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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겨례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 꽃은
우리 님이 즐겨즐겨 꺾어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남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이흥렬의 가곡은 연가가 아닌 조국의 비운(悲運)을 노래한 저항곡이다. 여기에서 「바위고개」는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이고 진달래는 우리의 겨레이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의 구절은 조국인 임은 없어도 우리 겨레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른 봄부터 산골짜기에 메아리치는 한 맺힌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연분홍빛 진달래꽃잎에 스며들 듯 이 땅에서 살아온 백성들은 얼룩진 강산에 피어난 진달래꽃을 붙들고 이와 같이 하소연하였다.

참고문헌

이흥렬, 「바위고개」

고향길

어제는 청석령을 오늘은 고령을 넘으니
겹친 봉우리 다 지나 내 집에 온 것 같네
사월이라 변방의 산은 봄바람 차가운데
숲 사이에 활짝 핀 두견화 보기 좋구나
昨行靑石今高嶺
過盡重巒似到家
四月邊山寒料峭
林間喜見杜鵑花
진달래꽃은 타향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꽃이다. 사행(使行)에서 돌아오던 백사 이항복은 자기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만발한 두견화에서 찾았다. 타향을 떠나서 고향의 경계에 들어와 비로소 안온함을 느끼게 만드는 두견화는 숲 사이에서 두드러진 자태로 피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참고문헌

이항복, 「고령(高嶺)의 고개 위에 두견화(杜鵑花)가 만발하다」, 『백사별집』 제5권 조천록(朝天錄) 하(下) 4월 23일

고향의 기억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창작했다는 「고향의 봄」은 전국민이 애송하는 동요이다. 고향의 뒷동산에 복숭아꽃 살구꽃과 함께 피어있던 진달래꽃은 화자가 어린 시절에 놀던 고향의 이미지를 함축한다. 그러나 이 노래를 알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진달래꽃하면 고향을 떠올린다. 그만큼 진달래꽃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고향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이원수, 「고향의 봄」 제1절, 『어린이』 1926년 4월

꽃 중의 꽃

아애야 물어 보자 꽃중에 무슨 꽃이
색도 좋고 맛도 좋아 만화 중에 제일이냐
색미가 구전하여 백사를 제폐하고
지기지우 작반하야 인간구실 할터이니
조금도 기만 말고 바른대로 일러다오
모춘삼월 산야회가 형형색색 다좋으나
그중에 제일화는 두견화가 제일이라
화전가에서는 많은 꽃 중에서 진달래는 색과 맛을 지닐 뿐만 아니라 짝을 모아 인간들에게 이로운 구실을 하는 진달래를 제일의 꽃으로 인정하고 있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함께 지닌 진달래를 서민들은 완전한 존재의 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화전가」

남성미

삼월 나면서 활짝 핀
아! 늦봄의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자태를
지니고 나셨도다.
아! 동동다리
三月 나며 開
아으 滿春 욋고지여
미 브롤 즈
디녀 나샷다
아으 動動다리

고려가요인 「동동」에서는 진달래꽃이 좀더 의인화 단계에 근접하고 있다. 작품의 화자는 진달래꽃을 보면서 곧바로 남이 부러워할 님의 모습을 연상한다. 여기에서 남성의 아름다운 자태를 꽃으로 비유한 상상력은 자못 독창적이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동동」, 고려가요

망우초

자청비는 옥황상제의 아들 문도령과 사랑을 나눈다. 그러다가 문도령이 박씨 하나를 주며 “박이 크게 자랄 때 돌아오겠소”라고 하고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러나 가을과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도 문도령은 소식도 없었다. 매일 문밖을 내다보던 자청비는 남의 집 아이들이 소 등에 땔나무를 싣고 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 소머리에는 빨간 진달래꽃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가지면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종에게 “다른 집 종들은 저렇게 나무를 해 오는데 너는 뭘 하느냐? 저기 보아라. 소머리에 꽂힌 진달래가 얼마나 보기 좋으냐?”라고 말하였다.
무속신화인 「세경본풀이」에서 자청비는 옥황상제의 아들인 문도령과 기약 없는 사랑을 나눈다. 인내를 지니고 문도령을 기다리는 자청비는 진달래를 통해 시름을 잊으려한다. 자청비는 진달래를 기다림을 견디게 하는 망우초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세경본풀이」, 『제주도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0

