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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나물

하루는 내가 통판(通判)과 식사하는데, 그릇에 식초를 버무린 누른색의 나물이 있었다. 먹으니 소담하고 구미에 맞아서 송이버섯보다 나았다. 내가 이것이 무엇인지 묻자, 통판은 “이 나라 산에 많이 나는 황화채입니다.” 하였다. 나는 본 적이 없어서, 하인을 불러 그것을 물으니, “이는 ‘광채(廣菜) 곧 넙믈’이며, 시골사람들은 단지 이 잎만 먹고 꽃을 먹을 줄 모릅니다.” 하였다. 통판은 “이 나물은 비장을 원활하게 하며, 위장에도 이롭고, 맛도 뛰어나니 진짜 신선의 풀입니다. 중국에서는 오직 남쪽 지역에서 자라서 옛사람들은 이를 진귀하게 여겼는데, 조선인들은 안타깝게도 그것을 먹을 줄 모릅니다.” 하였다. 6,7,8월 경에 꽃술을 제거하고 그것을 따서 물에 씻은 뒤 살짝 데쳐서 식초에 버무려 먹었는데 신선의 맛이 있기가 나물 중에 으뜸이었다. 이후로 주방 사람에게 시켜 그것을 뜯어오게 한 뒤 조석으로 먹었는데,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관서(關西)의 산에 가장 많으며 길가에서도 잘 자란다.
一日。與通判對食。盤中有黃菜。和醋作菜。食之甚柔滑。且疏淡。適口味勝松茸。問是何物。曰。是黃花菜也。貴國山山多有之。可喜。余詳見則不曾覩也。仍示下人。則是我國俗名廣菜。넙믈 鄕人只知食葉而不知食花云。通判曰。此菜通脾。利人腸胃。味又極佳。眞仙草也。中國只南方有之。故人頗珍之。可惜貴國有之。不知食也。今若因我見採。則山神必怪我。因大笑。六七八月間方盛。去花鬚。淨水微煎一沸。和醋食之。入口覺有仙味。菜中第一也。自此使廚人採來。朝夕喫之。愈久不厭。關西山最多有。好生路傍云

참고문헌

「月沙先生別集」, 『壬辰避兵錄』 제1권 雜著

망우

정조가 말하기를 “‘언득훤초(焉得諼草)’에 대해 『집전』에서는 “훤초는 합환(合歡)이니, 이것을 먹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을 잊게 한다.” 하였는데, 이것은 『모전』 “훤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을 잊게 한다.”는 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모전』에서는 훤(諼)을 곧바로 풀이름으로 삼은 것이 아니고 다만 그 뜻에 근본해서 말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정의(正義)』에서 이르기를, “훤(諼)은 풀이름이 아닌데 『집전』에서는 문세가 곧바로 풀이름으로 풀이한 것 같다. 그리고 합환 두 자를 첨가해 넣은 것은 더욱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듯하다. 양생론(養生論)에서 ‘합환은 분(忿)이 나는 것을 없애 주고 훤초(萱草)는 근심을 잊게 해 준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근심을 잊게 해 주는 것은 훤초이지 합환은 아니다.” 하였다. 이것은 혹시 잘 살피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별다른 의의(意義)가 있는 것인가?“
홍이건이 대답하였다. “‘훤초(諼草)’의 훤(諼) 자를 『모전』에서는 망우(忘憂)로 해석하였고, 『정의』에서는 “훤의 훈(訓)은 망(忘)인데, 풀이름은 아니다.” 하였고, 『집전』에서도 “훤은 망(忘)이다.”고 하여, 여러 설이 그다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초강목』에서는 이르기를, “훤초(萱草)는 풀 종류로서 지금의 황화채(黃花菜)가 바로 이것인데, 이른바 ‘훤초(萱草)는 근심을 잊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합환은 나무 종류로서 지금의 야합화(夜合花)가 바로 이것인데, 이른바 ‘합환은 분(忿)이 나는 것을 없애 준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집전』에서는 이것을 합쳐 하나로 삼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그 뜻을 분명히 알 수 없지만, 그 뜻은 대개 망우초(忘憂草)가 사람을 기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지 풀과 나무를 나누어서 말한 것은 아닙니다. 이 밖에 다른 뜻은 없는 것 같습니다.”(<弘齋全書> 제84권, 經史講義)

원추리꽃을 집안에 심으면 집의 부귀영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원추리의 꽃봉오리 모양이 사내아이의 ‘고추’를 닮은 탓에 집안에 심기도 한다.

