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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

합리화

처가집 세배는 앵두꽃을 꺾어 가지고 간다.

이는 처가집 세배는 늦게 가도 된다는 뜻이다. 세배는 정초에 하는 것이 상례인데, 처가의 세배를 앵두꽃이 피는 봄에 간다고 하니 예절이나 격식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처가에서는 이를 이해하고 크게 섭섭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초에 서둘러 처가에 세배 가려는 사람을 조롱할 때나 늦게 처가에 세배 가는 것을 합리화할 때 쓰인다.

참고문헌

송재선, 『우리말 속담큰사전』, 서문당, 1983

앵두주

앵두는 앵두나무의 열매로 6월에 붉게 익으며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데 날로 먹기도 하고 젤리 · 잼 · 정과 · 화채 · 주스 등에 이용한다. 앵두주의 재료는 앵두 1kg, 설탕 200g, 소주 1.8ℓ이다. 앵두는 꼭지를 따고 물로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다. 앵두, 설탕, 소주를 용기에 담은 후 밀봉하고 3개월 정도 숙성시킨다. 빨갛게 숙성이 되면 열매는 건져내고 술만 다른 용기에 옮겨 사용한다. 앵두주는 이뇨 · 보음 · 보양 · 변비 · 피부미용에 효능이 있다.
앵두에는 단백질, 지방, 당질, 섬유소, 회분, 칼슘, 인, 철분, 비타민 A · B1 · C 등을 함유하고 있으며, 사과산 · 시트르산 등의 유기산이 있다. 앵두의 붉은 빛깔은 안토시아닌 색소로 물이나 술에 녹는다. 앵두는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수분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성분이 있어 부종을 치료하고 폐기능을 도와주어 가래를 없애고 소화기관을 튼튼히 하여 혈색을 좋게 한다. 또한, 동상에 걸렸을 때 앵두즙을 내어 바르면 효과가 있다. 한방에서 열매는 이질과 설사에 사용하고, 가지를 불에 태워 재를 술에 타서 마시면 복통과 전신통에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상징사전』 2, 동아출판사, 1995

앵두편

앵두를 삶아 걸러 만든 과즙에 설탕이나 꿀을 넣고 조려 엉기게 한 뒤, 이를 네모지게 썰어 놓은 한과이다. 이것은 1670년 《음식지미방》에 처음 기록되어, 과편 중에서 가장 일찍 소개되었으며, 대표적인 과편류에 속한다. 앵두편은 초여름에 싱싱하고도 잘 익은 앵두를 무르도록 삶아서 걸러 과즙을 받아 만든다. 과즙에 설탕과 꿀을 넣고 조리다가 물에 푼 녹두녹말을 조금씩 넣고 잘 저으면서 은근히 끓인다. 거품을 계속 걷어내면서 조리다가 젤리상태가 되면 그릇에 쏟아 부어 굳힌다. 묵처럼 굳은 앵두편은 네모지게 썰어 담아낸다.
앵두편과 같은 과편(果片)은 과일 중에 신맛을 나는 것을 삶아 걸러낸 과즙을 이용해서 만든다. 앵두는 유기산과 팬틴 성분이 많아서, 오래전부터 가장 많이 애용되어 오던 과편 중 하나이다. 앵두편은 주로 편의 웃기나 생실과의 웃기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앵두편과 같은 과편은 색상이 아름다워 잔치 때 행사용 음식으로 쓰이거나, 제철 과일을 이용해 만들어두었다가 후식으로 먹으면 좋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상징사전』 2, 동아출판사, 1995