민주화의 봄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오.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진달래의 선구자적 성질은 민주화를 소망하는 정신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시인 이은상은 1960년 4월혁명을 기리며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이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피울음에 진달래가 피어나듯 민주화를 소망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날 것임을 노래하였다. 여기에서 진달래는 민주화를 소망하는, 그리고 민족의 자주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런 꽃으로 자리잡고 있다. 진달래는 민주화의 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이은상, 「4월혁명기념탑에 새김」

방황

천지가 넓고 넓은데 나는 집이 없으니
하루 저녁에 등불 돋우고 아홉 번 일어나 탄식하네
누가 멀리 나온 사람에게 귀가 있게 하였는가
두견새가 두견꽃에 피 쏟으며 우나니
乾坤蕩蕩我無家
一夕挑燈九起嗟
誰使遠遊人有耳
杜鵑啼血杜鵑花
진달래꽃은 우리나라 전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어서, 현실적으로도 고향을 느끼게 하는 꽃이다. 그래서 따뜻한 봄이 되면,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은 으레 고향 뒷동산에 아름답게 피어 있을 진달래꽃을 떠올리게 된다.
윤여형의 작품에서는 집 없는 떠돌이의 탄식이 두견화의 울음과 연결되어 있다. 고향을 떠나왔기 때문에 슬픈 화자와 동일시된 두견새의 소리는 처절하기 이를 데 없다. 여기에는 정처 없는 넋이라는 두견새의 의미가 아직 남아 있다.

참고문헌

윤여형, 「관동여야(關東旅夜)」, 『동문선』 제21권, 칠언절구(七言絶句)

봄의 정령

간 밤에 불던 바람 봄소식이 완연하다
붉은 것은 진달래요 푸른 것은 버들이라
아이야 나귀에 술 실어라 봄 바중 가자
간 밤에 부던 바람 봄 소식이 완연하다
부리운 것은 진달래요 푸른 것은 버들이라
아희야 나귀에 술 실어라 봄 마중 가자.
진달래는 봄의 시작을 말해주는 봄의 전령으로 상징된다. 진달래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이른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 이 나라의 산을 붉게 물들이며 봄의 서장을 장식한다. 그래서 진달래는. 그보다 먼저 피는 꽃도 있지만 봄꽃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작자미상의 시조에서도 봄소식을 처음 전하는 것은 진달래와 버들이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잡지(雜誌)』 257

봄의 축제

어느덧 춘절 드니 초목군생(草木群生) 다 즐기네
두견화 만발하고 잔디는 속닢 난다
썩은 바자 쨍쨍하고 종달새 모두 뜬다
어는듯 츈졀 드니 초목군 다 질기네
두견화 만발고 잔듸닙 속닙 난다
썩은 바 고 종달 도두 다

가사인 「노처녀가」에서 진달래는 초목군생들과 종달새 심지어 썩은 바자까지도 생명력으로 꿈틀거리는 봄의 축제에서 중심적인 사물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노처녀가(老處女歌)」 일부, 『증보신구잡가』

불행한 여인

영변(寧邊)의 약산 동대(藥山東臺)
이지러진 바위틈에 진달래야 피었구나
세상(世上) 풍정(風情) 네 모르리 신세(身世) 고요 하건마는
그윽한 산골짜기 외롭기 가이없다
화보(花譜)에 하였으되 무정(無情)한 남편에게
소박 맞은 신세라니 진달래야 참말이냐
네 모양 추하더냐 네 행실 부정(不貞)터냐
비금주수(飛禽走獸) 이웃하여 심심산곡(深深山谷) 웬일이냐
동원(東園) 도리(桃李) 번화 속에 유자(遊子) 삼춘(三春) 놀건마는
무지한 초동목수(樵童牧豎) 아낌없이 꺾어가니
외로워서 있단 말인가 난리(亂離) 겪기 일반일네
그중에 열매 없어 꽃 지면 그만이오
아들 낳고 딸 낳기도 그도 또한 틀렸구나
여보소 세상 사람 진달래라 웃지 마소
소박 밎은 아낙네가 인간에도 있을지며
무도한 이 세상의 난리 맞기 다만이라
아들딸 못 낳는 이 인간인들 없을소냐
이제 모두 세상 사람 마음대로 못할리니
하필코 진달래라 웃지 말고 동정하고
꽃이라 찾아가니 슬픈 신세 뿐이로다
영변의 약산동
이즈러진 바위틈에 진달래야 피여꾸나
세상풍정 네모르리 신세고요 하건마는
그윽한 산골짝의 외롭기 가이없다
화보의 하였으되 무정한 남편에게
소박마진 신세라니 진달래야 참말이냐
네모양 추하드냐 너실 부정트냐
비금주수 이웃하야 심심산곡 웬일이냐
동원도리 번화속에 유자삼춘 놀건마는
무지한 초동목수 악낌업시 꺾거가니
외로와서 잇단말가 날니격기 일반일
그중의 열업서 지면 그만이오
아들낫고 딸낫키도 그도한 틀려고나
여보소 세상사람 진달래야 웃지마소
소박마진 아낙가 인간에도 잇을지며
무도한 이세상의 날리맛기 다만이라
아들 못낫는니 인간인들 업슬소냐
이제모 세상사람 마음대로 못할리니
하필코 진달래야 웃지말고 동정하고
치라 차자가니 슬픈신세 이로다