참고문헌

장정룡, 「강릉단오제」, 『한국세시풍속사전』

어머니

조선의 영조 27년(1751) 2월 27일에 대왕대비전의 존호(尊號)를 가상(加上)할 때에 원추리(萱草)가 나타난다. 임금의 반교문에 이르기를 “자성(慈聖)의 연세는 70세에 가까우신데 국모로 계신지는 반백년 가량 되었다. 훤초(萱草: 원추리)의 싹이 새로 싹트니 봄빛이 바로 삼양(三陽:주역의 괘)에 속한다”고 하였다. “迨聖壽屆近七之期, 而母儀莅半百之數。 萱芽新茁, 春暉政屬於三陽”
순조 13년(1813) 12월 13일에 왕이 왕대비의 회갑을 맞이하여 교문을 반포하였다. 이 글에서 “신령스러운 원추리풀이 빛남을 장구히 할 것이다” “靈萱長輝” 고 하였다.
원추리가 어머니(할머니)를 상징한다는 것은 중종 31년(1536) 10월 28일 강원도 관찰사 윤풍형(尹豊亨)이 병든 어머니를 모시려 체직을 청하는 상소에서 잘 알 수 있다. 이 글에 “신(臣)의 어미는 지금 82세여서 북당(北堂)에 시드는 봄의 원추리요 서산(西山)에 지는 저녁 해와 같으니 신이 모시고 살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臣母年今八十又二, 萱衰北堂之春, 日薄西山之夕, 自今以往, 臣得與之同居, 將幾許久邪
『시경』의 백혜에는 ‘뒤 뜰에 (훤초를) 심어 볼텐데’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뒤뜰로 번역한 ‘배(背)’는 북방을 의미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로 보낸 여성’, ‘자식의 무사를 비는 어머니’로 확대 해석되어 훤초는 자애로운 어머니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지금도 모친절(母親節)에 카네이션 대신 훤초를 선물하거나 나이 드신 어머니 생신에 ‘수훤도(壽萱圖: 장수를 상징하는 영석(靈石)과 훈초를 그린 그림)’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참고문헌

「중종실록」, 『조선왕조실록』

역사

원추리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사랑받아 온 아름다운 화초로 6종이 자생하고 있다. 원추리를 물명고(物名考)에는 “원쵸리”라 하고 물보(物譜)에는 “원츌리”라 했는데 아마도 중국명인 훤초(萱草)가 변하여 된 이름으로 생각된다.
훤초(萱草)는 근심을 잊게 한다는 뜻의 이름으로서 한나라 때의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說文解字)』에 ‘훤(萱)은 사람의 근심을 잊게 하는 풀이다’ 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 진나라(3세기)대에는 사람과 헤어질 때는 작약을 선물하고, 먼 곳으로 떠난 사람이 돌아오게 하고 싶을 때는 당귀를 선물하며, 근심을 잊게 하기 위해서는 원초를 선물한다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점은 당나라 때의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청화궁(淸華宮)에서 모란꽃을 즐기다가 “오직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하고 모란꽃은 술을 더욱 잘 깨게한다”고 한 싯구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나라에도 전해 내려와 집 뜰이나 장독대 옆에 심어져 있어 시인들의 시제로서 시름을 잊게 했다.

의남초

손수 의남초의 꽃을 따노니
새로 백자화가 활짝 피었네
햇무리가 진 듯 두 뺨이 붉게 달아올라
더위를 씻고자 빙과를 씹는도다
手摘宜男草
新開百子花
潮紅暈雙臉
沃暍嚼氷瓜
옛날 어머니들은 임신하면 이 봉오리를 머리에 꽂고 다니는 풍습이 있어, 이 꽃을 ‘의남초(宜男草)’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임산부가 이 꽃을 왼쪽 머리에 꽂고 다니거나 저고리 깃에 꽂고 다니면, 뱃속에 든 태아가 계집아이일지라도 원추리의 주력(呪力)으로 사내가 된다고 믿는다. 의남은 아들을 많이 낳은 부인을 부르는 말로, 일종의 남근숭배 사상의 잔영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子夜四時歌」, 『상촌집』 제4권, 樂府體

