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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일생

출가사문의 일생은 비구가 된 다음 특별한 변천과정이 없이 한결같다. 나날의 일과를 평생 여일하게 수행하다 가면 그뿐이다. 하지만 종단이라는 조직의 한 구성원임을 피할 수 없음에 있어서 승려는 일생에 걸쳐 조직의 질서에 따른 변천과정을 겪게 된다. 구족계를 받아 정식 비구가 되었을지라도 마치 관리들의 품계처럼 일정한 자격기준을 두어 층차적인 여러 이름의 계급으로 올라가게 만든 법계(法階)라는 것이 첫째이고, 종단이나 사찰의 행정에 관계되는 직책을 맡는 경우가 둘째이다.

법계

종단이나 사찰의 행정을 위해 소임을 맡는 것은 한시적인 것이므로 일생상의 변천과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단에서는 법계제도라는 것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조계종의 예를 들면 사미과정을 마친 다음 비구가 되어 1년을 넘기면 견덕(見德)이라 부르고, 10년을 넘기면 중덕(中德)이라 부르며, 20년을 넘기면 대덕(大德), 25년을 넘기면 종덕(宗德), 30년은 종사(宗師), 40년은 대종사(大宗師) 하는 식의 위계가 있다. 각각의 위계에 따라 상좌를 둘 수 있는 자격에서부터 종단과 단위사찰의 행정을 맡을 수 있는 자격 등 여러 제한이 더해진다.

이 법계는 단순히 세월만 지난다고 해서 차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위계에 따른 승가고시를 통과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조계종의 법계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승과(僧科)제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고려는 과거제도를 시행하면서부터 무과는 두지 않았어도 승과는 두었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승가는 세속과 철저히 구분되어 수행자와 교화자로서의 참모습을 추구하고 또 유지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의 불교는 제왕의 통치행위는 물론 민중의 삶 전반에 광범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제도에 승과를 두는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처사였다. 그래서 승과에 교종선(敎宗選)과 선종선(禪宗選)의 두 과목을 두어 교종선에 급제하면 대덕(大德) 대사(大師) 중대사(重大師) 삼중대사(三重大師) 수좌(首座) 승통(僧統)의 법계를 차례로 밟게 했고, 선종선에 급제하면 대덕 대사 중대사 삼중대사 선사(禪師) 대선사(大禪師)의 법계를 차례로 밟게 했다. 국가 통치에 필요한 조치였던 것이고, 그것은 또 당시의 불교가 그만큼 세속화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도 승과가 시행되었던 적이 있지만 고려시대의 상황과는 많이 달라서 한 때 매우 제한적으로 시행되었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에 북조의 나라들이 불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승니들을 통할할 직책의 필요성을 느껴 승정(僧正)이니 승통(僧統)이니 하는 이름의 관직을 두었다. 후진(後秦)에서는 승정이란 이름을 사용하였고, 위(魏)에서는 승통 사문통 등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때부터 황룡사에 국통 또는 대국통(大國統)이란 관직을 두었고 고려시대에는 대선사와 승통 가운데서 국사와 왕사를 삼아 국사에 관여하였다. 불교를 공식적으로 억압하였던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총섭이나 도총섭 등의 관직을 두어 국가가 승단을 직접 관리하였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세속의 관직과 다름없는 승관(僧官)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조계종의 법계제도는 동아시아 불교의 특성에 따른 승관의 유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불교에도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불(佛)’이라는 차제적인 등위가 있고, 다시 성문에도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이라는 4 단계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출가사문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증득한 법의 경지에 대한 관념차원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지 요즘처럼 수행한 햇수를 기준으로 가른 다음 그에 따라 종단의 직책을 부여할 수 있는 자격요건이 달라지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경전을 보면 똑같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도 어떤 사문은 그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기도 하고 어떤 사문은 수다원과를 얻기도 하는 차이가 나는 것은 그래서이다.