봉화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에서 진달래꽃은 여인의 육체적인 형상뿐만 아니라 행동과 사고, 그리고 전형적인 인습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통 받는 모습으로까지 생동감 있게 형상화되었다. 그윽한 산골에 피어있는 진달래는 자식을 낳지 못해 남편에게 소박맞은 불행한 여인의 표상이다. 화자는 진달래를 위로하는 과정에서 여인의 현실을 이해하고, 이제는 다른 사람 마음대로 못할 것이라는 주체적인 인식에 도달한다. 진달래꽃은 이제 단순한 미적 상징을 넘어서 주체적인 삶을 인도해주는 새로운 상징의 차원으로 올라선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꽃노래」, 봉화지방 민요

비애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지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서정주의 「귀촉도」는 진달래꽃의 관습적 상징을 현대문학에 접목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촉(蜀)나라 망제(望帝)의 전설은 “진달래 꽃비가 오는” 길로 떠나간 죽은 님의 이미지와 “제 피에 취한 새”로 인유(引喩)되고 있다. 하지만 진달래 꽃비가 삶의 이곳과 죽음의 저곳을 공간상으로 구분 지으며, 귀촉도의 울음이 독백적인 여성 화자의 비애를 극한적으로 형상화하는 점은 서정주 시인이 성취한 새로운 창안이다.

참고문헌

서정주, 「귀촉도」, 선문사(1948년 4월)

생명력

춘삼월 이른 꽃은 영변의 진달래라
얼른 피어 얼른 지니 두고두고 아까와라
핀 날부터 새빨가니 서도각시 부끄러라
영변의 진달래야 피긴 피되 더러는
더디 피던 못하던가

진달래로 유명한 영변지방의 민요에서는 진달래가 일찍 피고 일찍 지기 때문에 아까운 꽃이라고 표현한다. 이 새빨갛게 피는 꽃은 서도 각시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생명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듯 진달래는 봄의 시작을 말해주는 봄의 전령으로 상징된다. 진달래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이른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 이 나라의 산을 붉게 물들이며 봄의 서장을 장식한다. 그래서 진달래는 그보다 먼저 피는 꽃도 있지만 봄꽃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영변지방 꽃노래

서글픔

척촉꽃이 빨간 피눈물 흔적 있으니
학림사에는 응당 예전의 넋이 돌아왔구나
산 남쪽 산 북쪽은 서로 마주 비치고
봄비 봄바람 속엔 꽃들이 한창 피는구나
꽃소식 지기 전에 푸른 절벽이 연달았고
무수한 봄풍광은 붉은 구름에 막히었구나
해마다 두견화 필 때 서글프기 그지없음은
촉제의 일천 소리가 원통함을 호소함일세
躑躅紅酣血淚痕
鶴林應復舊時魂
山南山北映相似
春雨春風開正繁
香信未銷連翠壁
韶光無數隔紅雲
年年花發堪惆悵
蜀魄千聲政訴寃

서거정의 작품에서는 척촉화의 빨간 피눈물이 봄철의 서글픔을 환기한다. 봄철에 꽃이 필 때마다 느끼는 서글픔은 독자들이 배경지식으로 두우의 전설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작품에 표현되지 않은 전거(典據)가 작품 이해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고전문학에서 관습적인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

참고문헌

서거정, 「척촉화(躑躅花)」, 『사가시집』 제4권, 시류(詩類) 영물(詠物) 43수

선구자

진달래꽃은 봄의 선구자외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엷은 꽃잎은
선구자의 불행한 수난이외다.