앵두화채

앵두에 꿀물을 넣어 만든 화채이다. 잘 익은 빨간 앵두를 2컵 준비한다. 앵두를 깨끗이 씻은 후에 앵두가 부서지지 않도록 주의하여 씨를 제거한다. 물 2컵 정도를 준비하여 여기에 꿀을 넣고 끓여서 차게 식힌다. 앵두 반은 옹자배기에 갈아서 체에 받쳐 꿀물과 섞는다. 화채 그릇에 남은 앵두를 담고 앵두꿀물을 부은 후에 잣을 띄워 낸다. 또한 앵두즙을 넣은 설탕물이나 꿀물에 앵두를 띄우기도 한다.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에 장미, 앵두, 산딸기, 복숭아 등 많은 종류의 화채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일반 서민도 화채를 널리 마셔왔음을 알 수 있다. 앵두화채는 단오절의 절식으로 맛은 달콤하고 새콤하다. 앵두의 신맛은 사과산과 구연산 등의 유기산으로 앵두에 약 1.5% 가량 들어 있으며, 이러한 유기산은 체내에서 신진대사를 도와주며 피로회복의 효과도 있다. 또한 앵두에는 정장효과가 있는 펙틴 성분이 많고, 앵두 씨 안에 아미그달린 성분이 들어있어 기침과 변비의 약재로 사용된다. 앵두는 앵두나무의 열매로, 앵두나무는 장미과의 낙엽관목이며 중국이 원산지인 과수이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상징사전』 2, 동아출판사, 1995

역사

앵두는 앵도 또는 함도(含桃)라고도 했는데 『동의보감』에는 함도는 백과(百果)중에서 제일 먼저 익으므로 옛사람들이 아주 귀하게 여겨 종묘의 제물로 바쳤다고 했다. 『고려사』의 길례대사라는 제사의식에 “4월 보름에는 보리와 앵두를 드린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 전통이 이어져 『세종실록』오례 길례의식조에 ”앵두, 살구를 변(籩)에다 담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종 13년(1518) 5월 18일에 조광조가 “백성들이 앵두, 자두, 황도를 바치는 데에 괴롭게 여기고 있다”고 임금에게 진언하고 있다. 이에 중종이 “외방(外方)에서 바치는 과물(果物)은 다만 천신(薦新)에만 쓰이는 것 뿐 이니, 이는 반드시 민간에다 많이 배정할 것은 없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앵두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제물로 쓰인 과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중종 7년(1512) 윤 5월 3일에 임금이 앵두를 승정원, 홍문관, 예문관에 내렸다는 기사가 있다. 이로보아 앵두가 조선시대에 귀한 과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앵두꽃은 중국과 티베트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건너온 지는 오래되어서 토착화된 향토꽃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문물이 그러하듯 앵두꽃도 불교의 물결을 타고 들어온 꽃이라 생각된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시에 앵두를 읊은 것으로 보아 고려 때 이미 들어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송나라 사신인 서긍이 고려의 문물을 기록한 『고려도경』에 앵두 맛이 시기가 초맛과 같다고 한 점으로 보아도 앵두꽃이 우리나라에서 가꾸어진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최영전, 『한국의 민속식물』, 1991

효심

세자인 문종이 경복궁 후원(後苑)에 손수 앵두나무를 심어 매우 무성하였는데 익은 철을 기다려 세종께 드렸다. 세종은 앵두를 맛보고 기뻐하시기를 “바깥에서 올린 것이 어찌 세자가 손수 심은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중종 5년(1510) 3월 17일에 특진관 심정(沈貞)은 “문종이 앵두나무를 기르며 손수 뿌리에 물을 주고 그 열매를 세종께 드렸습니다. 어찌 진어할 다른 물건이 없겠습니까. 효도를 위해서는 하지 않는 일이 없으므로 그런 것입니다”고 말하였다.

참고문헌차

박상진, 『궁궐의 우리나무』, 눌와, 2001.

꽃 생태정보

식물명 : 앵도(앵도나무)
과명 : 장미과
학명 : Prunus tomentosa
종류 : 목본(나무)
이명 : 함도, 앵두, 앵두나무
꽃색 : 흰색, 연한 홍색
계절 : 봄
분포 지리 : 전국 각지
분포 지형 : 산기슭 양지 반야생상태로 자라며 집주변에 심는다.
생육상 : 낙엽관목(잎이 지는 떨기나무)
높이 : 2~3m
개화기 : 4월 ~ 5월
결실기 : 6월
열매의 형태 : 핵과(굳은씨열매)
용도 : 관상용, 식용(열매), 밀원자원(꽃)
기타 :
사진제공자 : 김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