원시불교에서 출가사문들이 승가를 이루었던 목적은 세속과 단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행을 돕기 위한 환경을 마련하자는 데 있었다. 출가승들은 자유로이 환속할 수 있었으며 승가 내에는 엄격한 위계질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수행 경력이 많은 비구의 지도를 따라 수도생활을 영위했으며 모든 중요한 일들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중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었던 것이 승가의 전통이다. 승가의 이런 전통은 오늘날도 스리랑카·미얀마·타이 등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조계종 법계
비구 비구니 수행기간 수행/교육과정
대종사(大宗師) 명사(明師) 40년 이상 개별 수행 전념
종사(宗師) 명덕(明德) 30년 이상 개별 수행 전념
종덕(宗德) 현덕(賢德) 25년 이상 종단 교육 연수와 개별 수행 전념
대덕(大德) 혜덕(慧德) 20년 이상 종단 교육 연수와 개별 수행 전념
중덕(中德) 정덕(定德) 10년 이상 선원 4안거 이상 성만과 지정 교육 이수
또는 박사학위 과정 이수
견덕(見德) 계덕(戒德) 1년 이상
사미(沙彌)
사미니(沙彌泥)
4년 이상 강원, 중앙승가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기초 선원 등 택일 이수
행자(行者) 6월 이상 입산 사찰 및 행자교육원 필수 이수
태고종 법계
비구/비구니 승랍 연령 과정 수행/교육과정
대종사(大宗師) 45년 이상 65세 이상 종사품수 10년 경과 후 개별 수행 전념
종사(宗師) 35년 이상 55세 이상 종덕품수 10년 경과 후 개별 수행 전념
종덕(宗德) 25년 이상 45세 이상 대덕품수 10년 경과 후 종단 교육 연수와 개별 수행 전념
대덕(大德) 15년 이상 40세 이상 대덕품수 5년 경과 후 종단 교육 연수와 개별 수행 전념
중덕(中德) 10년 이상 30세 이상 선덕품수 5년 경과 후 종단 교육 연수와 개별 수행 전념
지정 교육 이수 또는 석/박사 학위 과정 이수
선덕(善德) 5년 이상 25세 이상 득도 후 5년 경과
사미(沙彌)
사미니(沙彌泥)
1년 이상 18세 이상   강원, 동방불교대 불교학과, 옥천범음대,
기초성원 등 택일 이수
행자(行者) 6월 이상 18세 이상   입산 사찰 및 행자교육원 필수 이수
용상방

승가생활에 있어서 일상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절에 사는 스님들의 분업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결제(結制: 동안거, 하안거 등)나 재(齋)나 절에 큰 불사가 있을 때, 각자 맡은 바를 정하여(所任) 붙이는 방을 말한다. 절에 사는 스님 각자가 공동생활에 기여하고 자신의 위치를 뚜렷이 하기 위하여 소정의 불사가 끝날 때까지 큰방이나 모두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놓는다. 중국에서는 당(唐)의 백장(百丈)스님이 처음 이 제도를 실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종의 전래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본다. 용상방은 수행자 개개인을 물과 뭍에서 으뜸가는 동물들인 용(龍)과 코끼리(象)에 비유하여, 그 소임을 적은 방(榜)을 가리킨다. 보통 오른쪽으로부터 참선하거나 경전을 강론하고 수행하고 포교하는 스님들의 직책인 이판(理判)의 방목을 명기하고, 왼쪽으로부터는 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은 스님들의 직책인 사판(事判)의 방목을 적는다.

절의 큰방에는 불단(佛壇)을 중심으로 오른 쪽을 청운(靑雲, 또는 청산 淸山)이라 하여 절에 상주하는 스님들이, 왼쪽에는 백운(白雲)이라 하여 선객(禪客)과 같이 선원에서 한 철 살다 가는 스님들이 앉는다. 청산이라 함은 만고에 변하지 않고 한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산과 같이 절에 머무는 상주대중을 가리키는 것이고, 백운은 흰 구름과 물이 떠돌듯 운수행각(雲水行脚)하는 선승(禪僧)들의 자세를 가리키는 것이다. 발우공양이나 대중공사와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어간을 중심으로 한 상판(上判)으로부터 불단 아래의 하판(下判)에 이르기까지 덕이나 법랍(法臘)이 높은 순서로 스님들이 앉는다.

출가사문의 일생은 비구가 된 다음 특별한 변천과정이 없이 한결같다. 나날의 일과를 평생 여일하게 수행하다 가면 그뿐이다. 하지만 종단이라는 조직의 한 구성원임을 피할 수 없음에 있어서 승려는 일생에 걸쳐 조직의 질서에 따른 변천과정을 겪게 된다. 구족계를 받아 정식 비구가 되었을지라도 마치 관리들의 품계처럼 일정한 자격기준을 두어 층차적인 여러 이름의 계급으로 올라가게 만든 법계(法階)라는 것이 첫째이고, 종단이나 사찰의 행정에 관계되는 직책을 맡는 경우가 둘째이다.