어찌하여 이 가난한 시인이
이같이도 그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처럼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오려는 봄의 모양을 그 머릿속에 그리면서
찬 바람 오고 가는 산허리에서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
박팔양의 작품은 식민통치하에서 해방을 염원하는 우리 겨레에 바친 시였다. 그는 위의 작품에서 진달래를 의인화하여 봄을 알리는 선구자의 꽃이라고 읊고, 찾아올 겨레의 봄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에 견주었다.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고는 모진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모습은 시인이 추구했던 선구자적인 삶의 자세이기도 했다.

참고문헌

박팔양,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일부, 『학생』

슬픔의 정서

새빨간 핏빛의 진달래꽃이 질 때,
애달픈 맘의 진달래꽃이 떨어질 때,
속을 볶이게 하는 저녁볕이 넘을 때,
저무는 봄에도 젊은 날이 져갈 때,
촌(村)집의 정(灯)불이 발하게 빛을 놓을 때
어이없이도 나의 영(靈)은 혼자 울고 있어라.
새간 피빗의 진달내이 질,
애닯은맘의 진달내이 러질,
속을 복기게하는 저녁볏이 넘을,
점으는봄에도 점은날이 저갈,
村집의灯불이 발하게 빗을 노흘
어이업시도 나의靈은 혼자 울고잇서라.
척박한 환경에서 진달래꽃이 붉게 피어나는 모습은 슬픔의 정서를 환기한다. 그것은 개인적인 정황에 따른 슬픔이거나, 숱한 슬픔과 서러움을 간직해왔던 민족적인 서러움으로 표현되었다.
김억의 작품에서는 핏빛으로 핀 진달래꽃의 시각적 이미지가 낙화, 저녁볕의 모습, 젊은날의 지나감, 촌집의 등불 등으로 확장되면서 하강적으로 어두워지는 시간적 질서를 따라 형상화되었다. 여기에서 진달래꽃은 시인의 감성을 촉발하는 매개체이지만 다분히 개인적이고 막연한 감상적 수준에서 표현되고 있다.

참고문헌

김억, 「새빨간 핏빛의 진달래꽃이 질 때」, 『해파리의 노래』

신하의 눈물

촉나라 혼백은 소리마다 피를 토하고
산류는 나무마다 꽃이 붉도다
시절에 느껴 우는 외로운 신하의 눈물이여
봄바람에 너와 함께 씻어 보리라
蜀魄聲聲血
山榴樹樹紅
孤臣感時淚
共爾灑春風
이식은 “촉나라 혼백”인 두견새의 울음이 토해낸 진달래(산류)의 붉은 꽃과 외로운 신하의 눈물을 병치하였다. 이런 작시(作詩) 방법을 통해, 억울한 제왕의 죽음을 뜻하던 진달래꽃은 신하의 외로움을 함축한 소재로 전환되었다.

참고문헌

이식, 「두견화와 두견새를 읊은 절구」중 첫 수, 『택당선생』 속집 제5권 시(詩)

아름다운 여인

성덕왕 때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지금의 명주(溟州)―로 부임할 때 바닷가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 곁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데, 높이는 천길이나 되는 그 위에는 척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水路)는 이것을 보고 가까이 모시던 이들에게 청했다.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소?”
종자들은 대답했다.
“그곳은 사람의 발자취가 이르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러고는 모두 안 되겠다 했다. 그 곁으로 한 늙은이가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와서는 또한 가사를 지어 바쳤다. 그 늙은이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이렇다.
짙붉은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다
聖德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今溟州) 行次海汀晝饍 傍有石 如屛臨海 高千丈 上有花盛開 公之夫人水路見之 謂左右曰 折花獻者其誰 從者曰 非人跡所到 皆辭不能 傍有老翁牽牛而過者 聞夫人言 折其花 亦作歌詞獻之 其翁不知何許人也
老人獻花歌曰 紫布岩乎邊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肹不喩慚肹伊賜等 花折叱可獻乎理音如

「헌화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일찍이 진달래꽃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친 척촉(躑躅)이라는 꽃이 바로 진달래의 한자 표기이다. 수로부인이 갖고자했던 진달래꽃은 노인까지도 위험을 무릅쓰고 꺾어올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사실상 수로부인의 미모와 대등한 값어치를 지니는 사물이다. 수로부인의 미모와 진달래꽃을 대응시키는 상징적 수법을 구사한 것이다.

