 혼동하기 쉽다. 작자는 이를 구별하여 세상의 티끌과 잡음을 막아주는 파랑성이 물가에서 소나무를 보호해준다고 했다.

참고문헌

윤선도, 『고산유고(孤山遺稿)』 64

학의 둥지

구름 걷힌 넓은 하늘에 달은 휘영청 밝은데
솔 둥지에 깃든 학이 맑은 기운에 겨워
온 산의 짐승들 학의 소리 알 리 없건만
홀로 성긴 날개 펄럭이며 밤내 울고 있네
雲掃長空月正明
松巢獨鶴不勝淸
滿山猿鳥知音少
刷盡疏翎半夜鳴
최자는 학의 이미지를 소나무에 대입하였다. 이로 인해 시각적 이미지에 청각적 이미지가 복합되어 입체적인 효과를 자아냈다. 소나무의 아름다움은 이제 오감을 자극하는 미적 체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최자, 「국자감 직려에서 채진봉학의 울음을 들으며[國子監直廬聞採眞峯鶴唳]」, 『동문선』 제20권, 칠언절구(七言絶句)

항상성

바위에 섰는 솔이 늠연한 줄 반가온저
풍상을 겪어도 여위는 줄 전혀 없다
어떻다 봄빛을 가져 고칠 줄 모르나니
바회예 셧 솔이 凜然 줄 반가온뎌
風霜을 격거도 여외 줄 젼혜 업다
얻디타 봄 비츨 가져 고틸 줄 모니.
늘 푸르고 청정한 기상을 표현하는 낙락장송은 변함없는 절개를 지닌 채 어떠한 부정적 세력에도 굴하지 않는 지조를 지닌 인간상으로 비유되었다. 이 경우에 소나무는 눈 서리 바람 등과 차별성을 지닌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화자의 삶의 지향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의미가 있다.
위 시조는 눈 서리 바람의 세력에도 꿋꿋한 지조를 지키는 소나무의 기상을 찬양한다. 즉 푸른빛과 봄빛을 통해 솔이 지닌 외형적 항상성을 찬양했다.

참고문헌

이신의, 『석탄선생문집보유(石灘先生文集補遺)』

생태

소나뭇과의 상록 침엽 교목인 소나무의 꽃이다. 소나무는 높이 35m, 지름 1.8m 정도이며 껍질은 붉은빛을 띤 갈색이나 밑부분은 검은 갈색이다. 바늘잎은 2개씩 뭉쳐나고 길이 8∼9cm, 너비 1.5mm이다. 꽃은 암수한그루로 5월에 핀다. 수꽃은 새 가지의 아랫부분에 달리며 노란색으로 길이 1cm의 타원형이다. 암꽃은 새 가지의 윗부분에 달리며 자주색이고 길이 6mm의 달걀 모양이다. 열매인 솔방울은 달걀 모양으로 길이 4.5cm, 지름 3cm이며 열매조각은 70∼100개이고 다음해 9∼10월에 노란빛을 띤 갈색으로 익는다.
꽃가루는 노랗고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어 멀리까지 전파되며, 다음해 가을에 솔방울이 익고 비늘조각이 벌어지면서 씨가 땅으로 떨어진다. 빛은 노랗고 달착지근한 향내가 나며 다식과 같은 음식을 만드는 데 쓴다.

소나무는 우리 생활에 물질적·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나무이다. 오래 사는 나무로 여겨져 십장생(十長生)에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하게 자란 낙락장송은 장엄한 기상과 품격을 지녀 사군자와 대등하게 간주되었다. 또한 늘 푸른 모습은 눈서리를 이기는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상징하여 민족적 기상으로까지 인식되었다. 높이 피는 소나무꽃과 흩날리는 꽃가루는 계절감이나 황홀한 선경(仙境)을 상징한다.

꽃 생태정보

식물명 : 소나무(솔, 적송)
과명 : 소나무과
학명 : Pinus densiflora
종류 : 목본(나무)
이명 : 홍적송, 송, 미인송, 륙송, 송화분
꽃색 : 연한 황색
계절 : 봄
분포 지리 : 전국 산지
분포 지형 : 해발 1,000m 이하 메마른 땅
생육상 : 상록교목(늘푸른 바늘잎 큰키나무)
높이 : 30~35m
개화기 : 5월 ~ 5월
결실기 : 다음해 9~10월
열매의 형태 : 구과(솔방울열매)
용도 : 관상용, 공업용(목재), 식용(송화분), 약용(꽃, 잎, 열매, 송지)
기타 :
사진제공자 : 김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