초기 총림의 용상방 방목과 소임
방목(榜目) 소임(所任) 방목(榜目) 소임(所任)
장로(長老) 지혜와 복덕을 함께 갖춘 비구로서 곧 선종의 주지. 요주(療主) 요사채를 보수하는 소임.
수좌(首座) 선원의 가장 우두머리 직책으로 선에 관한 지도. 당주(堂主) 환자를 간호하는 직책.
감원(監院) 절 전체의 살림을 총괄. 욕두(浴頭) 대중의 목욕물을 준비하는 소임.
유나(維那) 사찰 안의 사무적인 일을 총괄. 수두(水頭) 대중이 항상 사용할 수 있는 물을 준비하는 소임
전좌(典座) 선원 대중들의 좌구, 침구, 음식 등을 관장. 탄두(炭頭) 숯과 땔나무를 준비하는 소임.
직세(直歲) 절 안의 공용도구, 건물 등을 관리하고 보수. 노두(爐頭) 화로의 불을 담당.
고두(庫頭) 금전과 곡물 등을 관리. 화주(化主) 인가나 거리를 다니면서 여러 사람에게 시주를 얻어 연을 맺어주고, 동시에 사찰에서 사용할 비용을 마련하는 소임.
서장(書狀) 문서를 맡아보는 직책. 원두(園頭) 과일과 채소를 맡아 가꾸는 직책.
장주(藏主) 대장경 등이 보관된 서고의 관리. 마두(磨頭) 방앗간을 관리하는 소임.
지객(知客) 절에 온 손님을 보살피는 직책. 장주(莊主) 농삿일을 맡은 책임자.
시자(侍者) 웃 어른을 모시는 직책으로, 주로 장로를 모심. 정두(淨頭) 해우소를 청소하고 세정할 물을 관리.
    정인(淨人) 사찰에 있으면서 승려들을 받들어 섬기는 속인
입적과 다비

출가사문이 한 생애를 마감하면 붓다에 견주어 ‘입적(入寂: 열반에 들어감)’했다고 표현한다. 석가모니 붓다는 물론 그의 제자들인 역대의 고승들이 입적할 때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설화적인 기록이 많이 있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에는 제다가 존자(尊者), 미차가 존자 등 여러 고승들이 삼매(三昧)의 힘으로 스스로 입적하여 다비까지 마치는 기이한 행장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중국불교에서 선종이 일반화한 다음 역대 선사들의 행장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는데, 그 안에는 선사들 생전의 행적 뿐 아니라 입적 당시나 입적후의 이적(異蹟)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참선의 힘이 쌓여지게 되면 육신의 생사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앉거나 선 채로 입적했다는 좌탈입망(坐脫立亡)의 기록이나, 좌선한 채로 입적한 육신이 썩지 않고 그대로 보살상이 되어 전해진다는 이야기 등 신비한 내용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의 보조국사를 비롯하여, 근대 상원사의 한암스님, 백양사의 만암스님과 서옹스님, 송광사의 효봉스님과 구산스님 등이 좌탈입망하였다. 하지만 다른 종교의 장례와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불교의 특징은 승려의 육신을 화장하는 장법과 사리가 남는다는 사실이다.

승려들이 입적하면 인도식의 화장법을 따르는 전통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인도식의 화장법은 산스크릿트 쟈피타(jhpita)를 음역한 ‘다비(茶毘)’라고 부른다. 연로하고 병들어 입적을 기다리는 노스님들은 열반당이라고 하는 곳에 따로 모셔 간병하다가 입적하게 되면 다비를 한다. 다비의 의식절차는 먼저 오방불(五方佛)에 귀의하여 오방불의 자비심으로 죽은 이의 영혼을 잘 인도하여 줄 것을 발원한다. 이어 삭발의식과 목욕·세수·세족 의식을 하고, 착군(着裙) 착의(着衣) 착관(着冠)의 의식을 행한 다음 정좌편(正坐篇)과 안좌게(安坐偈)를 염불하며, 이어 죽은 이의 영혼에게 음식을 베푸는 시식(施食)을 행한다. 입관한 뒤에는 노제(路祭)를 지내며, 화장장에서는 거화(擧火)와 하화(下火)의식을 행한 다음 시신에 불을 붙인다. 죽은 이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봉송의식(奉送儀式)을 행한 다음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수습하여 분쇄하고 흩어버리는 의식을 행한다.
사리는 이때 수습하는데, 법력이 높아야 사리가 많이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믿는 세간의 관습 때문에 요즘은 사리를 공개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사리를 수습하면 탑을 세워 그 안에 안치하는데, 부도(浮屠)라고 부르는 그 탑은 대개 사찰의 입구 한쪽에 모아둔다.