참고문헌

일연, 「수로부인(水路夫人)」, 『삼국유사』, 제2권 제2 기이편(紀異篇) 하(下)

아름다움

꽃아 꽃아 참꽃아 이산 저산 피는 꽃이
우리 처녀 브롤레리
꽃아 꽃아 참꽃아 그늘 밑에 피는 꽃은
이 꽃으로 끊어다가 머리 위에 꼽아노니
범나비도 꽃을 따라 머리 위로 넘노난다

진달래꽃은 그 붉은 색채와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대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문학적 형상화는 다양한 단계에 걸쳐 나타난다.
경북 포항지방 민요에 나타난 진달래꽃은 처녀들이 부러워할 아름다운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아직 처녀들과 동일시되거나 상징화되기 이전의 장식적 대상에 머물러 있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북송리

약재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卜智謙)에 얽힌 전설이다. 복지겸이 왕건이 통일할 때 공을 세우고 나라의 지략가로 활약하다가 노후에 고향인 면천으로 돌아왔다. 그가 원인 모를 병이 들어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도 병이 낫지 않자, 그의 어린 딸 영랑이 아미산(면천 소재)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다. 어느날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이르기를 “날이 새면 은행나무 두 그루를 구해다가 뜰에 심고 앞산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따 안샘(지금 면천초등학교 뒤에 있는 우물)의 물로 술을 빚어 100일 후에 드리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했다. 영랑이 그대로 하였더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영랑이 정성스럽게 심고 가꾼 은행나무는 지금도 면천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다.
고려의 복지겸 전설은 현재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인 면천두견주의 유래와 관련된다. 면천두견주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려던 딸의 간절한 마음으로 100일 동안의 기도 기간을 통해 숙성된 것이다. 진달래 꽃잎을 재료로 하여 향기가 좋으면서도 100일간의 숙성을 통해 다양한 약성이 우러나는 술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고 약으로도 쓸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참고문헌

구술자 미상, 박경숙, 「면천은행나무와 두견주 전설」, 『우리마을 뿌리모음 유서깊은 면천』,당진군면천면마을뿌리모음지편찬위원회, 1991

완전한 존재

연꽃이 좋다하여도
연못 안에 늘어지고요
버들꽃이 좋다하여도
눈비 맞아서 부러지고요
설중매화가 좋다하여도
눈비 맞아서 부러지고요
해바라기가 좋다하여도
해를 안고야 돌아가고
외철쭉 진달래야 이산 저산 만산중에
봉지봉지 피었구나.
무속 제의(巫俗祭儀)에서 구송(口誦)되는 무가(巫歌)에는 진달래꽃이 흔히 등장한다. 강릉단오제의 후반부에 극락으로 가는 망자의 넋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불리는 「꽃굿노래」에서는 진달래를 가장 귀한 꽃으로 찬양하고 있다. 연꽃 매화 버들 해바라기는 일반인들이 모두 중시하는 꽃들이지만 각각의 한계도 지닌 것들이다. 아무데나 피어있는 진달래꽃이야말로 앞의 꽃들보다 더욱 완전한 것이라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작자미상, 「꽃굿노래」, 『강릉단오제』

이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藥山
진달내
아름다 가실 길에 리우리다
가시는 거름겨름
노힌 그츨
삽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니우리다

김소월의 작품에서는 떠나는 임을 보내는 여인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아름답고 처절한 사랑이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인고(忍苦)의 마음을 바탕으로 동양적인 체념과 운명관으로 승화되었다. 이 시에서 진달래꽃은 이별의 비애를 헌신적 사랑과 자기 희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전통적 여인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참고문헌

김소월, 「진달래꽃」, 『진달래꽃』

죽음

삼천 궁녀 온갖 장식 누구 향해 자랑할까
탄현으로 적의 깃발이 순식간에 지나왔네
천고의 낙화암 절벽엔 물결이 일렁이는데
아리땁던 모습 이제 두견화로 피어났구나
粧成百寶向誰誇
炭峴旌旗瞥眼過
千古斷巖波浪裏
餘姸今入杜鵑花

남효온의 회고시에 등장하는 두견화도 죽음을 상징한다. 작자는 자랑할 이 없이 안타깝게 죽고 말았던 궁녀들이 천고의 뒤에 두견화로 피어났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견화는 억울한 죽음이라기보다는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정서로 변용되었다.