모애초

원추리는 가을이 지나면 마른 잎이 떨어지지 않고 겨울 동안 새싹이 자랄 때까지 싹을 덮어 거름 역할을 한다. 이런 모습을 엄마가 아기를 보호하는데 비유하여 ‘모애초(母愛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부인들이 아이를 가졌을 때 원추리 꽃을 심거나 그 잎을 말려서 차고 다니면 반드시 아들을 낳으며 걱정을 잊을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러한 속설의 기원은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시인 조식(曺植)이 宜南花訟(의남화송)에서 의남화를 ‘사내아이가 태어날 좋은 징조’, 부부화합, ‘자손번창’으로 찬양하는 글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진대(晉代)에 이르러 ‘임신 중인 여성이 이 꽃을 몸에 지니면 반드시 사내아이를 낳는다’라는 구체적인 기술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도 중국의 이러한 관념이 전해졌다. 조선의 회화작품인「화접도」는 원추리와 바위, 나비를 그린 그림이다. 여기서 원추리는 의남(宜男)을 상징하고 나비와 바위는 익수(益壽)를 의미해 ‘의남익수’의 뜻으로 아들을 많이 낳고 오랫동안 장수한다는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

참고문헌

나카무라고이치, 조성진 ․ 조영렬 역, 『한시와 일화로 보는 꽃의 중국문화사』, 뿌리와 이파리, 2004

합환화

비단 치마 물에 비쳐 쪽빛을 빼앗았고
해장술 낯에 올라 붉은 기운 갓 익었네
요쟁을 골라타며 강남을 꿈꾸는데
시름을 따지는 양 봄 제비는 종알종알
가슴 앞에 속절없이 의남초(宜男草)는 달렸는데
한없는 이별 정은 삼월이라 삼질일레
羅裙照水色挼藍
卯酒入面紅初酣
瑤箏閑品夢江南
評愁語燕春喃喃
胸前空帶翠宜男
無限離情三月三

이 꽃을 합환화(合歡花)라고 부르는 것은 꽃봉오리의 생김새 때문이다. 부부 화합의 기쁨은 득남의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원추리꽃이나 순을 삶아 먹고 합방하면 아들을 가진다고 습속이 있다.
한국화에 ‘바위 옆에 원추리를 그린 그림’이 있는데, 바위가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한다면 이 그림은 결국 생남 장수(生男長壽)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여겨진다. 그런 이유에서 이런 그림은 여자의 방에 대개 걸기도 한다. 그리고 원추리 꽃의 심(꽃술)을 따서 버리고 밥을 지을 때 꽃을 넣어 밥을 물들인다. 이 밥은 근심을 잊으려는 벽사(辟邪)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

참고문헌

「남전일난옥생연(藍田日暖玉生煙)의 칠자(七字)를 운으로 삼아 무산(巫山) 장옥랑(張玉娘)에게 유증(留贈)하다」, 『성소부부고』 제2권, 附錄

황화채

『동의보감』초부(草部)에는 훤초(萱草)]는, 6~7월 꽃이 한창 필 무렵, 꽃술을 따 버리고 깨끗한 물에 한소끔 끓여 내어 초를 쳐서 먹는다. 입에 넣으면 맛이 신선 음식 같아 보드랍고 담박함이 송이보다 나아서, 남새 중에서 으뜸이다. 중국 사람으로 통판(通判)을 지낸 군영(君榮)이 이 나물을 만들어 먹었다 한다.
황화채는 넘나물 또는 광채(廣菜)라고도 하는데, 원추리의 꽃과 잎을 데쳐, 식초, 소금, 기름에 무친 것을 말한다. 또 세간에서는 원추리의 어린 싹과 꽃을 따서 김치[菹]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서는 6~7월 꽃이 한창 필 무렵 꽃술을 따서 깨끗한 물에 한소금 끓여내어 초를 쳐서 먹는다고 했다. 입에 넣으면 맛이 신선 음식 같아서, 부드럽고 담백함이 송이보다 나아서 남새 중에서 으뜸이라고 하였다. 또 조선인들이 이 꽃을 말린 것을 중국 땅에 와서 팔았는데, 이를 황화채로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참고문헌

「치선(治膳)」, 『산림경제』 제2권

꽃 생태정보

식물명 : 원추리
과명 : 백합과
학명 : Hemerocallis fulva
종류 : 초본(풀)
이명 : 등황원추리, 등황옥잠, 금침채, 넘나물, 훤초근
꽃색 : 등황색, 적황색
계절 : 여름
분포 지리 : 전국 각지
분포 지형 : 산기슭 초원 양지
생육상 : 다년생초본(여러해살이풀)
높이 : 100cm 안팎
개화기 : 7월 ~ 8월
결실기 : 8~9월
열매의 형태 : 삭과(튀는열매) 익으면 과피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여러 개의 씨방으로 된 열매
용도 : 관상용, 식용(새싹), 밀원자원(꽃), 약용(뿌리)
기타 :
사진제공자 : 김태정, 구례야생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