참고문헌

남효온, 「여(扶餘) 회고(懷古)」부 10수 중 여섯 번째, 『추강집』 제3권

죽음의 비애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중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그림자 푸른 산을 헤매는구나
밤마다 잠을 청하나 잠들 길 바이 없고
해마다 끊으려 애써도 끝없는 한이로구나
울음소리 새벽 산에 그치면 그믐달이 비추고
봄 골짜기엔 토한 피 떨어져 꽃이 붉구나
하늘은 귀 먹어 저 하소연 못 듣는데
어쩌다 서러운 이 몸은 귀만 홀로 밝았는고
一自寃禽出帝宮
孤身隻影碧山中
假眠夜夜眠無假
窮恨年年恨不窮
聲斷曉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
天聾尙未聞哀訴
胡乃愁人耳獨聰
진달래는 색깔이 피를 연상케할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 말기 촉(蜀)의 망제(望帝)인 두우(杜宇)와 관련되어 죽음을 뜻하는 꽃으로 상징되어 왔다. 억울하게 죽은 두우의 넋이 두견새가 되었고, 이 두견새가 울어서 토한 피가 물들어 두견화, 즉 진달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진달래꽃의 시각적 이미지는 두견새(소쩍새, 귀촉도, 접동새)의 울음이라는 청각적 이미지와 종종 결합하여 죽은 제왕, 죽음의 다짐, 죽음의 비애 등으로 다양하게 용사(用事)되었다.
단종의 작품으로 전하는 시는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 땅으로 유배되었을 때 그 유배지에서 두견새의 슬피 우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지은 시이다. 한이 맺힌 두견새는 울다 지쳐 새벽에야 소리가 그친다. 여기에서 두견새는 “원통한 새 한 마리”로 화자와 동일시되어 있다. 그 배경에는 말할 것도 없이 두우의 넋이라는 고사(故事)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단종, 「자규류시(子規樓詩)」,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육신(六臣)의 상왕 복위 모의(上王復位謀議)

화전

한궁기자(漢宮棋子)에 대해 왕세정(王世貞)은, “밀가루 돈[麪錢]에 꽃을 박아서 구워 만든 떡이다.” 했는데, 이는 지금 세속에서 화전(花煎)이라 하는 것이다. 봄에는 두견화(杜鵑花), 가을에는 국화(菊花)로 구워 만들어서 중삼(重三)ㆍ중구(重九)에 조상에게 드리게 되었다. 동래 제식(東萊祭式)에 적혀 있는 유국고(萸菊糕)란 것이 즉 이것이다.
진달래의 꽃잎에는 조경(調經)·활혈(活血)·진해(鎭咳) 등의 효능이 있어 약재로 이용되었다. 천식에는 꽃잎을 꿀에 재어 먹었지만 주로 화전을 부치거나 술을 빚어 먹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이익은 봄에는 두견화, 가을에는 국화로 화전을 만들어 조상들께 올렸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세시풍속에도 진달래꽃이 가진 약성을 섭취하려는 실용적 목적이 내포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이익, 「한궁기자(漢宮棋子)」, 『성호사설』 제4권 만물문(萬物門)

생태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의 꽃이다. 우리나라 원산으로 전국의 산야 해발 50~2,000m에서 군락을 이루며 자생한다. 높이는 2~3m 정도로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의 윗면은 녹색이고 사마귀와 같은 비늘조각이 약간 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데, 제주도에서는 3월 초순이면 피며, 서울에서는 4월 중순에 활짝 피고 설악산과 한라산·지리산 산정 가까이에서는 5월 말경에 활짝 핀다. 꽃색은 분홍색·진분홍색·흰색에 자주분홍색까지 다양하다. 꽃은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같이 생긴 통꽃이며,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열 개의 수술과 한 개의 암술이 들어 있다.

진달래는 봄철의 산야에 무리를 지어 일시에 붉게 피어나므로 봄소식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꽃으로 인식되어왔다. 또한 메마르고 각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사람들의 의해 꺾이거나 잘려나가도 억세게 다시 피어나기 때문에 수없는 전란과 재난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끈질기게 살아온 우리 겨레의 기질과 동일시되었다. 고전 작품에서는 두견새 설화와 관련해서 종종 죽음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되었다.

꽃 생태정보

식물명 : 진달래
과명 : 진달래과
학명 : Rhododendron mucronulatum
종류 : 목본(나무)
이명 : 두견화, 참꽃나무, 진달래꽃, 참꽃나무
꽃색 : 홍자색, 연한 홍색
계절 : 봄
분포 지리 : 전국 각지
분포 지형 : 메마른 산기슭, 소나무 숲, 떨기나무 숲
생육상 : 낙엽관목(잎이 지는 떨기나무)
높이 : 2~3m
개화기 : 4월 ~ 5월
결실기 : 10월
열매의 형태 : 삭과(튀는열매) 익으면 과피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여러 개의 씨방으로 된 열매
용도 : 관상용, 식용(꽃), 약용(뿌리줄기)
기타 :
사진제공자 : 김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